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생과 단둘이 살고 있는데 우린 요리를 즐겨하지 않는다. 요리하는 사람이 없다 보니 집에 구비된 재료도 거의 없고 조미료와 라면 정도가 부엌 찬장 여기저기에 흩어져 있을 뿐이다. 웬일로 힘이 넘치는 날엔 장을 봐서 직접 음식을 만들어 먹기도 하지만 자주 있는 일은 아니다.
보통은 모닝빵, 식빵을 사다 놓고 아침에 각자 알아서 뜯어 먹는다. 저녁엔 라면을 끓여 먹거나 치킨 또는 햄버거를 시켜 먹는다. 매일 배달을 시키면 참 편하겠지만 사실 주머니 사정을 고려해 편의점 음식으로 때우는 경우가 가장 흔하다.
내가 사는 곳은 시골의 낡은 아파트다. 주변엔 커다란 식자재 마트와 편의점이 하나 있고 그것을 제외하면 아무것도 없다. 동네에 사람이 별로 없기 때문에 그 편의점은 새벽 6시에 문을 열고 자정이면 문을 닫는다. 오픈부터 낮 3시까지는 아주머니가, 3시부터 자정까지는 사장인 아저씨가 자리를 지키는데 두 사람이 가족관계인지는 잘 모르겠다.
나와 동생은 늘 저녁 시간에 그곳을 이용한다. 함께 간 적은 없지만, 어떤 계기로 우리가 자매라는 것을 그분이 알게 되었다. 내가 가끔 사 먹던 빵이 있었는데 그게 잘 팔리지 않아 사장님은 더 이상 발주를 넣지 않으셨고, 아쉬워하는 나를 위해 동생이 사장님께 그 빵을 시켜달라고 부탁한 것이다. 그리고 바로 다음날 내가 가서 그 빵을 골라 계산했다.
"그거 인기가 없어서 매일 남아 가지고 안 팔려고 했는데 어제 어떤 손님이 찾더라고요. 시켜놓길 잘했네."
나는 빙그레 웃으며 대답했다.
"걔 제 동생이에요. 아마 제가 먹고 싶어 해서 말씀드렸나 봐요."
그 일로 우리가 자매라는 걸 그분이 알게 됐다. 알고 보니 많이 닮았던 건지 아니면 워낙 젊은 사람이 없는 동네라 그런 건지, 아저씨는 우리가 가족이란 사실을 하루도 잊지 않았다. 둘 중 누구라도 편의점에 들르면 내게는 동생이 다녀갔다는 소식을, 동생에게는 언니가 다녀갔다는 소식을 전하셨다.
올해 여름부터 몸이 많이 안 좋아졌다. 건강 때문에 가족과 함께 하던 농사일에서 한 발 물러나게 됐다. 같이 땀 흘리며 고생할 땐 밥도 같이 먹었는데 같이 고생하지 않게 되니 밥도 따로 먹는다. 석 달 가까이 서울로 병원을 들락거리고 집에서 꼼짝없이 누워 있는 날이 이어지다 보니 서로 대화할 타이밍이 맞지 않았다. 농장에서 일하고 돌아온 동생은 함께 식사하고 싶었을지 모른다. 종일 천장만 바라보며 누워있던 나는 음식을 먹고 싶지도 않고 일어나 앉는 것도 고통스러웠기 때문에 그때부터 동생은 혼자 밥을 먹었다.
몸이 조금 회복된 뒤로도 밥을 따로 먹는 게 습관이 되었다. 그리고 엄마는 아주 바쁘지 않으면 나를 굳이 농장으로 부르지 않았다. 내가 만약 다른 직장을 다니고 있었다면 문제가 안 됐겠지만, 귀농 1년 만에 몸이 망가져 짐이 됐다는 사실이 나를 주눅 들게 만들었다. 동생이 농장에서 돌아올 시간이면 나는 불을 끄고 돌아누웠다. 부엌에선 아주 조심스러운 그릇 소리가 들려왔다. 그러기를 몇 주, 몇 달이 반복됐고 이제 우린 당연히 밥을 따로 먹는 사이가 됐다.
