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 결핍의 추적기 : 인형의 집을 나서지 못하는 청년들
지난달 국가데이터처가 발표한 올해 1월 고용동향에 따르면 '쉬었음(취업 준비·가사·육아·질병 등 특별한 사유 없이 쉬고 있는 상태)' 인구는 278만 4,000명으로 집계됐다. 2003년 통계 작성 이래 1월 기준 역대 최대치다. 이 중 청년 세대만 따지면 15~29세 46만 9,000명, 30대 31만 8,000명으로 78만 7,000명에 달한다. 웬만한 지방 광역시 하나가 통째로 멈춰 선 셈이다.
뉴스와 소셜미디어에선 이 숫자가 나올 때마다 비슷한 말들이 따라붙는다. "요즘 젊은이는 의욕이 없다", "힘든 걸 못 견딘다", "요즘 청년은 눈이 너무 높다". 하지만 정작 쉬고 있는 청년들에게 물어보면 다른 이야기가 나올지도 모른다. 좋은 대학을 졸업하고 안정된 일자리를 얻는 게 모두에게 가능한 일이었을까.
한국의 대학 진학률은 1990년대 이후 70%를 넘어섰다. 세계 최고 수준이다. 그런데 그들이 나와야 할 일자리는 그만큼 늘지 않았다. 작년 말 한국개발연구원(KDI)은 ‘사교육 의존의 구조적 원인에 대한 고찰 및 함의’ 보고서에서 부모의 불안이 사교육 시장을 키운다는 분석을 내놓았다. 자식이 좋은 대학에 못 가거나, 좋은 일자리를 얻지 못할까봐서다.
교실 풍경이 변했다
매년 대학 졸업생은 늘어나는데 양질의 일자리는 부족해지는 현실 속에서 부모의 교육열은 아이를 위한 '생존 전략'일 수 있다. 갈수록 치열해지는 경쟁은 불안을 키우고, 날 선 불안은 이미 낯설지 않은 풍경을 만들어냈다. 거기엔 이런 장면들이 등장한다.
"틀린 건 표시하지 말아 주세요. 아이가 상처받아요", "발표는 시키지 말아 주세요. 불안해해요", "친구랑 다퉜는데 오늘 안에 해결해 주세요."
아이가 감당해야 할 실패와 갈등을 부모가 앞서서 제거한다. 아이의 불편함은 학부형의 '불만 민원'이 되고, 교사에게는 '추가 과제'가 된다.
사랑이 경험을 대신할 때
OECD에 따르면 한국 20대의 81%가 부모와 함께 산다. OECD 평균 50%의 1.6배다. 집값, 불안정한 첫 일자리, 경력 중심으로 좁아진 취업 문턱. 취업 한파가 길어지면서 취업 의사도, 구직 활동 계획도 없는 '쉬었음' 20대 청년이 44만 명을 넘어섰다. 반면 인사담당자 설문들에서는 협업·소통 역량을 '요즘 더 보기 어렵다'는 응답이 반복된다.
헨리크 입센의 희곡『인형의 집』에서 여성 주인공 노라는 '인형'처럼 살아온 자신을 깨닫고 문을 나선다. 노라에게는 적어도 나설 용기가 있었다. 지금의 청년들에게 부족한 것은 용기가 아니라, 나선 뒤 버텨낼 관계의 기술이다.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과잉 간섭은 자녀가 사람을 만나고 교류할 기회를 빼앗았고, 관계의 기술을 익히지 못한 '쉬었음' 청년들이 집에 머무는 시간은 점점 길어져만 간다.
함께 사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가족은 더 오래 한 몸처럼 움직인다. 아이가 스스로 겪어야 할 실패와 불편을 대신 처리해 주는 보호는 단기적으로는 친절해 보인다. 그러나 장기적으로는 회복 탄력성을 약화시킨다. 넘어진 후 일어서본 경험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선을 넘는 부모의 '경험 대행'이 잦아질수록 아이는 사교성을 연습할 기회가 줄어든다. 감싸기가 훈육을 대신하는 일이 반복되면, 집에서 고치지 못한 바가지가 밖에서도 새기 마련이다.
먼저 흔들린 교실
이전에 잘 없던 상황이 발생하고 그 양상이 확대되면 사회는 그 현상에 이름을 붙인다. 2007년 일본에서는 학교에 무리한 요구를 반복하는 학부모를 두고 '몬스터 페어런츠'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이후 교사들의 하루는 달라졌다. 학부모 면담 전 녹음을 준비하는 교사가 생겨났고, 일부 학교는 면담 시간을 20분으로 제한하거나 문제가 반복되는 가정의 아이에게 교사를 두 명 배치하는 방식으로 대응했다. 누군가를 탓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시스템이 무너지지 않게 하기 위해서였다.
