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력서는 백방으로 내는데, 탈락 사유 한 번 듣기도 어려운 취준생들
2024년, 채용 플랫폼 인크루트에서 727만 명의 개인정보가 유출되었다. 이름, 학력, 경력은 물론이고 이력서와 자기소개서, 자격증 사본까지. 당신이 밤을 새워 작성했던 그 문장들이, 당신도 모르는 사이에 어딘가로 흘러갔다. 그 순간 우리는 깨달았다. 당신이 작성한 이력서는 언제부턴가 당신의 것이 아니게 되었다는 것을. 그것은 채용 플랫폼의 자산이 되었고, 데이팅앱의 알고리즘이 되었고, AI 솔루션의 학습 데이터가 되었다.
당신도 그랬을 것이다. 이력서를 300번 넣고, 200번 떨어지고, 왜 떨어졌는지는 한 번도 듣지 못했을 것이다. 그리고 불안한 마음에 토익 점수를 올리고, 자격증을 하나 더 따고, '이력서 하이라이트' 상품을 결제했을 것이다. 무언가 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아서. 보이지 않으면 존재하지 않을 것 같아서.
채용의 풍경은 극적으로 바뀌었다. 전봇대에 붙은 구인 전단지를 보던 시대를 지나, 9월이면 대학 강당을 가득 채우던 공채 설명회의 시대를 지나, 이제 우리는 AI가 이력서를 1차 검토하는 시대를 살고 있다. 삼성을 제외한 거의 모든 대기업이 공채를 폐지했고, 채용은 수시로, 직무 중심으로, 데이터 기반으로 이루어진다.
변한 것은 많다. 정보의 접근성은 비교할 수 없이 좋아졌다. 클릭 몇 번이면 수백 개의 채용 공고를 볼 수 있고, AI는 당신에게 맞는 직무를 추천해 준다. 지원도 간편해졌다. 이력서 한 장으로 여러 회사에 동시 지원이 가능하다.
하지만 변하지 않은 것이 있다. 30년 전에도, 지금도, 취준생은 여전히 묻는다. "왜 떨어졌을까?" 그리고 여전히 답을 듣지 못한다. 기술은 발전했지만, 당신의 경험은 달라진 게 없다. 아니, 어쩌면 더 나빠졌을지도 모른다.
전봇대에 구인 전단지를 붙이던 시절엔, 적어도 당신의 이력서가 얼굴도 모르는 누군가의 손에 넘어가는 일은 없었으니까.
채용 플랫폼은 당신에 대해 놀라울 만큼 많은 것을 안다. 당신이 어떤 공고를 몇 번 클릭했는지, 어떤 키워드로 검색했는지, 자소서를 몇 시간 동안 작성했는지까지. 당신의 지원 패턴, 선호 직무, 심지어 포기하기 직전의 행동 패턴까지 데이터로 축적한다. 채용 플랫폼은 당신에 대해 당신보다 더 많이 안다.
반면 채용 플랫폼이 갖지 못한 것은 단 하나다. '기업이 진짜 원하는 것'이다.
이 노동 공급과 수요 사이의 정보 비대칭이 모든 문제의 핵심이다. 채용 플랫폼은 '누가 지원했는가'는 알지만, '누가 왜 뽑혔는가'는 모른다. 기업의 평가 기준, 탈락 사유, 조직 문화 적합도, 이런 정보는 기업 내부의 ATS(지원자 추적 시스템)에 갇혀 있다. 채용 플랫폼은 이력서를 기업에 전달하는 중개자일 뿐, 그 이후 벌어지는 평가와 선택의 과정에는 접근할 수 없다.
기업도 이 정보를 공개하지 않는다. 법적 리스크 때문이다. 구체적인 탈락 사유를 밝혔다가 차별이나 인권 침해 논란에 휘말릴까 두렵다. 수천 명에게 일일이 피드백을 제공할 인력도 없다. 그래서 기업은 침묵한다. 채용 플랫폼은 알 수 없다. 그 사이에서 당신만 모른다.
그리고 당신도 침묵한다. 이유를 묻지만 답이 없고, 항의하지만 책임지는 곳이 없다. 결국 당신은 시스템에 저항하는 대신, 시스템에 적응하려 한다. 이 침묵이, 우리가 동의한 적 없는 채용 구조를 고착시킨다.
이런 현상은 한국만의 문제가 아니다. 북미와 유럽의 조사에서도 구직자 70~80%가 피드백을 원하지만, 실제 제공률은 30% 미만이다. 침묵은 국경을 넘는다.
당신이 토익에 800만 원을 쓴 건 당신이 어리석어서가 아니다. 청년들의 취업 준비 비용은 해마다 오르고 있다. 2024년 진학사 캐치 조사에 따르면, 구직자의 절반 가까이(43%)가 "작년보다 취업 준비비가 늘었다"라고 답했다. 취준생의 월평균 지출은 28만 원. 생활비와 교통비를 제외한 순수한 ‘준비비’만 계산한 수치다. 가장 큰 부담 요인은 ‘어학·자격증 취득비(29%)’였고, 그 뒤로 ‘스터디룸·카페 이용료(22%)’, ‘강의 수강료(22%)’, ‘면접비(10%)’가 뒤를 이었다.
