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자들이 은퇴하면

은퇴한 이민자들은 어떻게 살지?

by 숲속다리

캐나다는 연금제도가 잘 되어있어 경제적인 지원을 해 주기 때문에, 대부분 은퇴 후에 경제적 어려움 없이 산다. 만약, 어떤 이유로든 경제적인 어려움이 있다면, 국가가 찾아내어 어떤 형태로든 최소한의 경제적인 지원을 반드시 해준다. 일례로, 은퇴 후에 나라에서 지정한 노인 아파트에 들어가면, 소득에 상관없이 자신의 소득중 1/3 금액만 월세로 내면 된다. 전혀 소득이 없는 부부의 경우, 대충 한화로 250만 원 정도를 매달 지불해 주니까, 80만 원만 월세로 지불하고, 나머지 금액은 자신들의 생활비로 사용할 수 있어, 최소한의 생활을 영위할 수 있다. 그래서, 현지 캐나다인은 대체로 은퇴하기 전, 미리 자신의 은퇴계획을 해놓기 때문에, 은퇴 후에 자신들만의 생활을 즐긴다. 하지만, 한인 이민자들을 포함한 초기 이민자들은 상황이 좀 다른데, 아무래도 캐나다인처럼 은퇴준비를 할 여유가 없어, 다른 의미에서 어려움을 겪는다.


우선, 은퇴 후 건강의 문제가 생긴다. 이민 온 후, 대부분 자신들의 몸을 사용한 일을 오랫동안 하다 보니, 은퇴 후에 건강의 문제가 생겨 노후가 암울해진다. 남들보다 더 열심히 더 오랫동안 일했기에, 나름대로 부를 축적해 기대하던 은퇴를 했는데, 부부 중 한 명이 갑자기 중병이 생겨, 다른 한 명이 배우자의 병시중을 하느라, 부부 모두의 삶의 질이 현격히 떨어지고 고통스러워진다. 이곳엔 한국말이 통하고 한국음식을 제공하는 요양원이 없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더 건강한 배우자가 아픈 배우자의 병시중을 들게 된다. 오랜 병시중 끝에 아팠던 한쪽이 사망하면, 나머지 한 명도 그동안의 병시중으로 몸이 쇠약해져 얼마 지나지 않아 뒤를 따른다.


설사, 부부가 건강한 상태로 은퇴하더라도, 은퇴 전까지 살아왔던 생활반경의 폭이 좁다 보니, 은퇴 후에도 비슷한 처지의 은퇴자들끼리만 모여 시간을 보내기 일쑤다. 한동안은 그 시간이 재미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금방 지루해진다. 하지만, 은퇴 전에 별다른 취미활동도 사회활동도 없었고, 딱히 은퇴 계획도 없었기에, 무료한 나날을 보내기 쉽다. 한인 교회나 한인회에서 제공하는 프로그램에 참석해 잠시 즐거운 시간을 보내지만, 아무래도 은퇴한 사람들을 위해 특화한 프로그램이 아니다 보니 한계가 있다. 언어나 문화적 차이 때문에, 나라에서 은퇴자들을 위해 제공하는 다양하고 수많은 프로그램과 혜택을 이용하는데 어려움이 많다.


마지막으로, 은퇴 후에도 꾸준히 자신을 변화시켜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기보다, 떠나온 한국과 한국문화를 그리워하며 그 속에 머무는 경우가 많다. 은퇴가 정말 자신들이 원하는 삶을 만들 수 있는 기회가 아니라, 그동안 너무 열심히 일만 했으니 이젠 쉬어야겠다는 마음만 가지고 살다 보니, 매일 집안에만 있거나 동네만 어슬렁거리고, 손주들 뒤치다꺼리하면서 시간을 보낸다. 그러다 보니, 은퇴 후의 삶이 점점 쪼그라들고 사회와의 연관성도 줄어들어, 삶이 따분하다 지루하다 옛날처럼 일하고 싶다는 넋두리를 하면서 지낸다. 결국, 인생에서 얼마 남지 않은 가장 소중한 시간을 낭비한다.


은퇴 후 갑자기 늙는 사람과 나날이 건강해지는 사람이 있다. 예전 잘 나갔던 시절을 회상하는 사람과 현재의 시간을 행복하게 누리며 사는 사람이 있다. 은퇴 후에 갑자기 폭삭 늙더니, 병이 걸렸다는 소식이 들리고, 금방 돌아가시는 분들을 본다. 은퇴 전 너무 많은 에너지를 사용해서, 은퇴 후 더 이상 사용할 에너지가 남아있지 않아, 급속히 사그라든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것은, 주위에 점점 은퇴를 준비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고, 은퇴 이후를 자신의 삶에 있어 가장 행복하고 찬란한 시간으로 만들겠다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는 사실이다. 내 앞을 지나간 수많은 선배이민자들의 여러 모습들을 지켜보며, 나 역시 나를 위한 나의 은퇴준비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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