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치동 캠핑카에서 시작된 질문
흔히 '사교육의 메카'로 불리는 대치동은 자녀 교육을 위해 전월세 매물을 찾는 수요가 계절을 가리지 않고 꾸준히 이어진다. 최근 학원가에 학부모들이 자녀 휴식 공간으로 활용하는 캠핑카가 등장해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대치동 인근 소형 오피스텔 월세는 110만 원 이상, 190만~260만 원대까지 형성된다. 방학 시즌엔 수요가 몰리며 더 뛴다. 방학 특강만 듣기 위해 멀리서 이동해 오는 학생들이 있고, 강의와 강의 사이 시간이 비면 아이는 마땅히 쉴 곳이 없다. 그러니 주정차 과태료를 감수하면서도 도로변에 머무는 쪽이 '합리적'인 선택이 되는 순간이 생긴다.
그런데 이번엔 일반 차량이 아니라 대형 캠핑카까지 학원가에 등장한 것이다. 이를 취재한 한 언론사는 '안타까운 현실', 또 다른 언론사는 '해외 토픽감'이라는 제목을 달았다.
학생은 줄어드는데 학비는 더 들어간다. 2024년 초·중·고 사교육비 총액은 29조 2천억 원으로, 전년보다 7.7% 늘었다. 학생 수는 줄었는데, 아이 한 명당 부담은 해마다 커졌다. 이 금액은 윤석열 정부가 삭감해 과학기술계가 '국가의 미래 먹거리가 끊긴다'고 반발했던 2024년 정부 R&D 예산(26조 5천억 원)마저 훌쩍 넘어선다.
국가가 미래를 위해 쓰는 돈보다 더 큰 돈을 지불한 우리는 대체 무엇을 사고 있는 걸까.
공포가 시장을 키웠다
다른 집 아이들도 다 하니까. 사교육 시장에는 유독 자주 등장하는 말이다. 안 하면 불안하고, 해야 안심이 된다. 한국개발연구원(KDI) 한성민 연구위원은 '사교육 의존의 구조적 원인에 대한 고찰 및 함의' 보고서를 통해 부모의 경쟁 심리가 사교육비 증가와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상관관계를 보인다고 밝혔다. 사교육 시장이 학부모의 불안을 양분으로 자라고 있다는 해석이 나오는 배경이다.
믿음은 하나다. 고학력이 전문직으로, 전문직이 안정으로 이어진다는 공식. 한국 사회가 오랫동안 학벌 프리미엄을 유지해왔고, 그 프리미엄이 계급 이동의 통로 역할을 해왔다는 것은 사실이다.
그런데 그 믿음을 지탱하던 현실은 흔들리고 있다. 희망퇴직과 구조조정 소식이 낯설지 않고, 장사를 접었다는 이야기도 주변에서 쉽게 들린다. 정년은 정해진 미래라 믿었고, 그래서 준비할 시간도 있다고 여겼다. 그러나 준비한 결과가 늘 예상대로 되는 것은 아니다. 겉으로는 고용률이 높다고 하지만, 실업급여 신청 창구는 갈수록 북적이고 있다. 숫자는 안정이라 말하는데, 풍경은 불안해 보인다.
그 불안은 자식을 키우는 부모에게도 예외가 아니다. 아직 학비를 걱정해야 하는 처지에서 내 앞날조차 불확실하니, 더욱더 아이만큼은 안전한 줄에 세워두고 싶어진다. 그래서 29조 원은 아이의 미래를 위한 투자기도 하지만, 부모의 불안을 잠재우는 처방 같아 보이기도 한다.
부모의 계산은 비합리적 광기가 아니라, 그렇다고 믿고 살아온 세계의 규칙에 충실한 반응이다. 문제는 그 규칙이 만들어진 지난 세계와, 아이들이 살아갈 미래 세계에 거대한 균열이 발생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사람의 몫으로 생긴 일자리
농업 혁명으로 땅을 잃은 농부들은 산업 혁명 덕분에 도시로 흘러들었다. 공장이 블루칼라를 만들었고, 사무와 행정이 화이트칼라를 만들었다. 산업이 고도화되면서 블루칼라 일자리는 설비와 로봇에 자리를 내줬다. 그래도 인간의 지능을 써야 하는 화이트칼라와 전문직만큼은 굳건해 보였다.
지난주 미국의 주식 시장이 크게 출렁였다. 한 작은 리서치 업체가 내놓은 '2028년 글로벌 지능 위기'(The 2028 Global Intelligence Crisis)라는 제목의 보고서 때문이었다. 다소 급진적으로 보일 수 있는 이 가상 시나리오는, 인공지능의 영향력이 확장하면서 화이트칼라 일자리가 붕괴되고 그 여파가 사회 전반에 미칠 변화를 비관적으로 그리고 있다.
