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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 May 30. 2020

엄마의 퇴직.

2020년 5월의 기록.

5월 말에 들어서도 날씨가 선선해서 이번 여름 매우 더울 거라는 뉴스가 허당이었나 싶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말일에 들어서니 한낮에는 땀이 주룩주룩 나는 한여름 날씨다. 산들 부는 바람마저 뜨겁고 눅눅하다. 그 선선한 날씨를 기대하고 어제는 간만에 안 입던 원피스도 다려 입고 출근을 했는데, 걷는 내내 양산을 썼는데도 마스크며 햇빛이며, 도착해보니 턱받이 모양으로 땀이 흥건했다. 멋은 고사하고 생존을 앞두고 목에 얼음팩이라도 대야 할 판이다. 올해 여름은 정말 많이 더우려나.


2020년 5월 22일, 엄마의 업무가 종료되었다. 업무 내용에는 큰 변화가 없었으나 처우와 보수가 달라져 그만둘 때까지 현직을 유지할지 많은 고민을 하셨다. 초반에는 계속 일하는 방향을 생각하셨지만, 현 직장에서 앞으로 최대 3년 일하는 것이 본인의 한계라는 생각에 더 늦기 전에 이직 기회를 잡고자 퇴직을 결정하셨다. 예전만 같지 않은 컨디션에도 불구하고 시간 맞춰 정신 없이 뛰어다녀야 했던 현 직장을 종료하시게 된 것이 자식으로써 기쁘다. 완전한 은퇴는 아니라고 하시지만, 내심 이대로 직장을 구하지 않고 취미생활이나 하시면서 쉬시면 좋겠다고 바라본다.


그 동안 왕래가 소홀하던 엄마의 동료들도 퇴직 소식에 너도나도 연락이 와서 한동안 통화하시느라 빠쁘다가 이도 일주일쯤 지나니 조용하다. 코로나로 기분전환도 쉽지 않으니 위로할 길도 막연한데 나는 엄마의 벌이 덕분에 빚 없이 대학을 다닌 수혜자라 그런지 엄마의 서운하고 헛헛한 마음을 채워드리고 싶어 마음이 쓰인다.


엄마는 현 직장에서 자그마치 18년을 일했다. 회사의 흥망성쇠를 함께하며 좋은 시절도 힘든 시절도 우직하게 감싸 안으셨다. 마지막으로 일하시던 날 밤 12시를 기점으로 엄마가 사용하던 아이디가 사용 정지되면서 업무가 종료됐다. 재택근무를 위해 사용하던 서류와 회사 물품을 돌려보내자 엄마의 일은 완전하게 끝을 맞은 듯 했다. 업무 형태도 그렇고 희망퇴직이니 그럴 수 밖에 없다고 생각은 하지만, 장기 근속에 걸 맞는 그럴싸한 퇴임식이 없으니 내가 다 서운하다. 조촐하게나마 케이크와 꽃다발로 식구들끼리 기념했다. 그간의 스스로의 노고를 엄마가 초라하게 기억하지 않으면 정말 기쁘겠다.


엄마는 늘 스스로를 작은 사람으로 평가하지만, 나는 엄마에게서 우주를 본다. 사랑, 애정, 신뢰, 믿음, 유머, 태도, 헌신, 기쁨 등 그것이 무엇이 되었건 다 엄마를 통해 접했다. 나는 키에 비해 발이 큰 편인데, 하루는 “엄마, 나 발이 너무 크지?”하고 여쭈니 “그 정도는 되어야 두발 딛고 서지!”라고 응수해주셔서 더 이상 콤플렉스는 콤플렉스가 아니게 되었다. 나의 자존감은 엄마라는 토양에 뿌리를 내려 성장했다. 엄마가 짐을 내려놓고 숨돌리는 이때, 이제는 역으로 그 토양을 비옥하게 하는 나를 꿈꿔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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