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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끝인상은 안녕하신가요?

"안녕은 영원한 헤어짐은 아니겠지요"... 015B 노래가 새삼 들렸다

by 우드코디BJ
112027_2455578_1729159777346054982.jpg 산속 깊이 자리 잡은 아담한 카페 '이화에 월백하고'는 늘 대기 인파로 북적인다. 우리 일행은 대기 3번. (사진 = 양숙희)


"손 팀장. 이래서 사람은 죄짓고 살면 안 된다고 하나 봐. 안 그러니?"

서울사무소 워크숍에 참석 중인 양 이사님이 보내온 카톡 메시지입니다. 사진을 보니 강원도 평창 첩첩산중에 있는 '이화에 월백하고' 카페입니다. 이곳 사장님은 때때로 우리 공장에 들려 목재를 가져가는 목공인 이기도 해서 익히 알고 지내는 사이입니다. 그런데 마침 카페에 들른 손님 중 한 분도 우리 회사를 알고 있다며 반색을 하셨다는 내용입니다. 열 명 들어가 있기도 힘든 그 조그만 산골 카페에서 우리를 아는 사람을 만나다니.

자초지종을 들어보니 오래전 이기는 하지만 독특한 콘셉트로 목재를 주문하셨던 분이라 기억이 납니다. 통화 중에도 이사님은 말끝마다 "세상 참 좁지 않니", '이래서 죄짓고 살면 안 되나 봐'를 연발합니다. 내심 다행이라는 생각이 불쑥 듭니다. 적어도 그분에게 나나 우리 회사나 그리 안 좋은 인상은 아니었나 보구나 하고 말이죠.


KakaoTalk_20241012_141733410_03.jpg 카페 '이화에 월백하고' 남편 사장님은 음악, 목공, 글표현 등 여러 방면에 일가견을 자랑하신다 (사진 = 손현복


한 회사에 30년 넘게 몸담으며 많은 사람을 만났고 또 많은 사람을 떠나보냈습니다. 그중 이미선 주임은 지금까지도 반갑게 얼굴 보는 언니 동생 사이입니다. 함께 일했던 당시 그녀는 책상에 앉으면 모니터에 몸이 가려질 정도로 체구가 작았습니다. 그런데 일을 야무지게 잘해서 아끼는 후배였지요. 손재주가 좋고 손놀림도 빨랐습니다. 전 같으면 한 주 내내 매달렸던 신년 달력 발송 업무도 하루 이틀이면 끝낼 정도였으니까요. 성격도 쾌활한 편이라 두루두루 사람들과도 잘 어울리는 편이었습니다.


어느 날 이 주임은 자동차 면허를 따겠다며 운전학원에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영리한 편이라 필기는 예상대로 단번에 합격했는데, 작은 체격 때문인지 실기에서는 번번이 낙방을 했습니다. 이후 집이 먼 그녀는 실기 연습을 받기 위해 매일같이 퇴근길을 재촉해 학원으로 향했습니다. 오후 예닐곱 시나 돼야 퇴근길에 나서던 시절 이야기입니다.

어느 날 내심 우려하던 일이 결국 터지고야 말았습니다. 출근하자마자 이 주임은 내 자리로 쫓아와 퇴사하겠다며 내일부터 나오지 않겠다고 합니다. 운전면허 실기 시험에서 번번이 떨어진 것도 속상한데, 학원 가려 퇴근 때마다 눈치 봐야 하는 상황이 지긋지긋하답니다. 폭포수처럼 감정을 쏟아내는 모습에 순간 놀랐지만, 전에 보지 못한 철부지 같은 면모에 살짝 어이가 없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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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시간이 끝날 무렵 이 주임을 불러서 빈 회의실로 데려갔습니다. 이후 한참 동안 그녀는 그간 마음속에 쌓아두었던 아쉬움을 쏟아냈습니다. '마음 여린 네가 많이 지쳤겠구나'. 이윽고 흐르는 눈물을 멈춘 그녀에게 한 가지를 당부했습니다.


"이미 그렇게까지 마음이 떠났는데 퇴사하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지. 그래도 지금부터는 말끔하게 잘 마무리하는데 더 집중하면 좋겠다. 감정이 좀 추 스러지면 시일이 다소 걸리더라도 선배들 한 분 한 분 뵙기를 청해서 정중히 말씀드리고 마무리하렴. 그래야 설령 후에 길거리에서 마주치더라도 반갑게 인사 나눌 수 있을 거야."


며칠을 조용히 일만 하던 그녀는 이후로 시간 나는 대로 동료들을 찾아 그동안 고마웠노라고 전하며 사직의 뜻을 밝혔습니다. 퇴사 후에도 그녀는 종종 회사에 놀러 왔습니다. 청첩장을 들고 온 날 저녁에는 맥주잔을 기울이며 축하 파티를 열기도 했습니다. 그녀가 면사포를 쓰던 날, 많은 직원들이 기꺼이 참석해 신랑신부의 백년해로를 응원했습니다.


KakaoTalk_20220212_163617735.jpg 가족 여행 떠나는 길에 회사에 들른 이 주임과 가족들


시간이 흘러 어느덧 두 아이의 엄마가 된 이 주임이 오랜만에 남편과 아이들을 데리고 왔습니다. 가족 여행 가는 길에 잠깐 들렀답니다. 곁을 오가던 회사 동료들도 아이들이 벌써 이렇게 컸냐며 반색합니다. 한참을 머물다 자리에서 일어난 그녀가 말합니다.


"다시 생각해 봐도 그만둘 때 팀장님 말 듣기를 정말 잘한 것 같아요. 새삼 감사해요."


사회생활에 뛰어든 지 30년이 지났습니다. 일 때문이라는 이유로 직장 선후배와 동료뿐 아니라 참 많은 인연을 만나 따로 또 같이 있습니다. 젊은 날을 돌이켜보면 늘 '새로운 만남'을 꿈꾸고 매력적인 '첫인상'을 주려고 무던히 애썼던 것 같습니다. 그렇게 흘러 흘러 마주침과 헤어짐을 반복하며 오십을 넘기고 나니 헤어지는 '끝인상'도 참으로 중요했구나를 이제야 새삼 깨닫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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