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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 Mar 10. 2020

그가 남긴 흔적

소홀에 대해 생각해보기.

스스로도 좀 매정하다 싶지만 나의 간호사 생활에 있어 환자와 적당한 거리 유지는 중요하다. 환자 입장에선  섭섭하게 느낄 수도 있겠다. 선을 긋는 것이 습관화되어 있는데 용량이 적고 단순한 뇌 덕분에 실제로도 시간이 지나면 퇴원한 환자들의 기억이 자연스레 희미해진다. 그럼에도 잊히지 않는 환자들은 나에게 어떤 형태로든 진한 흔적을 남겼기 때문일 것이다.

인간의 몸은 매우 섬세하고, 과학적이고, 합리적이고, 유기적이다. 실감하고 나면 더 나아가 경외심마저 생긴다. 곁에서 바라보는 입장에서, 기계라면 부속품을 제거 후 바꿔주면 끝날 일들이 사람이라서 그렇지가 않은 경우가 많아 속상하기도 하다. 어떤 치료든 중재 후에는 길고 긴 사후관리가 별책부록으로 따라온다. 오장육부가 '열심히'일했을 뿐인데 결과적으로는 스스로에게 독이 되는 경우가 있는 걸 보면 세상만사가 몸안에 다 있다는 생각마저 든다.

이렇게 경이로운 '몸'에 집중하는 동안,

나는 환자들의 '마음'에 어떻게 접근해야 할지 길을 잃었다.

얼마 전 한 환자분이  긴긴 싸움을 하다가 돌아가셨다. 마지막으로 병원에 들어오셨을 때는 숨이 차서 간단한 '네, 아니오.' 조차 대답하기 힘들어하셨다. 스스로 가래를 뱉을 수가 없어 자주 기계로 빼주어야 했다. 심장이식을 하고 나면 부속품을 바꾼 기계처럼 모든 게 착착 맞아떨어지길 기대하지만 어쩌면 그건 동화 속에서나 가능한 얘기인 걸까. 위기는 늘 환자 주변을 서성댄다. 이 환자의 경우 심장 기능이 기대하는 수준으로 오르지 못했고, 다른 장기들도 점차 약해졌다.  특히 약했던 신장이 가장 큰 영향을 받았고, 오히려 이식 후에 혈액 투석을 다시 시작하게 됐다.


몸 상태도 상태지만, 우울은 우울대로 깊어졌다. 사실 지난번 퇴원 때 면담일지에는 '퇴원을 시키려면 차라리  안락사를 시켜달라.'라고 적혀있었다. 입원하는 동안에도 수차례 죽고 싶다고도 했다. 여러 고비가 있었다. 결국 또다시 심정지가 왔다. 의료진은 원칙대로 심폐소생술을 했고, 환자의 의식은 곧 회복되었다. 환자는 왜 자신을 살렸냐고 원망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심정지가 왔다. 이때는 환자 희망대로 심폐소생술을 하지 않았다.

환자들은 이식 수술 전에 나쁜 일이 있을 가능성에 대한 설명을 듣게 된다. 그러나 희망에 차 기대감에 부풀어 있는 환자들에게 이런 설명이 얼마나 와 닿을까 늘 의구심이 든다. 우린 모두 '나는 아닐 것'이라는 착각 속에 사니까. 지금 손에 쥔 황금 티켓의 목적지는 당연히 환상 속의 천국이어야지. 그렇지만 현실에서 나의 '완전한 해결책'이 실제로는 '실마리'에 불과하고, 다른 어려움들이 주둥이를 벌리며 도사리고 있는 것을 마주한다면, 그 낙담과 절망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

되돌아 생각해보면 나의 '치료적 대화 기술'은 절대적으로 부족한 수준이다. '신체' 간호를 하느라 바쁘다는 핑계로 '마음'에 대한 간호는 덮어 두었던 것이다. 관심이 없으니 공부도 노력도 하지 않았다. 막상 출근을 하면 내 앞에 놓인 '신체'간호로도 이미 너무 바쁘다. 시간은 늘 부족하고, 대부분 앉아서 기록할 시간조차 없다. 요즘 내가 차고 다니는 스마트 워치는 하루 10,000보를 걸으면 축하한다고 알람을 주는데, 근무 중에 팔에 축하 팡파르가 매번 터진다. 나는 힘들어 뻗을 것 같은데, 팔 언저리에서 벌어지는 축제라니. 하루 종일 뛰어다니면 그저 녹초가 되어 머리도 녹는 느낌이 든다. 밥 먹을 짬이 없는 날이 더 많다. 그러니 눈에 보이는 일 외의 것은 눈 감아 버린다. 그렇지만 나도 알고 있다. 이 모든 것은 변명에 불과하다.

나는 이 환자의 우울에 대해 인지하고 있었다. 내 환자가 아닐 때는 담당이 아니라는 핑계로 들여다보지 않았다. 그러다 막상 내 환자가 되었을 때는 그의 우울에 압도되어 어떤 것도 할 수 없었다. 그저 안타까워하는 마음은 여기서도 아무 쓸모가 없었다. 그의 죽음 너머로 부끄러운 흔적이 내 마음에 길게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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