시나리오의 전개는 이렇다. AI가 사람의 몫을 대체하면서 생산성은 오르지만, 그 과실은 노동자가 아닌 컴퓨팅 자산을 보유한 자본가들에게 집중된다. AI가 처리하는 속도와 양이 늘어날수록 사람의 일자리는 줄어들고, 소득을 잃은 사람들은 지갑을 닫는다. 소비가 위축되면 서비스업이 무너지고 기업들이 도미노처럼 쓰러지는 악순환이 시작된다.
결국 인공지능이 전례 없는 풍요를 가져올지라도, '지능'을 유일한 자산으로 삼아온 화이트칼라 계층이 오히려 경제적 소외를 경험할 수 있다는 것이 이 보고서의 핵심 경고다. 물론 이는 하나의 가상 시나리오에 불과하며, 현실이 반드시 이렇게 흘러간다는 보장은 없다. 그러나 '머리로 먹고산다'는 믿음에 기대어 살아온 우리에게, 이 시나리오가 던지는 질문은 분명히 유효하다.
한국의 사교육이 지금까지 키워 온 '머리 쓰는 능력'과 그것이 보장해 줄 거라 믿었던 안정이, 이 시나리오 속에서는 동시에 흔들리고 있기 때문이다.
사교육이 훈련시킨 것
사교육이 오랫동안 아이들에게 가르쳐온 것도 같은 방향이었다. 정답을 빠르게 찾는 훈련, 정해진 문제를 정해진 형식으로 푸는 기술. 그 기술이 시험의 언어였고, 시험이 계급 이동의 통로였다. 부모 세대는 이 '정답 기술'을 통해 화이트칼라와 전문직, 곧 안정된 삶에 진입할 수 있다고 믿어왔고, 그 믿음이 지금까지 사교육비를 떠받쳐왔다.
하지만 정답을 빠르게 내는 능력은 이제 더 이상 인간만의 무기가 아니다. 같은 유형의 문제를 누구보다 빨리, 많이 푸는 존재는 이미 사람보다 인공지능에 가깝다. 물론 기본적인 지식의 체계화와 논리적 사고력을 기르는 '정답 교육' 자체가 완전히 무의미해지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여전히 복잡한 세상을 이해하는 기초 체력이 되어준다.
문제는 그 '기초 체력'만으로는 더 이상 경쟁력이 되지 않는 세상이 오고 있다는 점이다. 앞으로 수년간 수능 제도는 남아 있겠지만, 정답을 빨리 맞히는 능력의 시장 가치는 점차 떨어질 수밖에 없다. 진짜 싸움은 정해진 문제의 답을 찾는 데서, 아직 아무도 묻지 않은 질문을 스스로 발견하는 쪽으로 옮겨가고 있다.
그렇다면 29조 원은 아이의 경쟁력을 사는 돈인가, 부모의 불안을 버티게 하는 진정제인가. 영끌로 부동산 시장에 뛰어들고, 빚투로 주식 시장에 뛰어들 듯, 안 하면 아이가 입시의 흐름에서 뒤처지는 것 아닐까 하는 FOMO(Fear of Missing Out, 나만 뒤처진다는 불안)가 학부모를 다시금 학원 앞에 세우게 된다.
사랑일까, 착오일까
세상 그 누구에게도 학부모를 비난할 자격은 없다. 그 선택은 자신이 살아온 세계에서 가장 합리적인 답이었다. 이제 전제가 바뀌었을 뿐이다. 불확실성이 커질수록 사람은 안심하고 기댈 언덕을 찾는다. 그리고 한국에서 가장 많은 이들이 기대고 있는 언덕은 여전히 수능 점수와 좋은 대학이다.
그 언덕 너머로 부모가 바라는 것은 결국 아이의 '행복'이다. 안정적인 직업, 흔들리지 않는 삶, 그로부터 비롯될 작은 여유와 웃음. 문제는 AI라는 거대한 물결 앞에서 '행복한 삶'의 공식 자체가 근본적으로 흔들리고 있다는 사실이다. 부모가 믿어온 '좋은 대학 > 안정된 직장 > 행복'이라는 등식은, 아이가 살아갈 세상에서는 더 이상 성립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안은 부모를 다시 익숙한 길로 밀어 넣는다.
아이가 줄어드는데 사교육비는 더 늘었다는 역설이, 단지 교육열 때문만은 아닐지 모른다. 어쩌면 그 돈은 미래에 대한 공포가 어디로도 빠져나가지 못해 만든 압력이다. 아이가 사는 세계의 지형도가 바뀌고 있는데도, 부모는 자신이 살아남을 거라 믿는 방식으로 아이를 안전하게 만들고 싶어 한다. 그 방식이 과연 아이의 진짜 행복으로 이어질 길인지, 우리는 묻지 않은 채 '누구도 장담해주지 않았던 약속'을 붙들고 있는 건 아닐까.
'2028년 글로벌 지능 위기'보고서는 '카나리아는 살아 있다'라는 문장으로 끝을 맺었다. 이는 광부들이 유독가스 위험을 감지하는 조기경보 장치로 썼던 카나리아에 빗댄 표현으로, 위기가 현실화되기 전 아직 대응할 시간이 남아 있다는 뜻이다. 다만 대응할 방법은 기록되어 있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