"동생이랑 밥 같이 안 먹어요?"
바로 이틀 전 일이다. 편의점 사장님이 내게 물었다.
"생활 패턴이 완전히 달라서요. 동생 다녀갔나 봐요?"
2분 전에 다녀갔다고 대답하면서 아저씨는 옅은 미소를 지었다. 식구끼리 밥을 같이 먹어야지 왜 따로 먹냐고 꾸짖고 싶은 얼굴이었다. 도서관에서 평소보다 일찍 돌아온 탓에 이제 막 퇴근한 동생과 겨우 몇 분 차이로 편의점에 들른 게 문제였다.
초코바와 커피를 계산하고 밖으로 나온 뒤 아무것도 없는 동네를 거닐었다. 동생과 방을 같이 쓴다는 게 예전엔 괜찮았지만 밥을 따로 먹기 시작한 뒤로는 괜히 어색해졌다. 그래서 낮엔 도서관에 있다가 밤이면 찬바람을 맞으며 동네를 거닐다가 11시쯤 귀가하는 게 요즘 나의 일과였다. 오랜만에 일찍 들어가 보려 했던 계획은 한 아저씨의 오지랖으로 무산됐다.
함께 밥을 먹지 않는다는 것을 들키고 말았다. 그게 왜 이렇게까지 수치스러운지 모르겠다. 잠들기 전에도 아침에 눈을 떴을 때에도 그 말이 떠올랐다. 같이 살지만 식구는 아니라는 것이 굉장한 흠처럼 느껴졌다. 우리가 자매라는 걸 그 아저씨가 모르게 했어야 하는데,라는 생각까지 들었다.
어릴 땐 엄마에게 혼이 나도 밥상 앞에 앉아야 했다. 말 잘 듣는 자식이라서가 아니라 달리 배 채울 방법이 없기 때문에. 머리가 큰 뒤로는 밖에서 끼니를 해결하고 오는 날도 많고, 때로는 피곤하다는 핑계로 밥상 앞에 앉지 않아도 됐다. 그래도 그땐 어렴풋이 알았다. 엄마가 차려준 밥을 안 먹어도 아무 문제없는 건 연속 이틀이 최대라는 것을. 집에서 밥을 먹지 않으면 엄마는 서운해했다. 우린 식구니까. 같이 밥을 먹는 입이니까. 아무리 퇴근이 늦어도 우린 식구니까 적어도 사흘에 한 번은 식탁 앞에 둘러앉는 것이 마땅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작년에 내가 일을 관두고 시골로 내려왔을 때 엄마가 가장 기뻐했던 부분 역시 함께 밥을 먹을 수 있다는 것이었다. 명절에 전을 부쳐 먹일 수 있고, 생일에 잡채를 버무려 먹일 수 있다는 게 그녀의 행복이었다. 엄마는 집이 따로 있어서 우리와 함께 살지 않지만 수시로 나를 불러다가 뭔가 먹이고 싶어 한다. 동생과 달리 나는 엄마와 오래도록 떨어져 살았기 때문이다.
우리 자매는 다툰 것도 아니고 다시는 겸상하지 말자고 약속한 것도 아니다. 하지만 언제 다시 마주 앉아 식사를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내가 다시 쌩쌩해져서 농장 일에 보탬이 될 때? 어떻게든 다시 돈벌이를 하게 돼 장녀의 체면이 설 때? 솔직히 그렇게까지 오래 걸릴 일은 아니다. 그때까지 기다릴 이유도 없다. 지금 당장이라도 '햄버거 먹을래?'라고 카톡을 보내면 '그려. 나는 싸이버거.'라고 답장할 애니까. 동생과 다시 입을 벌리고 마주 앉기 위해 왜 이렇게 긴 시간이, 큰 용기가 필요한지 모르겠지만, 나는 옛날부터 이런 사람이다. 스스로 만든 바위에 깔려 버둥거리는 사람.
너무 뜸 들이지 말고 엄마와 동생 앞에서 입을 쩍 벌려야겠다. 둥지 속에 둘러앉아 먹이를 나눠 먹는 새 가족처럼. 우리는 식구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