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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덕호 Jun 27. 2024

제주 어디쯤의 상업공방 분투기

프롤로그) 우드워커로 살아가기

가구 만드는 일을 단순하게 설명하면 나무를 자르고 연결해서 원하는 모양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투자한 시간에 비례해서 결과물은 명확하게 좋아진다. 목공이 좋아 이 일을 선택한 제작자의 관점에서 몹시도 정직한 만족감을 준다. 게다가 '하고 싶은 일을 한다'는 말은 매우 매력적으로 들린다. 하지만 '일'에는 대개 '하기 싫은 것'이라는 속성이 들러붙는다는 것을 생각하면 이 문장은 다소 모순적이다. 취미가 직업이 되는 순간 툭 하고 불거지는 당혹스러운 통증이 있다.




상업공방의 일일


밤의 작업실은 적막하다. 오늘도 계속해서 만든다. 서걱거리는 끌질 소리가 적당한 집중도를 유지하게 한다. 작업실이 위치한 이곳은 제주 구좌읍의 외진 창고건물이다. 도합 10여 년 간의 회사생활을 정리하고 목공방을 차렸다. 마냥 쉽지만은 않을 것이라 생각했지만, 생각보다 훨씬 더 거창한 일이었다. 수개월에 걸쳐 적당한 공간을 구하고 기계를 들였다. 장축 화물차에 실린 육중한 목공 기계들을 지게차가 내려놓으면 몇 명이 들러붙어 위치를 잡고 조립했다. 망하더라도 쉽게 내뺄 수는 없겠다는 두려움이 그제야 번뜩 들었다.


그로부터 몇 년이 지났고 사업적으로는 가까스로 연착륙했다고 생각한다. 주문이 있기에 꾸준히 가구를 만들 수 있다. 가구를 만들어 판매하고 얼마간의 돈이 생기면 필요하거나 갖고 싶었던 기계를 사고, 작업실 임대료를 내고, 다음 가구를 만들기 위한 나무를 들여온다. 이렇게 하루하루를 이어가다 보니 멀리서 보면 어느 정도 그럴듯한 생활이 완성되었다.


하지만 아직까지 나에게 공방을 운영하는 것은 마치 불완전한 하루하루를 조각보처럼 얼기설기 기워 붙이는 것처럼 느껴진다. 바늘에 손끝을 찔리며 낑낑대다 추워지기 시작하면 이것을 이불처럼 덮고, 꾸역꾸역 겨울을 난다. 이듬해까지 다시 사용하지는 못할 것 같다. 해지고 구멍 난 곳을 메우고, 다시 이어 붙인다. 다시 겨울이 다가오면 또 당장의 추위를 아슬아슬하게 막는다. 호기롭게 자영업의 전장에 무작정 뛰어든 소규모 가구 제조업자의 현실이다.


가구 만드는 일을 지극히 단순하게 설명하면 나무를 이렇게 저렇게 자르고 연결해서 원하는 모양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요령과 기술이 늘어나면 결과물은 더욱 만족스럽다. 좋은 재료를 쓰고, 비싼 공구를 구매해서 사용하면 품질이나 작업 편의성에 즉각적인 보상을 받는다. 장붓구멍을 오차 없이 공들여 가공하고, 거칠기를 올려가며 정성껏 사포질 하고, 마감, 건조, 마감을 오랜 시간 반복한다. 투자한 시간에 비례해서 결과물은 명확하게 좋아진다. 목공이 좋아 이 일을 선택한 제작자의 관점에서 가구를 만드는 것은 몹시도 정직한 만족감을 주는 일이다.


공방을 운영하는 것은 한층 더 복잡하다. 가구를 만드는 것처럼 어느 정도 만족스러운 결과물을 예측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내가 처음 만들어본 온전한 가구는 집 근처 목공방 취미반에서 만든 화이트오크 스툴이었다. 전체적인 비례나 마감의 완성도 측면에서 상당히 어설펐다. 하지만 계속해서 구상하고 만들어내는 과정을 거쳐나간 지금의 결과물들은 꽤 그럴듯하다. 상업공방을 꾸려 나가는 것도 계속하다 보면 능숙해질까?


기다리던 기계 들어오던 날




가구 제작자, 공방 운영자


이것은 가구를 만드는 제작자로서의 이야기이다. 나무를 만지고, 가구를 만드는 재미있는 경험에 대한 글이다. 거기에서 그칠 수 있다면 더없이 이상적이겠지만 가구를 판매하고 생업으로서 공방을 꾸려나가는 복잡다단한 이야기가 이어질 수밖에 없다. 완전한 결론을 내지는 못했고 앞으로도 못할 것으로 생각한다.


글의 앞부분은 대체로 가구를 제작하는 공방의 작업 순서를 따른다. 목공 입문서라고 할 수 있을 만큼 자세하거나 친절하지는 않지만 내 앞의 가구가 어떤 과정을 거쳐 완성되었는지 가늠할 정도는 된다. 나무를 고르고, 자르고, 붙이고, 마감해서 원하는 형태를 완성하는 일련의 과정에서 그때그때 생각나는 것들을 제작자로서 이야기한다. 그 뒤를 따르는 글의 뒷부분은 단순히 취미로 한두 점의 가구를 만들어보는 것이 아니라, 가구제작으로 수익을 창출하고 생계를 꾸려나가야 하는 제조업 사업체 운영자로서 떠올리는 여러 가지 생각들을 기록하려고 한다. 실제로 공방을 운영하기 전에는 느긋하게 출근해서 좋아하는 음악을 틀고, 갓 내린 커피를 마시며 하루의 작업을 구상한 뒤 리듬감 있게 작업하는 모습을 상상하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은 그 이면에 수반되는 치열한 자영업자의 현실을 마주하고 있다. 복합적인 감정들의 소요가 끊임없이 되풀이되는 가구 제작자이자 1인 사업체 운영자로서, 이 술렁거림이 완전히 가라앉지 않는 상태로 일단 적는다.


