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일곱이 되었다. 생일이 전이니 아직 서른여섯인가? 법이 바뀌었다지만 생일을 기준으로 나이 먹는 건 아직 어색하다. 1월 1일에 비명을 지르며 나이를 먹고, 구정에 떡국 한 그릇을 해치우고 '이제 진짜 한 살 먹었네.'라고 받아들이는 게 익숙하다.
연말마다 거창한 신년 계획을 세웠다. 다이어트와 영어공부는 빠지지 않는 단골. 내가 불효녀인 게 사무쳤던 해엔 신년 계획으로 '엄마에게 전화 자주 하기'라는 감성적인 것도 집어넣는다. 무엇 하나 제대로 지켜본 적이 없다는 게 문제지만 항상 그럴싸한 내년을 그리며 연말을 맞았다.
1월 한 달 동안 방송통신대학교 사회복지학과에 편입 지원서를 넣어 합격했고, 생활문예 공모전에 짧은 수기 두 편 그리고 천강문학상 공모전에 수필 세 편을 투고했다. 이것들은 올해 나의 계획이 아니었다. 사실 아무 계획도 세우지 못했다. 아이러니하게도, 계획을 세웠던 때보다 나는 지금 훨씬 능동적이고 진취적인 태도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가장 좋은 계획은 무계획이다, 이런 말을 하려는 건 아니고. 내 나이가 이젠 정말 힘내 볼 수 있는 마지막 지점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말 그대로 내일모레면 마흔이다. 스물아홉에서 서른이 될 땐 느껴보지 못했던 초조함과 두려움이 밀려왔다. 결혼도 안 했고 애도 없고 모아놓은 돈도 쥐꼬리다. 어디 보자, 그럼 자아실현은? 너무 거창한가? 그럼 장래희망이라고 떠들고 다녔던 작가의 꿈은? 지난 세월 핑계로 흘려보낸 시간들이 피부로 다가왔다. 물론 먹고 사느라 바빴지만 글 하나 제대로 완성해 볼 시간도 없을 만큼 바쁘진 않았다. 내 무덤엔 핑계가 너무 많아 비석 세울 자리를 따로 빌려야 할지 모른다.
발등에 불 떨어져서 열심히 살고 있단 말을 너무 길게 했다. 벌려놓은 일이 있고 혼자만의 작은 목표가 생기니 시간을 계속 체크하게 된다. 나의 하루에 대한 책임을 내가 온전히 지기 시작한 뒤, 이렇게까지 열심히 하루를 보내는 건 처음이다. 목표가 있다는 것, 꿈을 위해 도전할 용기가 생긴다는 건 참 소중하구나. 그리고 허리가 건강하다는 건 축복이구나.라는 생각을 자주 한다. 절망적 이게도 내 허리는 20대 초반부터 퇴행성 디스크였고 전혀 돌보며 살지 않아서 작년엔 허리 때문에 크게 고생했다. 대학 공부와 문학 공모전 모두 진득하니 책상 앞에 앉아있어야 되는데 그게 가장 힘들다. 건강을 잃으면 모든 걸 잃는다는 진부한 말을 더 빠르게 아주 강력하게 느꼈어야 했다. 뭘 믿고 내 몸을 방치한 건지. 아침부터 밤까지 후회 투성이다.
잠들기 전엔 시를 읽는다. 시와 친해질 수 없다고 생각했는데 우연히 양안다 시인의 '숲의 소실점을 향해'라는 시집을 접하게 됐다. 어쩌면 나도 시를 사랑할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공부를 시작했고 글을 적극적으로 쓰게 됐고 시를 만나게 됐다. 2월은 짧기에 더 자주 시계를 들여다보며 부지런히 나를 채워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