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초년생의 진짜 온보딩

시킨 일만 처리하는 사람에서, 스스로 문제를 정의할 줄 아는 사람으로

by 우드코디BJ

소화기 점검을 마치고 퇴근하는 두 신입사원이 있다. 한 명은 일을 끝냈다. 다른 한 명은 질문을 들고 집에 간다. 분말과 CO₂ 소화기의 차이, 이 건물에 은색 소화기가 없는 이유, 어떤 불에는 물이 통하고 어떤 불에는 오히려 독이 되는지까지. 같은 시간, 같은 월급, 같은 지시. 1년 뒤 이 두 사람은 전혀 다른 사람이 되어 있다.


사회초년생에게 가장 많이 하는 말 중 하나가 있다.


"시키는 일만 하지 말고 스스로 생각해라."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런데 순서가 잘못됐다. 스스로 생각하려면 먼저 무엇을 생각해야 하는지 알아야 한다. 문제가 보여야 한다. 학교를 막 벗어난 사회초년생에게 세상을 읽는 눈이 충분할 리 없다. 현장을 오래 겪으며 문제를 포착해 온 사람의 문제의식과, 학교라는 울타리 안에 있던 사람의 문제의식이 같을 수는 없다. 그 눈이 아직 트이지 않은 사람에게 스스로 생각하라는 말은 쉽게 압박이 되거나 공허해진다.


"주도적으로 생각하라", "스스로 문제를 찾아라", "AI가 못 하는 일을 만들어라."


AI 시대에 일자리가 줄어드니 창업이나 창직, 곧 자기만의 직무를 스스로 설계하라는 말이다. 말은 좋은데, 어떻게 하란 설명이 없다. 온보딩을 둘러싼 담론도 대부분 같은 질문 안에 머문다. 어떻게 하면 신입이 떠나지 않게 할 것인가. 목적은 대개 비슷하다. 적응, 정착, 퇴사 방지. 그런데 이 질문들 한가운데 빠져 있는 것이 하나 있다. 신입은 무엇을 배워야 하는가.


온보딩 프로그램이 자주 실패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신입에게 너무 이른 자율을 주거나, 반대로 너무 얇은 매뉴얼만 건넨다. 둘 다 실패다. 한쪽은 방향 없이 표류하게 만들고, 다른 한쪽은 생각 없이 수행하게 만든다. 그 사이 어딘가에 진짜 훈련이 있다. 온보딩을 적응의 속도로만 재는 한, 사회초년생이 진짜 배워야 할 것은 계속 뒤로 밀린다.


요즘 '사고의 외주화'라는 말이 자주 들린다. AI에게 판단을 맡기면 편하지만 생각하는 근육이 줄어든다는 경고다. 그런데 얼핏 보면 신입사원이 상사의 지시를 따라가는 것도 비슷해 보인다. 스스로 생각하지 않고 위에서 내려온 일을 받아 처리한다. 수동적이고 의존적이며 성장과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하지만 결정적으로 다른 점이 있다. AI는 결과를 준다. 좋은 상사는 판단의 경로를 보여준다. 상사가 "소화기 점검을 하라"라고 말할 때, 그 지시 안에는 이미 누군가의 판단이 들어 있다. 이 건물에서 화재 위험이 어디에 있는지, 어떤 종류의 소화기가 왜 필요한지, 점검 주기를 왜 이렇게 잡았는지 같은 판단이다.


신입은 그 일을 수행하면서 그 흔적을 역추적할 수 있다. '왜 이것을 문제로 삼았을까', '왜 이 공간에는 소화기를 두지 않았을까', '감지기가 켜져 있는지 어떻게 알 수 있을까' 등을 스스로 물을 수 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상사의 명령을 외우는 것이 아니라, 조직이 문제를 포착하고 정의하고 해결해 온 맥락을 따라가는 일이다.

Copilot_20260414_083319.png 좋은 상사는 답을 주는 사람이 아니라, 무엇이 문제인지 보게 만드는 사람이다.


