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시대, 무엇이 문제인지 모르는 게 문제가 된다
지난 2월, 소셜미디어에 한 장의 인포그래픽이 돌았다. 링크드인에서 시작된 그림이었다. 81억 인류를 2,500개의 점으로 압축했고, 만든 사람 스스로 "정밀 통계가 아니라 추정치"라고 밝혔다. 그러나 퍼짐은 빨랐다. 화면 대부분은 회색이었다. AI를 한 번도 써보지 않은 사람들이다. 녹색 점은 화면 아래쪽에 겨우 몇 줄을 이루고 있었다. 무료 챗봇을 써본 사람들, 16%. 노랑과 빨강은 마지막 줄 끝에 점 몇 개로 흩어져 있었다. 월 20달러를 내는 사람, 0.3%. AI로 코딩하는 사람, 0.04%에 불과했다.
그걸 본 사람들은 안도했다. 아직 늦지 않았다고. 세상이 생각만큼 빨리 바뀐 건 아니라고. 그러나 그 안도감은 착시였다. 해당 인포그래픽은 얼마나 많은 사람이 AI를 쓰는지만 보여줬을 뿐, 그 바깥에서 기업과 학교, 채용시장이 어떤 속도로 먼저 재편되고 있는지는 담아내지 못했다.
소비자의 일상에서 AI는 아직 선택지처럼 보인다. 그러나 기업 현장은 다르다. 국내 대기업들은 통신, 금융, 제조를 가로질러 AI 전환을 전사적으로 밀어붙이고 있다. 기업이 던지는 질문은 단순하다. 누가 AI를 더 잘 활용해 더 많은 일을 더 적은 비용으로 해낼 수 있는가. 그 질문이 채용 판단의 기준이 되는 순간, 신입을 뽑아 몇 년을 기다리는 일은 선택지에서 밀려난다.
같은 AI를 써도, 사람은 둘로 갈린다. 한쪽에는 AI를 사고 증폭기로 쓰는 사람이 있다. 똑같은 보고서를 받았을 때, 이런 부류는 AI에게 "이 기획의 논리적 약점이 뭐지? 이 가정을 깨뜨릴 반례는 없어?"라고 묻는다. 판단의 재료를 얻고, 자기 생각을 더 날카롭게 벼린다.
대학 강의실에서도 마찬가지다. 레포트 주제를 받았을 때, 한쪽은 AI에게 "이 주제에서 가장 논쟁적인 지점이 뭐지?"라고 묻고, 다른 쪽은 "이 주제로 레포트 써줘"라고 입력한다. 둘 다 AI를 썼지만, 한쪽은 판단의 주도권을 끝까지 쥐었고 한쪽은 그 주도권을 조용히 넘겼다. 결과물의 차이보다 더 무서운 건 그다음이다. 주도권을 넘긴 사람은 자신이 넘겼다는 사실조차 알아채지 못한다.
이 차이는 AI를 얼마나 잘 다루느냐의 문제가 아니다. 더 앞선 단계, 곧 문제를 문제로 볼 수 있느냐의 문제다. 눈앞에 벌어진 일을 그냥 처리해야 할 과제로 받아들이는 사람과, 왜 이런 일이 생겼는지 근원을 파고드는 사람은 AI를 전혀 다르게 쓴다. 흔히 "더 나은 질문을 던져야 한다"라고 말하지만, 질문은 기술처럼 훈련해서 꺼내는 문장이 아니다. 문제를 포착하는 게 우선이다. 그게 진짜 해결해야 할 문제인지 동료들과 검증하고 정의한 뒤, 근원을 파고드는 과정에서 비로소 생겨나는 것이 질문이다. 그리고 그 질문이 문제 해결의 단초가 된다. 그 과정을 건너뛴 사람에게 AI는 사고의 파트너가 아니라 일을 대충 넘기는 대행 장치가 된다.
미국 코넬대 연구팀이 2,500여 명을 대상으로 실험한 결과는 이 위험을 구체적으로 보여줬다. 연구팀은 참가자들에게 편향된 AI 글쓰기 도구를 제공하고 사회적 쟁점에 대한 글을 쓰게 했다. 실험 전에 '이 AI는 편향돼 있을 수 있다'라고 반복해서 경고했지만 결과는 달라지지 않았다. 참가자들은 글을 쓰는 과정에서 자신도 모르게 AI가 제시한 방향으로 생각이 이동했다. 더 섬뜩한 건 그다음이다. 실험이 끝난 뒤 'AI의 영향을 받지 않고 내 주관대로 썼다'라고 답한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 AI 논리에 따라 생각이 바뀌었는데도 그것을 자신의 의지라고 착각한 것이다. 이 왜곡은 개인의 판단 문제로만 끝나지 않는다. AI를 다루는 사람의 몰입 수준과도 맞물린다.
갤럽의 2025 보고서에 따르면 전 세계 직원 중 일에 몰입한다고 답한 비율은 21%에 그쳤다. 전년도 23%에서 더 떨어진 수치다. 나머지 79%는 무관심하거나 적극적으로 불만을 표출하는 상태다. 조직이 해결해야 할 문제를 포착하려면 먼저 실무자가 그 일에 관심이 있어야 한다. 그 일이 왜 중요한지 느끼지 못하는 사람은 문제를 찾으러 나설 동기가 생기지 않는다. 찾으러 나서지 않으면 문제는 보이지 않는다. 무관심한 자리에서 AI는 사고의 파트너가 아니라 관심을 가장하는 외주 창구가 될 뿐이다.
