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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 때

by 김규성

집에서 쓰는 선풍기는

고작 타이머에 좌우로 머리나 돌리고

등 굽은 노인이 땅에 떨어진 시간을 일으켜 세우려는 듯 골똘히 몰두했다

부지런한 아내는 방바닥 티끌 하나 밥상머리에 흘린 국물 한점 잠시라도 허용하지 않아

깨끗하고 정돈된 실내에서 치고 돈 허공에 때가 있다니

날개가 원만한 곡선이다


써큘레이터, 난 선풍기라 고집 세워 부르는데

기능 많고 작아도 바람 살이 여간 아니라 아는 사람은 굳이 '써큘레이터'

바람도 세게 약하게 주기가 복잡하여 자연풍 비슷하게 읊어대고

머리도 상하좌우 원을 그리는 테크노 가인이자 춤꾼이다

제비꼬리에 때가 묻어있는 줄 어제 처음 봤다

날개각이 깊었다


하나 둘 셋넷다섯을 세다가 쉰 몇 번 일흔몇 번에서 두 번 셌는지 건너뛰고 셌는지 아흔아홉 백에 엄지 꺾고 다시 하나 둘 반복하여 백에 검지 꺾고 그렇게 집에서부터 정류장까지 천 칠백 팔백 걸음 막도는 아니고 죽을 때만큼은 정신 차리고 본 것 하나 들은 것 둘 말한 거 셋 먹은 거 넷 쥔 거 다섯 마지막으로 여태 센 걸음 새겨 스스로 곡기 끊을 수 있는 정신 갖자고 맑고 투명하게 닦아 내자고 안간힘 들여 잡는 습관


땅바닥 치고 허우적거렸을 날개 꺾인 오토바이가 출근길 옆에 누웠다

날렵하고 원만한 곡선과 부리 같은 각이

길에서 막히고 바람에 꽉 막힌 채 빛 난다

갈수록 거대하고 정교하게 세련되는 편의에 길들여지는

저항의 목록은 삶

힘이 없다


비 맞고 접는 우산에서 물방울이 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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