이 질문 하나가 같은 일을 노동에서 훈련으로 바꾼다. 숙련된 장인의 손기술이 매뉴얼로 전달되지 않듯, 상사의 판단력도 강의 몇 번으로 옮겨지지 않는다. 업무 지시는 그 말로 다 가르칠 수 없는 판단의 감각, 곧 암묵지를 담은 암호문에 가깝다. 신입의 진짜 훈련은 그 암호를 푸는 것이다. 그래서 이것을 외주화라고 부를 수 없다. AI에게 판단을 맡기면 생각하지 않아도 된다. 상사의 판단을 따라가면 더 깊이 생각해야 한다. 답을 받는 것이 아니라, 답이 나오기까지의 경로를 배우는 일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문제 해결 체계의 상속이다. 조직 안에서 이루어지는 암묵지의 전수이기도 하다. 사회초년생은 그 체계 안에서 먼저 문제 정의력, 곧 문제를 읽는 눈부터 배운다. 좋은 상사는 단순히 일을 시키는 사람이 아니다. 무엇을 문제로 포착할지 보고, 그것을 어떻게 정의할지 정하고, 조직의 과제로 만들고, 사람들을 설득해 움직이고, 끝내 성과로 바꾸는 전 과정을 가까이서 보여주는 롤모델이다.


후배에게 전할 문제 해결 체계와 판단의 유산이 있어야 비로소 좋은 상사다. 신입은 그 과정에 참여하면서 문제를 보는 눈과 사람을 움직이는 감각을 조금씩 몸에 익힌다. 그런 상사 곁에서 보낸 시간은 단순한 업무 경험이 아니다. 문제를 포착하고 정의하고 해결하는 전 과정을 현장에서 배우는 것이다. 그 경험은 돈으로 살 수 없는 성장의 자원이 된다.


그런데 지금 그 입구 자체가 빠르게 좁아지고 있다. AI가 먼저 대체하는 것은 단지 값싼 노동이 아니다. 사회초년생이 문제 정의력을 익혀가던 연습 구간이다. 반복적이고 기초적인 업무부터 먼저 압축되는 시대, 그 말은 곧 상사의 판단 경로를 배울 기회도 함께 줄어들고 있다는 뜻이다. 예전 같으면 몇 년에 걸쳐 몸으로 익혔을 것을, 이제는 더 짧고 더 좁아진 기회 속에서 배워야 한다.


그런데도 구직자들은 여전히 연봉과 복지를 먼저 본다. 입사할 조직에서 무엇을 먼저 확인해야 하고, 입사 후에는 무엇을 배우고 익혀야 하는지 잘 모른다. 문제를 정의하는 법도 배운 적이 없다. 학생은 오랫동안 주어진 문제를 푸는 훈련만 받았다. 무엇이 문제인지 포착하고 정의하는 훈련은 받지 못했다. 청년은 무능한 것이 아니다. 문제를 포착하고 정의하는 법을 충분히 배우지 못한 채 노동시장에 들어선 것이다.


결국 채용 시장이 입사 전에 검증하지 못하는 것을 조직은 입사 후에야 요구한다. 자기 주도성, 문제 해결 능력, 조직 적응력이라고 부르는 것들의 실체가 여기에 있다. 내가 몸담은 조직이 무엇을 문제라고 보는지 읽고, 그 판단의 경로를 따라가며, 그것을 자기 언어로 재구성하는 힘. 그렇게 성장하는 과정 자체가 온보딩이다.


처음에는 조직이 제기한 문제를 따라간다. 시키는 일을 하면서 왜 이것이 문제였는지 생각한다. 막히면 묻는다. 완성보다 피드백이 먼저다. 질문과 중간보고는 신입이 조직의 판단 방식을 가장 빠르게 익히는 경로다. 조직은 자기 방식만 고집하는 사람보다, 조직이 왜 그런 방식으로 일해왔는지를 이해하고 그것을 발전시킬 수 있는 사람을 원한다.


만약 그 질문을 조직이 막는다면, 그 조직 문화를 먼저 살펴봐야 한다. 구성원의 성장을 원하는 곳인지, 노동자를 구하는 곳인지 확인해야 한다는 뜻이다. 반대로 질문을 받아주고, 이해하기 쉽게 이끌어주고, 의사결정의 맥락이 선명하게 드러나는 곳이라면 그곳은 사람을 길러내는 조직으로 봐도 좋다.


그렇게 사회생활 선배들의 판단 경로가 조금씩 내 안으로 들어온다. 그리고 어느 날, 아무도 시키지 않은 것이 처음으로 문제로 보이기 시작한다. 그 과정을 거치며 비로소 사회초년생은 시킨 일을 처리하는 사람에서, 스스로 문제를 정의할 줄 아는 한 사람의 사회인으로 거듭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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