칙센트미하이가 말한 몰입은 어렵지 않다. 일은 버거울 만큼 어렵지도, 시시할 만큼 쉽지도 않을 때 사람을 붙든다. 너무 쉬우면 지루해지고, 너무 어려우면 불안해진다. 문제 정의를 건너뛰고 답만 받아올 때 이 균형이 흔들린다. AI가 과제의 난이도를 인위적으로 낮추면 사람은 몰입 구간을 벗어나 지루함 쪽으로 밀려난다. AI가 일을 쉽게 만들수록 몰입은 더 어려워질 수 있다. 칙센트미하이는 이처럼 에너지가 분산되고 집중이 흩어진 상태를 '정신적 엔트로피'라고 불렀다. 그 상태가 바로 이것이다.
해야 할 일은 있는데 왜 해야 하는지 모르고, 집중하려 해도 생각이 흩어지는 상태. 보고서를 열었다가 닫고, 다시 열었다가 SNS를 확인하는 그 반복. 업무 메신저 알림은 쌓이는데 머릿속에는 내가 투자한 기업의 주가가 궁금한 시간. 이런 상태에 놓인 사람은 눈앞의 펼쳐지는 현상 속 문제를 인지하지 못한다. 문제가 보이지 않으니 질문도 생기지 않는다. AI가 아무리 정교해져도, 질문이 없는 사람의 손에서는 그저 빠른 외주 창구가 될 뿐이다.
사고 외주화는 게으름의 문제가 아니다. 몰입의 조건이 무너진 자리에서 AI를 만났을 때 일어나는 필연적 결과에 가깝다. 그래서 AI 시대의 구조조정은 반드시 해고 통지서의 얼굴로만 오지 않는다. 더 무서운 변화는 덜 뽑고, 덜 가르치고, 덜 기다리는 방식으로 먼저 온다. 이미 채용시장에선 신호가 나오고 있다. 한 채용 플랫폼이 자사 게재 공고를 분석한 결과, 2025년 대기업 정규직 신입 공고는 전년 대비 43% 줄었다. 경력직 공고도 41% 감소했다. 정규직은 줄고 계약직과 인턴은 늘었다.
이직이 어려워지자 직장인들은 자리를 지키며 기회를 모색한다. 이직 공고를 열어봤다가 닫고, 면접을 준비하다 포기한다. 떠나고 싶어도 떠나지 못하고, 버티는 것이 전략이 된 시대. 이를 두고 '대잔류(Great Stay)'라고 부른다. 그런데 이 잔류는 안심이 아니다. 기업의 논리는 단순하다. 기존 인력에 AI를 붙이면, 신입을 뽑아 몇 년을 기다릴 이유가 줄어든다. AI가 사람을 당장 내보내는 게 아니라, 새로 들어올 자리를 먼저 줄이는 방식으로 시작된다.
가장 먼저 줄어드는 곳은 신입이 들어설 일자리다. 입사 초반 신입이 맡던 일들이 있다. 회의록을 정리하고, 자료를 검색해 취합하고, 보고서 초안을 잡고, 고객 문의에 답하는 일. 누군가 시켜서 하는 것 같아도, 그 과정에서 조직의 언어와 맥락을 몸으로 익히던 일들이다. 그러나 점점 더 많은 기업에서 회의록 정리는 노트 앱이, 자료 취합은 검색 AI가, 보고서 초안은 생성형 AI가 대신한다. 단순하고 반복적인 일들이 먼저 자동화 압박을 받고 있다. AI가 그 자리를 채우는 속도가 빨라질수록, 기업은 입사해서 배워야 하는 사람을 기다려줄 이유를 잃고 있다.
대학은 AI를 필수 역량으로 선언했다. 그러나 현장에서는 다른 일이 벌어지고 있다. 과제와 시험을 AI에 맡겨도 졸업장은 받을 수 있다. 문제를 포착하고, 조별 과제를 동료들과 검증하고, 근원을 파고드는 과정 없이도 그럴듯한 결과물을 뽑을 수 있다. 4년 동안 반복하면 무엇이 훈련되는가. 사고력이 아니라 사고를 넘기는 습관이다. 그렇게 졸업장을 받은 청년이 시장에 나온다.
그 앞에는 이미 AI를 사고 증폭기로 단련한 재직자들이 있다. 문제를 정의하고, AI로 검증하고, 결과를 자기 판단으로 마무리하는 사람들이다. 과거 몇 명 분량의 일을 해내는 숙련 인력이 자리를 지키고 있는 셈이다. 2년 혹은 4년간 애써 졸업장은 받았지만, 채용 시장의 문은 구직자의 의지와 상관없이 닫히고 있다.
이 장면이 말해주는 건 단순한 취업난이 아니다. 학교에서 배우고, 직장에서 실전을 익히고, 정년까지 간다는 산업사회의 순서가 어느 한 지점에서 끊겨버렸다는 것이다. 무너지는 것은 일자리의 숫자만이 아니다. 일자리로 가는 경로, 그 안에서 자라는 방식, 사람이 사람으로서 생각을 쌓아가는 구조가 함께 흔들리고 있다.
앞으로 조직이 붙잡으려는 사람은 AI를 가장 빨리 쓰는 사람이 아닐 것이다. 문제를 포착하고, 동료와 검증하고, 근원을 파고들며 질문을 만들어내는 사람. AI가 내놓은 답을 그 질문으로 다시 의심하고, 자기 판단으로 마무리할 수 있는 사람일 것이다. 그 능력은 AI가 대신해 줄 수 없다. 몰입 없이는 만들어지지도 않는다. 몰입이 희소한 경험이 될수록, AI는 인간의 일자리를 점점 더 깊게 파고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