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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덕호 Jul 11. 2024

나무를 재단하며 생각한다

가구제작② 자르기와 켜기

치열하게 부딪치는 계절을 한 자리에서 버텨내며 나무의 무늬가 만들어진다. 생장에 대한 기억은 그 속에 고스란히 각인되고, 벌목과 제재를 거친 후에도 관성처럼 남는다. 거실 한구석에 얌전히 놓인 한 점의 가구에도 이 방향성은 생생불식 꿈틀거린다. 이 한 그루의 나무는 얼마나 오랜 시간을 서 있었고, 몇 번의 계절을 보낸 끝에 어떤 방식으로 제재되어 내 앞에 왔을까? 다시 이 나무가 서 있을 마지막 모습을 어떻게 만들어낼지 골똘히 생각에 잠긴다.




나무의 길이와 폭


나무를 선택했으면 이제 원하는 모양으로 자르는 순서다. 머릿속에 구상한 이미지를 해체해서 도면 위에 올려놓는다. 가구를 구성하는 각각의 부품을 만드는 단계이다. 이때 도면과 일치하는 정교한 재단이 가장 중요하다고 종종 오해받곤 한다. 하지만 예민하게 신경을 기울여야 하는 지침은 나무에 새겨진 무늬에 담겨 있다. 나뭇결을 더 멋지게 연결시키기 위해서인가? 물론 그것도 중요한 요소 중 하나이긴 하지만 더 근본적인 이유가 있다. 나무의 무늬가 주는 정보를 무시하고 만든 가구는 몇 년, 짧게는 몇 달을 채 지내지 못하고 문제가 생길 것이다. 물론 무사히 사용하던 그 짧은 기간 동안에도 맞지 않는 무늬가 눈에 거슬릴 것은 분명하지만 말이다.


벌목과 제재를 거쳐 내 앞에 놓인 이 나무 한 덩어리가 아직 땅에 뿌리를 박고 서 있었을 때로 시간을 거슬러보자. 나무는 지면과 직교한다. 지반을 단단히 움켜쥔 채 수직 방향으로 키를 늘리고, 수평 방향으로 살을 찌운다. 여기에서 나무의 '길이'와 '폭'이 구분된다. 일반적으로 나뭇결을 봤을 때 무늬가 길게 늘어선 방향이 목재의 길이이고, 그 무늬에 직각으로 교차하는 방향이 목재의 폭이다. 나무의 키가 목재의 길이이고, 나무의 둘레가 목재의 폭이다.


나무는 계절에 따라 성장하는 속도가 다르다. 충분한 일조량 덕에 기후가 따뜻하고 수분 섭취가 많은 봄과 여름에는 세포분열이 왕성하다. 이때 자란 부위를 춘재(springwood 또는 earlywood)라고 한다. 연한 색상을 띠는 춘재에는 물을 한껏 빨아들이기 위한 기공 등의 조직 구조가 넓게 포진해 있다. 여름의 한가운데를 관통할 무렵에는 성장이 더뎌지기 시작하다 추운 계절에는 거의 멈추다시피 한다. 이때 자란 부위는 조직이 치밀하고 진한 색상을 띠는 추재(summerwood 또는 latewood)이다. 춘재와 추재는 앞선 글에서 언급한 심재(heartwood), 변재(sapwood)와는 다르게 나무의 성장 시기에 따라 형성된 조직의 특성을 말한다. 계절을 한 바퀴 돌고 나면 춘재와 추재가 만드는 대비가 나무의 단면에도 확연히 드러나는데, 1년 단위로 생겨 나무의 나이를 알려주는 나이테가 바로 그것이다. 공전의 테두리 안에서 치열하게 부딪치는 계절들을 한 자리에서 오롯이 버텨내면서 나무는 무늬를 덧입는다.


길이와 폭을 구분 짓는 생장의 기억은 나뭇결 속에 고스란히 각인된다. 벌목과 제재를 거친 후에도 관성처럼 남아 있다. 나무는 이 성질을 쉽게 포기하려 하지 않는다. 거실 한구석에 얌전히 놓인 한 점의 가구에도 이 방향성은 생생불식 꿈틀거리고 있다. 따라서 나무가 지향하는 방향을 억지로 바꾸려 해서는 안 된다. 순응하거나, 최소한 어르고 달래는 수밖에 없다. 나무는 가구의 형태를 입고서도 이를 잊지 않고 영영 진행할 것이기 때문이다. 오래된 목조건물에서는 계절이 바뀜에 따라 나무로 된 골조가 딱딱거리는 소리를 낸다. '집이 뼈를 맞추는 소리'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계절을 한 바퀴 돌기 전에 여전히 기억하고 있는 방향에 따라 끊임없이 수축 팽창하며 만들어내는 소리다. 기지개를 켜듯 원래의 방향성을 순간순간 회복한다. 가구도 다를 바 없다. 


