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말에 들어서도 날씨가 선선해서 이번 여름 매우 더울 거라는 뉴스가 허당이었나 싶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말일에 들어서니 한낮에는 땀이 주룩주룩 나는 한여름 날씨다. 산들 부는 바람마저 뜨겁고 눅눅하다. 그 선선한 날씨를 기대하고 어제는 간만에 안 입던 원피스도 다려 입고 출근을 했는데, 걷는 내내 양산을 썼는데도 마스크며 햇빛이며, 도착해보니 턱받이 모양으로 땀이 흥건했다. 멋은 고사하고 생존을 앞두고 목에 얼음팩이라도 대야 할 판이다. 올해 여름은 정말 많이 더우려나.
2020년 5월 22일, 엄마의 업무가 종료되었다. 업무 내용에는 큰 변화가 없었으나 처우와 보수가 달라져 그만둘 때까지 현직을 유지할지 많은 고민을 하셨다. 초반에는 계속 일하는 방향을 생각하셨지만, 현 직장에서 앞으로 최대 3년 일하는 것이 본인의 한계라는 생각에 더 늦기 전에 이직 기회를 잡고자 퇴직을 결정하셨다. 예전만 같지 않은 컨디션에도 불구하고 시간 맞춰 정신 없이 뛰어다녀야 했던 현 직장을 종료하시게 된 것이 자식으로써 기쁘다. 완전한 은퇴는 아니라고 하시지만, 내심 이대로 직장을 구하지 않고 취미생활이나 하시면서 쉬시면 좋겠다고 바라본다.
그 동안 왕래가 소홀하던 엄마의 동료들도 퇴직 소식에 너도나도 연락이 와서 한동안 통화하시느라 빠쁘다가 이도 일주일쯤 지나니 조용하다. 코로나로 기분전환도 쉽지 않으니 위로할 길도 막연한데 나는 엄마의 벌이 덕분에 빚 없이 대학을 다닌 수혜자라 그런지 엄마의 서운하고 헛헛한 마음을 채워드리고 싶어 마음이 쓰인다.
엄마는 현 직장에서 자그마치 18년을 일했다. 회사의 흥망성쇠를 함께하며 좋은 시절도 힘든 시절도 우직하게 감싸 안으셨다. 마지막으로 일하시던 날 밤 12시를 기점으로 엄마가 사용하던 아이디가 사용 정지되면서 업무가 종료됐다. 재택근무를 위해 사용하던 서류와 회사 물품을 돌려보내자 엄마의 일은 완전하게 끝을 맞은 듯 했다. 업무 형태도 그렇고 희망퇴직이니 그럴 수 밖에 없다고 생각은 하지만, 장기 근속에 걸 맞는 그럴싸한 퇴임식이 없으니 내가 다 서운하다. 조촐하게나마 케이크와 꽃다발로 식구들끼리 기념했다. 그간의 스스로의 노고를 엄마가 초라하게 기억하지 않으면 정말 기쁘겠다.
엄마는 늘 스스로를 작은 사람으로 평가하지만, 나는 엄마에게서 우주를 본다. 사랑, 애정, 신뢰, 믿음, 유머, 태도, 헌신, 기쁨 등 그것이 무엇이 되었건 다 엄마를 통해 접했다. 나는 키에 비해 발이 큰 편인데, 하루는 “엄마, 나 발이 너무 크지?”하고 여쭈니 “그 정도는 되어야 두발 딛고 서지!”라고 응수해주셔서 더 이상 콤플렉스는 콤플렉스가 아니게 되었다. 나의 자존감은 엄마라는 토양에 뿌리를 내려 성장했다. 엄마가 짐을 내려놓고 숨돌리는 이때, 이제는 역으로 그 토양을 비옥하게 하는 나를 꿈꿔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