하지만 이 통계는 당신이 매일 먹는 밥값도, 면접 보러 가는 교통비도 포함하지 않는다. 누군가는 1년 만에 취업하지만, 누군가는 3년을 준비한다. 그 시간 동안 쌓이는 건 경험이 아니라, 지출이다. 그리고 그 비용의 상당 부분은 ‘불확실성의 대가’다. 왜 떨어졌는지 모르기 때문에, 될지도 모르는 모든 요건을 준비해야만 하니까.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같은 해 잡코리아 조사에서 인사담당자들은 '어학 점수'를 중요 평가 기준 5위 안에 꼽지도 않았다. 기업이 원한다고 말하는 건 '직무 이해도', '문제 해결력', '커뮤니케이션 능력'이다. 하지만 취준생들은 어학 점수, 인턴 경험, 공모전 수상, 자격증을 오히려 인사담당자보다 훨씬 더 중요하게 여긴다.
이건 취준생이 무지해서가 아니다. 기업이 진짜 원하는 '직무 이해도'는 일을 안 해봤으니 알 수 없고, '문제 해결력'과 '커뮤니케이션 능력'은 어떻게 증명해야 하는지 모르니, 결국 눈에 보이는 것에 투자할 수밖에 없는 구조 때문이다.
이 괴리는 10년째 반복되고 있다. 매년 언론은 "기업이 원하는 것과 취준생이 준비하는 것이 다르다"라고 보도하지만,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다.
왜일까? 정보 비대칭이 해소되지 않기 때문이다. 기업은 '무엇을 평가하는지' 말하지 않고, 당신은 '될지도 모르는 요건'을 모두 준비한다. 이게 바로 과잉준비의 경제학이다. 기업은 리스크를 줄이려 하고, 당신은 불확실성을 돈으로 메운다.
학습 불가능한 실패만큼 잔인한 건 없다. 수학 시험에서 떨어졌는데 어느 문제를 틀렸는지 모르는 것과 같다. 그래서 당신은 같은 실수를 300번 반복한다. 오답노트는 어디에서도 구할 방도가 없다.
채용 플랫폼은 'AI 이력서 진단', '합격 예측 점수', '직무적합도 분석'을 제공한다. 하지만 이건 추정치일 뿐이다. 기업의 실제 평가 결과와 연동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채용 플랫폼은 그 데이터에 접근할 수 없으니까.
채용 플랫폼이 제공하는 AI 피드백은 실제 의미의 피드백이 아니다. 기업의 평가 데이터가 없으니, 과거 합격자들의 패턴을 분석한 추론형 조언일 뿐이다. 결국 당신은 추정치에 기대어 다음 이력서를 쓴다. 이건 학습이 아니라 반복이다.
구직자들은 평균 50~100회를 지원한다. 장기 구직자는 200회를 넘는다. 하지만 탈락 사유 피드백을 받은 경우는 10%대에 불과하다. 300번 떨어져도, 300번째 실수가 무엇인지는 모른다.
학습 없는 반복은 성장이 아니라 소모다. '취준생들 번아웃 겪었다'라는 기사가 괜히 나도는 게 아니다. 구조를 보면 명확하다. 채용 플랫폼은 중개자일 뿐, 평가 주체가 아니다. 기업은 법적 리스크 때문에 침묵한다. 그 사이에서 책임은 무한 루프를 돈다. 결국 아무도, 그 이유를 말하지 않는다.
그리고 채용 플랫폼은 당신의 또 다른 불안을 발견했다. '보이지 않으면 존재하지 않는다'는 불안을. 그래서 '이력서 하이라이트' 상품을 만들었다. 돈을 내면 당신의 이력서가 채용 담당자에게 최우선으로 노출된다. 취준생들 사이에서는 불만이 높다.
"이건 공정하지 않다", "결국 돈 있는 사람이 유리한 거 아닌가."
채용 플랫폼도 사정이 있다. 경기 불황으로 기업들의 채용 규모가 줄면서, 주 수익원이던 B2B(기업 대상) 광고비가 감소했다. 살아남으려면 새로운 수익원이 필요했다. 그래서 B2C(구직자 대상) 상품 개발에 나섰다.
하지만 이해한다고 해서 정당화되는 건 아니다. 고용 시장은 단순한 상업 영역이 아니다. 노동의 첫 관문인 '지원 기회'조차 비용을 내야 유리한 게임이 되어버렸다. 능력의 경쟁이 아니라 노출의 경쟁이 되었다. 실력보다 결제 버튼을 먼저 누른 사람이 더 많이 보이는 구조다.
