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멘토는 답을 주지 않는다

AI는 정답을 준다. 하지만 당신을 성장시키지는 못한다.

by 우드코디BJ

어느 회의실 풍경


사고의 외주화를 막고, 스스로 생각하는 인간을 길러내는 것. 그것이 멘토링의 본질이다. 어느 회사의 실장과 사원 사이의 대화 속에서 그 구체적 방법론을 찾아보자.


형식이 아니라 의미를 본다


행사를 마치고 돌아온 사원과 실장이 회의실에 앉았다. 보고서를 작성하기 전, 실장은 먼저 말했다.


"보고서 쓰기 전에 커피 한 잔 합시다. 행사는 어땠는지 궁금하네요."


사원은 행사 동안 겪은 일을 꺼내놓기 시작했고, 실장은 고개를 끄덕이며 들었다. 준비물과 관람객들의 반응, 아쉬운 대목과 새로운 아이디어가 오갔다.


"우리가 보고서를 작성하기 전에 차담회를 하는 이유가 있어요. 자유롭게 대화하다 보면 전체적인 줄거리도 정리되고, 오늘처럼 피드백을 미리 받을 수도 있지요. 그런데 정형화된 양식에 따라 문서 업무를 익히고 그걸 계속 반복하면 형식을 먼저 체화하기 십상입니다. 중요한 건 경험자가 보고 듣고 느낀 점이 얼마나 생생하게 구성원들에게 공유되는가입니다. 지금껏 나눈 이야기까지 정리해서 보고서를 작성해 보세요."


이것은 단순한 업무 지도가 아니다. 보고서라는 결과물을 재촉하기보다 보고 행위 자체의 의미를 생각하게 만든다. 멘토는 '어떻게 쓰는가'를 가르치기 전에, '왜 쓰는가'를 먼저 묻는다. 형식은 의미를 담는 그릇이지,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기 때문이다.


KakaoTalk_20250915_130019560_02.jpg '도림천 공예문화페스타' 행사가 시작되기 전 세팅을 마치고 사원이 찍은 부스 내 모습 (출처 : 우드코디KS)


사고의 틀을 전수한다


"기획(Planning)에서 문서(Documentation)로, 문서에서 보고(Presentation)로, 보고에서 실행(Action)으로. 이것이 업무의 흐름입니다. 실행을 마치고 사후 강평 과정을 통해 건져낸 내용들을 바탕으로 다음 기획에 반영할 요소를 추려내는 겁니다. 지금 차 한 잔 나누는 이 자리가 '사후 강평회'이자 '뒤풀이'에 해당하는 과정이죠."


실장이 제시한 이 업무 흐름도는 '프로젝트 사고'의 틀이다. 이 프레임을 이해한 사원은 앞으로 어떤 것이 단순히 일처리로 끝낼 일인지, '프로젝트'로 기획할 일인지 스스로 판단하게 된다.


"직장 생활을 하든, 커피숍을 운영하든 몸소 겪은 경험에서 개선점을 추출해 반영하면 여러분은 조금씩 성장하고, 거듭하면 발전하는 습관이 됩니다.


멘토는 물고기를 잡아주지 않는다. 물고기가 어디 있는지 알려주지도 않는다. 대신 강의 흐름을 읽는 법을 가르친다. 사고의 틀을 전수받은 사람은 새로운 상황에서도 스스로 판단할 수 있다. 더 이상 답을 기다리지 않는다. 이것이 사고의 외주화를 끊어내는 두 번째 단계다.


20251009_180929.jpg '서울공예문화대전'에서 관람객들에게 인기를 모았던 '원목한글 만들기' 체험 (출처 : 우드코디KS)


개인의 목소리를 독려한다


이어서 실장은 회사에서 신입사원들에게 공식 양식 대신 개인 블로그에 업무를 기록하게 하는 이유를 설명했다.


"우리 회사가 정해진 양식 없이 각자 블로그로 업무를 기록하게 하는 이유가 뭘까요? 형식에 갇히지 않고, 여러분이 매일 일터에서 겪는 실제 경험을 생생하게 남기길 바라기 때문입니다. 같은 장소에서 똑같은 일을 해도, 각자 느끼는 바는 다 다르거든요."


그는 한 걸음 더 나아갔다.


"직장 생활하며 겪은 걸 기록하세요. 구체적인 직무 경험과 거기서 배운 점. 난관을 만나 해결한 사례. 대인관계에서 상대를 이해하려 기울인 노력. 내 단점을 인지하고 극복한 이야기. 이런 내 서사가 담긴 성장 기록을 남겨두는 겁니다."


그는 잠시 멈췄다가 덧붙였다.


