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연으로 적어 보내는 죽은 나의 아빠

의아한 그러나 당연한 그리움

by 우딤




사연과 신청곡을 받는 한 프로그램에 아빠에 대한 사연을 적어 보냅니다. 채택이 되지 않을 수도 있지만, 글로 적고 보니 괜스레 눈물이 나와 이 사연을 간직해야겠단 생각이 들어 이곳에 옮깁니다. 이 사연을 쓰고, 읽으면서 제 마음이 조금 치유됐거든요. 부적처럼 두고두고 여기에 붙여놓겠습니다.








지금으로부터 23년 전, 중학교 1학년 첫 학기가 시작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아빠가 돌아가셨습니다. 병이나 사고는 아니었고 스스로 선택한 것이었죠. 다정한 아빠, 든든한 남편, 책임감 넘치는 가장이란 단어는 우리 아빠와 거리가 아주 멀었어요. 제가 초등학교 저학년일 때부터 우리 식구들은 엄마가 의류 공장에서 열두 시간씩 미싱을 돌리고, 거리에서 속옷을 팔고, 한여름 뙤약볕에 냉커피를 팔아 벌어오신 돈으로 먹고살았지요. 백수인 아빠는 엄마가 집안 곳곳에 숨겨둔 비상금을 기가 막히게 찾아내 당구장에서 몽땅 쓰고 오셨습니다. 어린 저는 그런 아빠를 따라 당구장에 가서 노는 게 좋았어요. 제가 당구장에 가면 사장님이 꼭 요구르트를 주셨거든요.



머리가 클수록 저는 아빠가 싫어졌습니다. 엄마가 힘들게 벌어 온 돈을 훔쳐 쓰고, 술만 마시면 동네가 떠나가라 고성을 지르며 엄마에게 막말을 쏟아부었거든요. 자식인 저와 동생에게도 분풀이를 자주 했습니다. 열 살도 안 된 제가 밥을 차리면 아빠는 먹을 게 없다고 밥상을 뒤집어엎었어요. 겁에 질린 제가 울음을 삼키며 엄마가 일하는 공장으로 전화를 걸면 엄마는 평소 퇴근 시간보다 훨씬 일찍 집으로 오셨어요. 어린 자식에게 그런 전화를 받고, 직장에 머리를 조아리며 아쉬운 소리를 하고 달려오는 길은 얼마나 아팠을까요. 아빠는 제가 기억하는 한... 그렇게 일생을 게으르고 뻔뻔하고 괴팍하게 살다 가셨습니다. 솔직히 말해 그 당시엔 아빠가 돌아가셔서 다행이라는 생각까지 들었어요.



남은 우리 세 여자는 계속 가난하게, 각자의 마음에 지하 단칸방 같은 눅눅함을 끌어안고 살아왔습니다. 세월이 많이 흘렀지요. 성인이 된 지 오래고 서른 중반을 넘어가고 있으니까요. 아빠와 함께 찍은 사진은 단 한 장입니다. 사진 속의 어린 저는 세 발 자전거를 타고 있고, 아빠가 활짝 웃는 얼굴로 자전거 등받이를 잡아주고 있어요. 그 사진을 보면 문득 궁금해집니다. 아빠도 내가 아주 꼬맹이였을 땐 날 사랑했을까? 아빠도 사실은 잘 살고 싶지 않았을까? 물론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건 몇 년 되지 않았습니다. 20대를 꽉 채울 때까지 전 아빠를 미워했으니까요. 지긋지긋한 가난도, 우리 세 식구를 감싸는 은은한 우울감도 다 아빠 때문인 것만 같았거든요.



살다 보면 세상이 참 내 맘 같지 않을 때가 많지요. 모두 그러실 겁니다. 삶 속에서 크고 작은 상처를 만지며 어른이 되어 보니 어느 순간... 아빠가 불쌍해지기 시작합니다. 그때 내가 조금만 더 컸다면, 열세 살이 아니라 스물세 살이었다면 어땠을까? 외롭고 지치고 무기력한 아빠를 도울 수 있지 않았을까? 조금만 더 힘내라고, 다시 시작해 보라고 용기를 줄 수 있진 않았을까? 아빠는 그저 어찌해야 할 바를 모르는, 도움이 필요한 나약한 인간이었을 뿐... 너무 나쁜 사람은 아니었을지도 모릅니다.



아빠는 마흔에 돌아가셨고, 4년 뒤면 저는 아빠의 나이가 됩니다. 마흔이 가까워지는 게 저는 아빠와 가까워지는 느낌이 들어요. 첫째 딸은 아빠를 닮아야 잘 산다는 말이 있죠. 저는 아빠를 쏙 빼닮았거든요? 근데 그 말이 별로 달갑지 않아요. 얼굴뿐만이 아니라 성격도 닮아 버려서요. 2년 전인가... 우울증과 불안장애로 1년 정도 약물 치료를 했어요. 오랜 직장 생활로 번아웃이 오기도 했었고요. 그 치료 과정에서 내가 아빠를 참 많이도 닮았다는 걸 깨닫게 됐습니다. 그러나 아빠의 마지막까지는 닮지 않을 거라고 확신해요.



우리 세 식구는요 아직도 아빠의 죽음에 대해 터놓고 이야기하지 않지만, 예전보다는 많이 편해졌습니다. 가끔 제 꿈에 아빠가 나오면 그 이야기를 공유하기도 해요. 참 웃긴 게 아빠는 제 꿈에만 나오세요. 내가 아빠를 가장 잘 이해할 사람이라는 걸 아시는 걸까요? 자기랑 많이 닮았으니까요. 엄마는 네 아빠는 로또 번호나 알려주지 죽어서도 도움이 안 된다고 말하세요. 그래도 "네 아빠 옷차림이 어떻던? 굶은 사람처럼 보이진 않던?" 하며 은근히 궁금해하십니다. 제 꿈에 나오는 아빠는 어떤 모습이냐면요. 아주 환하게 웃고 있는 젊은 얼굴이에요. 바로 그 사진 속 모습처럼요. 이젠 세 발이 아니라 두 발 자전거를 타는, 서른여섯이 된 딸을... 아빠는 보고 계실까요?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제가 이런 말을 하게 될 줄은 몰랐는데... 많이 보고 싶어요 아빠. 이젠 목소리가 기억나지 않네요.






2025.11.04. 오후 5시 48분.





아, 신청곡은 바이브의 '미워도 다시 한 번'이라는 곡을 골랐습니다. 인순이의 '아버지'를 고를까 하다 아버지란 글자에 너무 파묻히긴 또 싫었던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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