한국 학교도 비슷한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 퇴근과 주말을 가리지 않고, 심지어 휴가 중에도 울리는 교사들의 휴대폰 메시지들. '우리 아이가 상처받았네요'라는 짧은 문장은 어느새 교육청을 거쳐 국민신문고로 향하는 공식 민원의 문법이 되었다.
교실 풍경도 달라졌다. 교사노조 관계자는 수학 시간에 어려운 문제를 풀지 말라, 받아쓰기를 하지 말라, 틀린 것은 지적하지 말라는 식의 요구가 늘어난다고 전한다. 이런 민원 하나가 교사의 수업 방식을 바꾸고, 학급 전체의 기준을 흔든다. 수업보다 응대가 늘고, 교육보다 증빙이 쌓이고, 지도는 위험 회피로 대체된다.
그 흐름은 대학까지 이어진다. 서울의 한 교수는 학기 강의계획서에 "부모가 성적에 항의했는데 문제가 없을 경우 F학점을 주겠다"는 문구를 직접 명시했다. 서울대 조교들이 공개한 학부모 이메일에는 "영재고 출신에 수학·물리에 통달한 아이가 C학점을 받았다"며 "조교 주제에 채점하느냐", "교육부에 민원을 넣겠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학교는 어느새 전인교육의 장이 아니라, 학부모 민원을 받아내는 고충상담소가 되어가고 있다.
부대도 흔들리고, 일터도 흔들린다
군대도 예외가 아니다. 훈련에서 빼 달라거나 식사를 챙겨 달라는 연락이 간부들의 개인 번호로 직접 걸려온다. 훈련 강도를 낮추면 왜 군대에 보냈냐는 항의가, 높이면 훈련이 과하다는 항의가 들어온다. 훈련이 '설명해야 할 일'이 되고, 지휘가 '응대해야 할 일'로 바뀌는 구조다. 최근 5년간 복무부적합으로 중도 전역한 병사는 약 3만 명에 달한다는 보고가 있다.
일터도 마찬가지다. 입사 3주 된 신입 직원의 부모가 어려운 일은 주지 말라고 회사에 전화하거나, 좋은 대학 나온 아이에게 잡일을 시킨다며 항의하는 사례가 보고된다. 국내 100대 기업 인사담당자의 35%가 직원 부모나 가족에게서 연락을 받은 적 있다고 답했다.
부모의 걱정을 이해하지 못할 바는 아니다. 다만 걱정이 민원으로 바뀌는 순간, 군대는 불안 관리 조직으로, 회사는 항의 응대 조직으로 변하기 시작한다.
대면이 끊긴 시간, '코로나 학번'의 등장
부모의 과잉보호가 대면 관계 연습을 줄여온 자리에, 팬데믹이 마지막 남은 통과의례마저 끊어버렸다. 2020년, 대학에 들어간 이들은 캠퍼스 대신 모니터로 학기를 시작했다. 이름과 얼굴을 모르는 채 한 학기가 지나고, 2학년이 되어서야 마주한 '동기'들은 여전히 낯설었다.
온라인 수업은 통학 시간을 아껴줬지만, 점심때마다 어색하게 섞여 앉아야 했고, 선배들 눈치 보며 술잔을 따라야 했던 그 시간들도 함께 사라졌다. 한 대학생은 말한다. "발표할 때 다른 사람 표정을 볼 수가 없어요. 다들 무표정한 검은 화면이라, 내가 잘하고 있는 건지, 망하고 있는 건지 전혀 감이 안 와요." 함께 웃고, 함께 울던 순간들이 사라진 자리, 대인관계는 더욱 어렵게만 느껴졌다.
WHO는 팬데믹 첫해 전 세계적으로 불안과 우울증이 약 25% 증가했다고 밝혔다. 국내 상황도 다르지 않았다. 팬데믹 기간 대학생 3명 중 1명 이상이 경증 이상의 우울 증상을 겪었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교실 밖에서 배우는 암묵지(말로 설명되지 않는, 경험으로 체화된 지식)를 배우기는커녕, 인턴이나 아르바이트 자리조차 구하기 어려웠다.
한국직업능력연구원은 2024년 「청년층 노동시장 이행 실태조사」에서 이 시기를 전후로 노동시장에 진입한 세대를 연구했다. 분석 결과 1990년대 중후반생은 29세가 된 이후에도 '쉬었음' 비중이 좀처럼 줄지 않는 '상흔 효과(과거의 경험이 이후 행동에 지속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현상)'를 보였다.
2000년대생은 더 직접적이다. 취업 준비 단계조차 건너뛰고 곧장 비경제활동으로 빠져들었고, NEET(학교에 다니지 않고, 일을 하지 않으며, 직업훈련도 받지 않는 청년층) 집단 안에서 '쉬고 있다'는 응답이 90%를 차지하는 구간도 포착됐다.
