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외불안에 휩싸인 사회

근면성실 일개미는 옛말이고, 일확천금 빚개미가 넘쳐난다

by 우드코디BJ
unnamed.jpg 여러 목재 수종으로 만들어진 지휘봉


가르칠 교(敎), 채찍 편(鞭). 글자를 풀면 뜻이 선명하다. 가르치기 위한 채찍. 지식을 전달하는 도구에 왜 채찍이라는 단어를 붙였을까. 칠판을 가리키기 위해서라면 막대기면 충분했다. 굳이 채찍이어야 했던 이유가 있다. 채찍은 방향을 지시하는 물건이 아니다. 복종을 만들어내는 물건이다.


군대에는 지휘봉이 있다. 지휘관이 손에 쥐고 부대가 나아갈 방향을 정하는 물건이다. 지휘봉이 가리키는 곳으로 병사들은 움직인다. 반문하지 않고, 이탈하지 않고, 실행한다.


1970년대 한국의 교실을 떠올려 보자. 선생님은 교편을 들고 있었다. 때로는 칠판을 가리키기 위해, 때로는 졸고 있는 학생의 책상을 내리치기 위해. 학교에는 교련 과목이 있었고, 그 시간이 되면 학생들은 교련복을 갈아입고 제식훈련을 받았다. 지휘봉과 교편은 서로 다른 물건이었지만, 그 시대에는 비슷한 선상에 놓여 있었다. 부대를 통솔하는 방식과 교실을 통솔하는 방식이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 시절 나라를 다스리던 사람들은 군인 출신이었다. 국가를 운영하는 문법이 군대에서 왔으니, 학교도 그 문법에서 자유롭지 않았다. 가르침이 채찍이 된 것은 선생님 개인의 성정 때문이 아니었다. 전쟁의 상흔이 남아있는 가난한 나라가 '잘 살아 보세'를 외치며 한 방향으로 일사불란하게 움직여야 했기 때문이다.


그 무렵 한국은 두 차례 오일쇼크를 통과하고 있었다. 1973년 중동전쟁으로 유가가 네 배 폭등했고, 1979년 이란혁명으로 다시 한번 세계 경제가 흔들렸다. 석유 한 방울 나지 않는 나라에서 석유를 대량으로 써서 물건을 만들어 파는 수출 구조의 경제는 그때마다 뿌리째 흔들렸다.


그런데 한국은 그 위기를 기회로 바꿨다. 오일머니가 넘쳐나는 중동 건설 현장으로 인력을 내보내 외화를 벌어들였고, 허리띠를 졸라매고 수출량을 밀어붙여 불황을 돌파했다. 근면성실은 그 시절 국가가 국민에게 요구한 덕목이었고, 국민들은 별 보고 출근해 별 보고 퇴근한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일하며 한강의 기적을 이뤄냈다.


그렇게 성장하는 과정에서 수출품을 만드는 제조 현장에서는 산업 역군을 원했고, 학교는 그 요구에 맞는 인재를 키워냈다. 예비고사, 학력고사, 수능으로 이름이 바뀌는 동안에도 인재를 학력으로 줄 세우고 학연이 학벌을 만드는 방식만큼은 바뀌지 않았다. 교편과 지휘봉이 닮은 시대였듯, 산업과 교육도 같은 박자로 맞물려 돌아갔다.


그 시대는 지나갔다. 군부정권은 끝났고, 민주주의가 왔다. 국민이 직접 대통령을 뽑고, 교실에서 체벌이 금지됐으며, 교편을 든 선생님의 모습은 이제 찾아보기 어렵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있다. 교편은 사라졌는데, 그 채찍이 길들여 놓은 문법은 사라지지 않았다. 수능이라는 단일한 시험으로 사람의 가능성을 줄 세우는 제도는 그대로다. 어느 대학을 나왔느냐가 평생을 따라다니는 사회는 그대로다. 석유 한 방울 나지 않는 땅에서 에너지를 대량으로 써서 물건을 만들어 파는 경제 구조도 그대로다. 왜일까.


민주화 이후 그 시스템은 강제가 아니라 동의로 유지됐다. 제조업 수출 모델은 실제로 가난을 벗어나게 해줬고, 수능은 불공정한 세상에서 그나마 가장 투명해 보이는 사다리였다. 성공의 기억이 낡은 체제를 연명시켰고, 앞날에 대한 불안은 다른 선택을 상상하지 못하게 막았다.


강제로 맞던 교편은 사라졌다. 하지만 그 교편이 길들여 놓은 질서와 감각은 다른 이름으로 오래 남았다. 교편이 책상을 내리치는 소리에 움츠러들던 학생들은, 지금은 그 소리를 기억조차 하지 못하는 부모가 되어 자식을 학원으로 태워간다.


정치는 민주화됐지만, 삶을 굴려온 문법은 투표함 하나로 바뀌지 않았다. 우리가 표를 통해 바꾼 것은 통치의 형식이었지만, 그대로 남아 있던 것은 경제 성장의 방식과 인재 선발의 방식이었다. 투표함 앞에서는 주권자였지만, 자녀의 입시 앞에서는 다시 낡은 문법을 손에 쥐고 있다.


라인강의 기적에 빗대 세계가 주목한 '한강의 기적'을 만들어낸 기억은 시간이 지나면서 다른 형태로 변해갔다. 별 보고 출퇴근하며 허리띠를 졸라매던 국민은, 이제 남들보다 뒤처질까 두려워 빚투·영끌족이 되었다. 근면성실이 소외불안으로 바뀌었다고 해야 할까. 불안의 내용은 달라졌지만, 불안 자체는 사라지지 않았다.


최근 '3차 오일쇼크'라는 말이 다시 떠돌기 시작했다. 중동이 포화와 연기에 쌓이며 호르무즈 해협을 둘러싼 수송 차질과 봉쇄 위협이 다시 한국의 취약성을 드러내고 있다. 이미 구조조정의 한복판에 놓인 석유화학산업이 원자재 수급 위기에 봉착하며 불가항력을 호소하고 있다.


산업 전반에 막대한 악영향을 끼치는 '원유 대란 우려'가 수출 주도형 국가의 면전에 경고음을 내고 있다. 내부적으로는 '일자리 대란'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급격히 발전한 AI는 노동의 성격과 지식의 가치를 동시에 흔들고 있다. 정답을 빨리 찾는 능력은 기계가 더 잘해내고, 원자재 없는 나라의 수출주도형 성장 방식은 예전보다 훨씬 큰 비용을 동반한다.


1973년과 1979년이 그랬듯, 위기는 늘 바깥에서 먼저 왔다. 두 차례 오일쇼크가 드러낸 한국 경제의 취약성은 끝내 고쳐지지 않았고, 1997년 외환위기의 원인 중 하나로 작용했다는 평가가 많다. 그때마다 우리는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그 골격을 바꾸지 않았다. 그러나 위기의 성격이 과거와 사뭇 달라졌는데, 위기를 받아들이는 방식은 얼마나 달라졌는지 묻게 된다.


환골탈태(換骨奪胎). 낡은 틀을 덧칠하는 정도가 아니라, 뼈대부터 새로 바꾸는 일에 가까운 말이다. 사회 각 분야에서 새롭게 나아갈 방향의 교편을 잡을 지도자들은 누구인가. 그리고 그들의 교편은 지금 어디를 가리키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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