불안은 이제 채용 플랫폼의 가장 안정적인 수익원이 되었다. 채용 시장은 '결과의 경제'가 아니라 '추론의 경제'가 되었다. 채용 플랫폼은 확신이 아니라 확률을 팔고 있다.
그리고 구직자는 침묵한다. 시스템을 바꾸는 대신, 시스템 안에서 더 나은 위치를 찾으려 한다. 이력서 하이라이트를 결제하고, AI 진단을 믿고, 나름 믿음직한 스펙을 한 개 더 쌓는다.
이 침묵은 우연이 아니다. 시스템은 말이 많은 사람보다, 데이터만 남기는 사람을 더 선호한다. 정보는 넘치지만 이해는 사라진 이 풍경, 이것이 데이터 자본주의가 작동하는 방식이다.
채용 매칭의 본질적 한계를 극복하지 못한 채, 채용 플랫폼들은 보유 데이터를 새로운 수익원으로 전환했다. 사람인은 당신이 이력서 작성 과정에서 입력한 성격·성향 데이터로 데이팅앱 '비긴즈'를 만들었다. 원티드는 채용 데이터 처리 기술로 생성형 AI 솔루션 'LaaS'를 개발했다. 리멤버는 당신의 직장·직무 정보로 B2B 세일즈 타기팅 서비스 '마켓솔루션'을 제공한다. 인크루트는 채용 평가 기술로 온라인 시험 플랫폼 '고사장'을 만들었다.
이건 혁신이라기보다 한계의 징후다. 구직자의 마음을 읽는 대신, 구직자의 정보를 신사업 아이템으로 바꾸는 일. 채용의 인프라가 사람을 연결하는 광장에서, 구직자 데이터를 수확하는 농장으로 바뀌었다. 전봇대마다 구인 전단지가 붙어있던 시절엔, 적어도 당신의 구직 정보가 다른 누군가의 사업 재료가 되진 않았다.
이제 채용 플랫폼의 실질적 자산은 '구직자의 신상과 역량 데이터'다. 하지만 정작 그들이 갖고 있지 않은 건 '기업이 진짜 원하는 인재상', 즉 수요의 본질 데이터다. 채용 플랫폼은 노동 공급 측 데이터에는 풍부하지만, 노동 수요 측 데이터에는 접근할 수 없다. 이 불균형이 AI 매칭의 한계를, 구직자 피드백 부재를, 그리고 데이터 상업화 논란을 만들어낸다.
하지만 이건 불가능한 문제가 아니다. 오히려 해법은 명확하다. 구직자와 구인기업의 '정보 비대칭'을 해소하는데 집중하면 된다.
EU는 2023년 합의된 AI Act에 따라 채용 AI를 '고위험 시스템'으로 규제하며, 지원자는 평가 기준 알 권리를 법적으로 보장받는다. 한국에서도 2025년 발의된 채용공정법 개정안은 '익명화된 합격자 평균 스펙' 공개를 제안했으나, 기업 반대로 계류 중이다.
이 시점에서 채용 플랫폼의 역할에 대한 재정의가 필요하다. 익명화된 탈락 사유 통계만이라도 제공된다면, 구직자는 다음 지원에서 개선점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직장인 익명 커뮤니티 '블라인드'처럼, 기업별 후기와 평가 기준이 자유롭게 오가는 장(場)이 있다면 구직자는 비로소 '탈락'을 통해 배우는 시대를 맞이할 수 있을 것이다.
300번 떨어지더라도, 300번 배울 수 있다면, 그것은 실패의 반복이 아니라 성장의 궤적이 된다. 학습 가능한 실패만이 성장의 동력이 될 수 있다. 이제 채용 플랫폼은 단순 중개자를 넘어 '학습 가능한 구직 경험의 설계자'가 되어야 한다. 데이터를 파는 게 아니라, 이해를 제공하는 장(場)이 되어야 한다. 기업과 구직자 사이의 정보 격차를 메우는 것, 그것이 채용 플랫폼의 본질이 되어야 한다.
구직자의 데이터가 본연의 목적을 달성하려면, 채용 플랫폼이 구직자와 재직자, 취준생과 면접관을 이어주는 커뮤니티가 되어야 한다. 그 안에서 기업은 무엇을 원하는지 말해야 하고, 구직자는 그 내용을 바탕으로 준비할 수 있어야 한다. 그때야 비로소 채용은 '노력의 증명'이 되고, 이력서는 '성장의 증거'가 된다.
구직자는 상품이 아니다. 구직자의 이력서는 데이터가 아니다. 구직자는 배우고, 성장하고, 기여할 수 있는 사람이다. 앞으로 우리에게 필요한 채용 플랫폼은 사회인으로 데뷔할 사람들을 돕는 사회적 기업이여야 한다.
이 당연한 사실을, 관문이 가리고, 관행이 묻고, 우리가 잊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