이 글의 제목은 '목수 아무개의 목공일기'가 아니고, '우덕호'라는 이름으로 대변되는 평범하고 소심한 가구노동자의 생활 기록이다. 목공이라는 본질은 목수라는 직업의 범주가 아닌 우덕호라는 사람의 이름에 녹아 있다. 그가 일상처럼 만들고, 고민하고, 생각하는 것들에 대해 사소하게 기록할 것이다. 목공에 관한 이야기이지만 딱히 목공에 관한 이야기만은 아니기도 하다. 나는 많은 말을 하는 성격은 아니다. 다만 거르고 걸러 남겨진 말들을 다른 형태로 변주하는 일은 상당히 좋아한다. 그것이 내가 생각하는 목공의 성질이기도 하다. 나무를 계속해서 자르고 다듬어 연결하고, 어루만져 무언가를 완성하는 것이다. 여기에 만들어진 가구를 효과적으로 판매하는 것까지 덧붙이면 상업공방의 온전한 순환 과정이 된다. 누군가의 필요에 의해 만들고, 사용가치와 합당한 비용을 교환함으로써 이루어진다. 이 순환을 반복하는 가구 제작자이자 그것으로 생계를 꾸려가는 상업공방 운영자로서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들에 대한 이야기다.


튼튼한 작업대부터 만들었다




하고 싶은 일, 해야 하는 일


애초에 왜 목공이었을까. 뭔가를 만들어내는 것을 늘 좋아했던 기억이 난다. 좋아 보이는 것을 만들어내고 싶었다. 방해받지 않고 묵묵하게 혼자 일하고, 근사한 기계들을 사용하고, 적절한 강도의 육체노동이 포함되어 있다는 것이 조화로워 보였다. 단순한 생활용품인 동시에 노동집약적 예술이기도 한 목가구의 매력에 강하게 이끌렸다.


공방을 시작하고 마음껏 작업할 수 있는 공간이 생기자 욕심을 내서 성급하게 개인 전시회를 열었다. 뭔가를 만들어내는 직업을 가지게 된 기념적 선언이었다. 회사에 충실했던 직장인이 제 욕망을 최우선으로 둘 수 있는 일을 찾아가는 경과를 되짚었다. 내내 흠모의 대상이었던 목공이 직업으로 변모하는 과정과, 그에 수반되는 부작용에 관해 이야기했다. 일종의 예술이자 자기 수양 수단으로써의 목공과, 생계를 위한 노동의 한계가 충돌하는 모습을 그렸다. 무턱대고 뛰어든 생업 전선에서 나만의 작업공간과 경제력이라는 현실 조건, 그리고 어떤 것들에 몰두하는 사람들의 태도에 대해 이야기했다. 타이틀은 버지니아 울프를 차용해서 <A (work)Room of One’s Own자기만의 방>이라고 붙였다. 직업 관점에서 나는 대기업(비주력 계열사), (지방)공기업을 거쳐 수공업자가 되었는데 이것은 세속적 시각으로는 얼핏 퇴행의 수순으로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실체는 괄호 안에 숨겨져 겉으로 잘 드러나지 않으면서도 모호한 정체성을 악착같이 붙들고 있다. 전시 제목에 어렴풋이 보이는 (work)라는 부분은 그럴듯한 공방을 가지게 된 지금도 나만의 공간(room)과 벌이로서 일을 해야 하는 공간(workroom)이 어지럽게 뒤섞여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주문이 들어오면 만들고 또 만든다




이상 실현과 생업의 현실


넉넉한 자금이나 섬세한 실현계획 없이 무턱대고 이 판에 뛰어들었지만 현실적인 어려움을 예상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하고 싶은 일을 한다'는 말은 매우 매력적으로 들린다. 하지만 '일'이라는 것에는 대개 '하기 싫은 것'이라는 속성이 들러붙는다는 것을 생각하면 이 문장은 다소 모순적이다. 취미가 직업이 되는 순간 툭 하고 불거지는 당혹스러운 통증이 있다. 물론 이것을 극복하는 사람들도 있고, 그들은 보통 성공하는 것 같다. 나는 익숙해졌지만 극복까지는 아니다. 마음속에 품은 이상을 직업과 직접적으로 연결해서 현실화했지만, 환멸의 돌부리들이 길 위 여기저기 머리를 내밀고 있다. 작품을 남기고 싶은 욕망과 상품을 판매해야 하는 부담, 가구 제작자로서의 자아와 상업공방 운영자로서의 책무가 복잡하게 엉켜든다.


나는 지금 환희와 고통 중 무엇을 향해 가고 있을까, 잘못 든 길에서 주저하게 될까? 이상 실현과 생업의 현실이 부딪치는 순간, 어렵사리 내디딘 발아래가 역시나 진흙탕인지는 아직 알 수 없다. 하지만 일관된 어느 방향을 향해 천천히 움직이는 길 위에서 하나의 지표로 삼을만한 발자국은 남길 수 있을 것이다.


바깥 풍경은 평화롭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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