나를 찾는 여행
내게 크리스마스부터 새해까지의 기간은 바쁘면서 한가한 기간이다. 쇼핑을 하고 사람을 만나며 시간을 보낸다. 한 번쯤 올해를 돌아보는 시간도 가지고, 올해 초에 적었던 일기도 다시 읽어본다. 내가 올해를 시작할 때 어떤 마음과 생각으로 시작했는지, 연초 계획을 세웠다면 얼마나 이뤘는지, 올해에 내가 어떤 일들을 겪고 어떻게 그것들을 극복했는지, 천천히 되새겨 본다. 반성과 평가의 시간이면서, 또한 나 자신을 위로하는 시간이다. 돌아보면 올 한 해 동안 수많은 일이 내게 발생했고, 그래서 힘들어하고 견디고 해결하며 살았다. 만약 이런 사건들이 다른 누군가에게 일어나고, 그 일들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힘들었던 내용을 고백한다면, 나는 어떤 마음으로 듣고 어떻게 말해주었을까? 그렇다면, 나는 나 자신에게 어떻게 말하는가?
올해 내가 시작한 일들 중 하나가 책을 읽기 시작한 것이다. 책을 한 권 읽는다는 것은, 시작하면 바로 끝나지 않는 일이기에 그동안 엄두를 내지 못했다. 그와 비슷한 이유로, 영화 한 편 본 지도 꽤 오래되었다. 최소 2시간 동안 가만히 한자리에 앉아 무언가에 집중할 수 없었다. 그러다 보니, 어느새 짧은 동영상 보는 것에만 익숙해졌다. 일단, 컴퓨터나 셀폰을 켜면 짧고 강렬한 내용의 동영상이 차고 넘친다. 나의 흥미를 끄는 영상하나를 보기 시작하면, 관련영상이 연이어 나오고, 그러다 보면 어느새 몇 시간이 훌쩍 지나간다. 곧바로 결론을 말하지 않거나, 뭘 말하려는지 명확하지 않은 영상은 지루해서 보지 못한다. 자극적이고 흥미를 끄는 내용이 아니면, 아예 눈길이 가지 않는다. 그러니, 내게 책 한 권을 꾸준히 본다는 것은 불가능했다.
책 한 권을 골라 무슨 일이 있어도 끝까지 보기로 마음먹었다. 경제 관련 서적이었는데, 다 읽는데 무려 8개월이 걸렸다. 다 읽은 뒤에도 무슨 내용이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내겐 오로지 책 한 권을 중간중간 그만두고 싶은 유혹을 이기고, 끝까지 읽었다는 사실이 중요했다. 처음 시작할 땐 2-3달 정도 걸릴 것이라 예상했는데, 중간에 이런저런 일이 자꾸 생기다 보니, 2달 동안 책 한 줄 못 읽은 적도 있었다. 그래서, 결국 8개월이란 시간이 걸렸다. 그런데, 일단 책 한 권을 끝까지 읽고 나니, 내가 책 한 권을 시간이 걸리더라도 끝까지 읽을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고, 가능하다는 자신감이 생겼고, 다음 책을 꺼내 읽을 수 있게 되었다. 두 번째 책은 두 달이 걸렸다. 그렇게 내 삶 속에 책 읽기가 다시 들어왔다.
책을 읽을 땐 나의 속도로 생각할 수 있지만, 대중매체를 볼 땐 매체의 속도를 따라간다. 책을 읽으며 생긴 내 삶의 가장 큰 변화는, 내가 나의 속도로 내 삶을 볼 수 있고, 다른 사람의 삶도 그 사람의 속도로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누구나 자신만의 삶의 속도가 있고 방향이 있고 관점이 있다. 누구처럼 내가 빠르게 살아야 하는 것도 아니고, 반면에 내 속도를 못 따라오는 사람을 안타까워할 필요도 없다. 치타처럼 빠른 사람도 있고, 나무늘보처럼 느린 사람도 있다. 둘 다 자신만의 방식으로 생존한다. 이제부터 나의 속도와 나의 방향을 하나하나 찾아야겠다. 나 자신을 알아야겠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뭘 원하는지 알고, 나를 사랑하는 법을 배워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