"아직은 재직증명서나 경력증명서로 나를 증명하지만, 앞으로는 다릅니다."


그는 목소리에 힘을 실었다.


"여러분이 블로그든 브이로그든 SNS에 성실하게 쌓은 '기록(log)'이 내가 누구인지 보여주는 훌륭한 증거가 될 겁니다. 평생직장 시대는 끝났다고 다들 말하잖아요? '먹방 크리에이터', '뷰티 크리에이터', '여행 크리에이터'는 되는데, '본업 크리에이터'는 왜 안 돼요?"


AI는 일반화된 정보를 제공할 수 있다. 하지만 '내가 행사 부스에서 목격한 고객 반응의 미묘한 변화' 같은 구체적 현장 경험은 제공할 수 없다. 그것은 오직 그 자리에 있던 사람만이 포착할 수 있는 인사이트다. 바로 그것이 '본업 크리에이터'의 핵심 콘텐츠가 된다.


"퇴사할 때 개인 비품 담은 종이 박스 하나 달랑 들고나가는 장면, 많이 보셨죠? 회사 것은 다 반납해야 됩니다. 그런데 여러분의 SNS는 달라요. 이건 사유 재산이고 '경험과 지식'이 담겼다면 지적 재산권이 되기도 합니다."


그는 잠시 멈췄다가 물었다.


"오늘부터 조금씩 시간 내서 평생 써먹을 '자기 증명서'를 만들 건가요, 아니면 '맛집 리뷰', '내돈내산'만 올릴 건가요?"


정답 중심 교육에서 자란 세대는 '정해진 양식'에 익숙하다. 공식 보고서 양식, 표준 PPT 템플릿, 정해진 자기소개서 포맷. 그러나 개인의 고유한 관찰과 해석이야말로 AI가 대체할 수 없는 가치다. 멘토는 그 목소리가 나올 수 있도록 안전한 공간을 만든다.


화면 캡처 2025-10-25 122652.jpg


실수를 성장의 기회로 재정의한다


대화 중간에 사원이 지난 행사에서 "우리 회사의 리플릿은 관람객들에게 별 감흥을 주지 못했다"는 발언을 했다. 리플릿 제작에 참여했던 선배가 이 자리에 있었다면 기분이 언짢을 수 있는 상황이었다. 실장은 이 순간을 놓치지 않고 먼저 '배려하는 태도'를 언급했다.


"이 회의실 밖에서 리플릿에 대해 이야기할 때는 톤 앤 매너를 좀 조정하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상대의 기분과 감정을 잘 고려할 줄 아는 것도 중요한 사회생활 스킬입니다."


바로 수긍한 사원은 죄송하다고 말했다. 그러자 실장은 손사래를 쳤다.


"지금 이야기 안 했으면 잘못인 줄 몰랐겠죠. 사회 초년생의 실수는 과오가 아니라 과정이에요."


그는 실수를 성장의 신호로 재해석했다. 자존감을 지켜주면서 사회적 기술을 함께 지도하는 능력, 이것이 AI가 할 수 없는 멘토의 역할이다.


멘토는 답을 주지 않는다. 대신 실수할 여지를 준다. 정답 중심 교육에서 '틀림'은 곧 '실패'였다. 그러나 멘토는 실수를 '과정'으로 재정의한다. 이 재정의는 단순한 위로가 아니다. 실수를 통해 배우는 경험이야말로 사고의 외주화를 끊어내는 가장 강력한 도구이기 때문이다.


화면 캡처 2025-10-25 123413.jpg 20대 청년의 사회생활 기록이 꾸준히 업로드되고 있다. 날짜는 SNS가 찍어주는 '확인 날인'이다. (출처 : 우드코디KS)


에필로그: 당신의 선택


정답은 자동화되고 있다. 이제 남은 일은 사람을 키우는 일이다. AI 시대의 멘토는 답을 주는 사람이 아니라, 스스로 생각하는 인간으로 성장하도록 돕는 촉진자다. 멘토는 질문을 던지고, 사고의 틀을 전수하며, 개인의 목소리를 독려하고, 실수를 성장의 기회로 재정의한다. 이 네 단계는 사고의 외주화를 끊어내는 과정이자, 한 사람을 자율적 사고 주체로 성장시키는 여정이다.


앞으로의 세상은 정답을 아는 사람을 찾지 않는다. 정답은 기계가 말해줄 것이다. 방향은 리더가 제시해야 한다. 앞으로의 세상은 기술이나 시스템이 아닌, 사람의 성장을 이끄는 멘토형 리더를 찾을 것이다.


멘토는 답을 주지 않는다. 그것이 답이다.

keyword
이전 12화수십 년간 정답을 외운 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