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거운 것은 뜨겁게, 차가운 것은 차갑게
작업에 몰두한 사이사이 뭔가를 홀짝거리며 마시는 행위는 그 자체로 중요한 기점이 된다. 관성에 의해 길게 늘어지는 작업의 리듬을 적절하게 끊어주면서 방향을 바로잡거나, 되새기거나, 적절히 각성하게 한다.
나의 공방에서 텀블러는 아주 중요한 존재이다. 샌드위치 패널로 지어진 이 공간에서 에어컨 없는 더운 계절에 대한 불만을 순간순간 잊게 한다. 냉장고조차 없던 예전 작업실에서도 하루종일 차가운 음료를 마실 수 있었다. 진공 상태의 이중 격벽이 뜨거운 것은 뜨겁게, 차가운 것은 차갑게 오랫동안 유지해 준다.
차가운 음료를 가득 담아 작업대에 두고 수시로 마셔댄다. 가급적이면 그러지 않으려고 의식적으로 노력하지만 상황에 따라 기계 위에 잠시 마시던 컵을 올려놓을 때도 있다. 기온차로 컵의 표면에 물방울이 맺히는 현상이 없기에 물기에 취약한 금속, 나무가 즐비한 이 공간에서 안심하고 사용할 수 있다.
이 텀블러는 스탠리의 캠프 머그이다. 텀블러와 머그를 굳이 구분하지 않기로 한다. 같은 이름의 공구 브랜드와는 다른 회사이다. 500밀리리터에 조금 못 미치는 16온즈라는 용량은 한 컵으로서는 넉넉하다. 다른 텀블러에 비해 높이가 낮고 바닥 면적이 넓어 잘못 건드려도 내용물을 쏟을 염려가 적다. 묵직한 무게감도 여기에 한몫한다. 리드를 씌워두면 작업 중에 먼지가 들어갈 일도 없고 혹여 넘어지더라도 안심이다. 그립감이 좋은 커다란 손잡이와 고리가 달려 있어서 들고 다니기 좋다.
넓은 주둥이에 널찍하게 보이는 내용물은 시각적인 청량감을 준다. 커피나 차 특유의 색깔이 얼음 조각들과 만나 투명하게 반짝인다. 얼음을 잔뜩 담아 잘그락거리는 소리를 듣고 있으면 머리끝까지 상쾌하다. 무엇보다 해머톤 그린이라는 독특한 질감의 녹색 도장면이 투박하면서도 단단한 느낌이다.
제품 설명상 보온 유지는 2시간, 보냉은 4시간으로 성능이 그렇게 좋은 편은 아니다. 플라스틱 재질의 리드 면적이 넓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얼음 유지는 20시간으로 상당한 편인데, 계절과 무관하게 아이스 음료를 고집하는 이에게는 매우 만족스럽다.
10여 년에 걸쳐 같은 모델을 이제껏 네 개 구매했다. 직장생활을 할 때도 잘 사용했다. 네 개 다 성능 저하 없이 집과 작업실에 두고 사용 중이다. 중간에 제품이 리뉴얼되면서 스탠리 레터링 메탈스티커가 날개 달린 곰 인쇄 로고로 변경됐는데 개인적으로는 예전 버전이 더 마음에 든다.
* 그림: 스탠리 클래식 빅 그립 캠프 머그
여기는 제주 구좌읍의 작은 목공방입니다. 이곳에서 만나는 주변의 어떤 것에 대한 짧은 리뷰들을 연재합니다. 공방에서 사용하는 물건에 대해 주로 이야기합니다. instagram.com/401squirrel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