해외에서도 원격수업 세대의 사회성 부족과 적응 문제를 다룬 보도들이 이어졌다. 심지어 '이번 졸업생은 건너뛰고 다음을 기다리겠다'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한국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뜻이다.
쉬고 있는 청년들 중 상당수는 게으른 것이 아니라, 어디서부터 다시 시작해야 할지 모르는 상태에 가깝다. 스펙은 쌓았으나 스무 살에 몸으로 익혔어야 할 관계의 기술은 채워지지 않았다. 그 기술은 강의실에서 배우는 것이 아니었다. 엉거주춤한 MT 자리에서, 졌는데도 웃으며 악수해야 했던 동아리 경기 뒤에서, 조별 과제 중 어색한 침묵을 깨던 농담 속에서 조금씩 몸에 붙는 것이었다.
관계의 기술을 잃어버린 채 노동시장에 진입하는 세대에게, 시대는 하필 그 기술을 가장 요구하는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
AI 시대, 소프트 스킬의 역설
AI가 인지 노동을 대대적으로 재편하는 시대, 기묘한 역설이 생긴다. AI가 지적 업무를 대체할수록 사람의 비교우위는 협업·설득·공감 같은 사회적 능력에 더 집중된다.
한국은행은 2023년 「인적자본과 노동시장 성과」 분석에서 소통·협업 같은 소프트 스킬이 뛰어난 사람일수록 임금이 최대 5.9% 더 높다는 결과를 내놓았다. 인적 자본의 가치는 이제 기술적 스펙이 아니라 관계와 소프트 스킬에서 증명된다. '직무 적합성'보다 '협업 적합성'이 먼저 요구되는 시대가 오고 있다. 관계 기술의 시장가치는 오르는데, 그것을 연습할 공간은 줄었다.
그 능력을 익혀야 할 시기에, 이 세대는 학원 뺑뺑이를 돌았다. 웬만한 일은 부모가 대신 처리했고, 관계의 범주를 넓혔어야 할 대학 생활과 군복무마저 '경험 대행' 속에 통과했다. 실패를 극복한 경험, 갈등을 참아본 경험, 어색함을 견뎌낸 경험이 부족해지면서, 그 빈자리를 '사회성이 부족하다'는 말로 너무 쉽게 채우고 있다.
우리는 무엇을 가르쳤고, 무엇을 빼앗았는가
그렇다면 이 세대를 맞이하는 기성세대는 어떤가. 청년의 협업 능력을 탓하기 전에 먼저 돌아볼 장면이 있다. 한 대기업 팀장은 신입 사원이 실수했을 때 '이런 것도 못 하냐'라고 질책했다가, 해당 사원이 극단적인 선택을 암시하는 말을 남겨 인사팀에 불려 가는 일을 겪었다.
많은 기성세대들이 '내가 겪은 고생은 너희도 당연히 겪어야 한다'는 태도를 고집한 결과, 갑질 논란은 끊이지 않고, 세대 간 거리는 좁혀지지 않으며, 조직 내 갈등만 심화됐다. 그런데도 시선은 여전히 청년을 향한다.
한 취업플랫폼이 2024년 직장인 2,236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75.9%가 세대차이를 느낀다고 답했고, 이직이나 퇴사 증가로 이어진다는 응답도 27.9%에 달했다. 다만 세대차이를 극복하기 위한 노력을 하고 있다는 응답은 49.5%에 그쳤고, 기업 차원에서 조직문화 개선 의지가 없다고 답한 비율은 80.7%로 압도적이었다.
국내 기업의 60.9%가 신입사원의 조기 퇴사를 경험하고 있다는 조사 결과는 이 수치들과 무관하지 않다. 직장 내 괴롭힘 신고는 2024년 1만 2,253건으로 집계됐지만 인정 비율은 12.4%에 그쳤다. 조직 내부에 자리잡은 문화는 과연 누구에 의해 만들어졌는지 먼저 돌아볼 일이다.
세대 갈등이 첨예한 가운데 기업들은 이미 대안을 꺼내 들었다. 신입 업무를 자동화하며 공채를 줄이던 대기업들은 채용의 빗장을 걸어 닫았고, 이제 경력자들의 업무 데이터까지 AI에게 학습시키기 시작했다.
아이가 성장하는 동안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대신해 온 것은 단순한 기회비용 손실이 아니다. 실패를 극복하는 시간, 갈등을 참아내는 시간, 어색함을 견뎌내는 시간. 그 시간들이 사라질수록 아이가 어른으로 건너가기 위해 스스로 밟아야 했던 디딤돌도 함께 사라진다.
직무 적합성보다 먼저 협업 적합성에 부적격 판정이 내려진다. 그 결과는 이미 청년 세대 78만 7,000명이라는 숫자로 증명되고 있다. 집을 나서지 못하는 노라들은, 어쩌면 사회인으로 성장하는 법을 가르쳐준 적 없는 우리 사회가 만들어낸 세대일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