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분증
그때 당시 부모님의 신분은 세운 들마루를 배경으로 옷매무새 다독여 다소곳한 자세로 섰고 면서기는 달필의 한문으로 이름 본적과 숫자를 적은 번호표로 주었다. 항상 가지고 다니라고 했지만 얼굴만큼 확실한 증명도 아니라 반짇고리 실꾸리에 꽂힌 바늘과 함께 보관되었다. 어떤 때에는 사진이 떨어져 다시 붙이고 아주 가끔 빨래로 빨려 투표 전에 일제 무료 재발급을 받았어도 별 쓸모가 없었다. 잘 벗겨지는 비닐 껍데기였다.
등초본을 떼고 은행 통장을 만드는 동네 활동 반경 내의 주민 신분이었다.
만 17세가 되면 국민으로서 누구나 보증해주는 생활 신분. 지금도 가끔 잃어버리고 빨랫감이 되는데도 그것이 기본이라 우기는 주머니 필수 휴대품이다.
생활 신분에서 관계의 신분은 부모를 묻고 가족을 묻고 주소를 확인하고 보증하라는 조건을 세웠다. 착하게 얌전하게 살아왔는데, 창살이 촘촘할수록 긴 숫자와 특수문자의 주기적인 보호색을 가졌지만 불편은 편리를 앞세워 지문과 동공과 목소리 체세포를 가져갔다.
오늘 동네 마트에서 내 것이 아닌 물건을 가지고 나왔다. 아무도 간섭하지 않았다. 죄로 생각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당당한 생활인이다. 도움의 손길을 바라는 유니세프의 말은 건조하다. 의인화된 로봇인지 기계화된 터미네이터인지 뇌는 인지에 혼란을 겪는다. 이 이야기를 하고자 신분이 인증된 친구를 만나러 간다. 얼굴은 모르나 그와 나는 보통의 사회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