나무의 길이 방향(↔)과 일치하게 '켠다'




자르기와 켜기의 언어 


나무를 재단하는 것은 단순한 절단 이상의 복합적인 행위이다. 목재의 길이와 폭이 그 천성에 새겨져 있는 만큼, 목재 재단은 그 규칙에 따라 이루어져야 한다. 이는 언어 단계에서부터 뚜렷하게 구분된다.


나무토막의 섬유질을 상상해 보자. 토막의 길이 방향으로 긴 섬유 다발들이 모여 있다. 섬유다발과 일치하는 방향으로 나무를 재단하는 것은 '켠다(rip)'고 한다. 반대로 긴 섬유다발의 중간을 툭 끊어버리는 것은 '자른다(crosscut)'고 한다. 자르기는 켜기보다 더 부하를 많이 받는 작업이다. 나무젓가락을 원래의 사용법처럼 길게 두 개로 쪼개어 나누는 것은 자르기, 양 끝을 잡고 반으로 가운데를 우지끈 부러뜨리는 상황은 켜기에 해당한다. 반으로 부러뜨리고자 할 때 훨씬 많은 힘이 필요하다. 이와 같은 이유로 자르기와 켜기에 사용되는 톱날의 종류도 달라진다. 나무를 잘라낸 단면은 마구리면(endgrain)이라고 하는데, 나무의 섬유질 방향으로 나 있는 결(grain)을 싹둑 썰어낸 단면이라는 의미다.


끌이나 대패를 사용해서 나무를 가공할 때도 이 방향을 늘 염두에 두어야 한다. 결과 일치하는 방향으로 대패나 끌질을 하는 것은 상대적으로 쉬운 작업이지만, 자르는 방향으로 마구리면에 대패질을 하는 것은 상당히 고생스럽고 힘든 작업이다. 평생 한 방향으로 자라온 고집을 쉽게 다룰 순 없는 일이다.


길이 방향은 폭 방향보다 하중에 강하다. 그러므로 설계 단계에서 목재의 어떤 부위를 어떤 방향으로 사용할지 미리 판단해야 한다. 긴 부재를 사용하는 경우 휘는 힘을 덜어주기 위해 나뭇결 중간에 톱자국을 내서 섬유질을 끊어주기도 한다.


통 제재목이 아니라 토막을 붙여 연결한 집성목도 방향성을 가진다. 작은 조각에도 나무의 방향은 살아있기 때문이다. 목재의 길이 방향으로는 조각나지 않고 온전히 이어져 있는 솔리드 집성판은 더욱 강한 방향성을 가진다. 한 조각의 단위가 클수록, 이어져있는 섬유질이 길수록 그 힘은 강하다. 합판은 한 겹마다 나뭇결의 방향이 직각으로 교차하게 적층한 구조이므로 그런 성향이 없다. 엄밀히 말하자면 없지는 않지만 신경 쓰지 않아도 무방하다. 합판의 두께가 두꺼울수록 적층하는 시트의 숫자도 많아지면서 결의 방향성은 상쇄되어 더욱 미미해진다. 


나무의 길이 방향(↔)과 직각으로 '자른다'




제재소에서


통나무를 어떤 방식으로 제재하느냐에 따라 생산되는 제재목의 무늬가 달라진다. 제재하는 방식과 부위에 따라 직선으로 길게 뻗은 곧은결이 나오기도 하고, 복잡한 무늬결이 나오기도 한다. 예를 들어 통나무 나이테의 중심을 기준으로, 피자를 4 등분하듯 바깥쪽을 향해 방사형으로 재단한 제재목은 모든 결이 대체로 평행한 직선의 나뭇결을 보여준다. 시각적으로 단정하고 뒤틀림 등의 변형에도 강하다. 하지만 제재 과정에서 수율이 낮아 가격대가 높다. 부채꼴의 호에 가까운 바깥 부위만이 가구재로 적합한 크기가 나오고, 꼭짓점 부분으로 갈수록 폭이 급격히 좁아지기 때문이다.


특별한 수요가 없는 한 제재는 수율이 높은, 다시 말하자면 '일정 너비 이상의 상품성 있는 목재를 최대한 많이 생산할 수 있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제재되는 부위에 따라 어떤 것은 무늬가 지극히 아름답고, 어떤 것은 어지럽기도 하다. 제재 방향에 따라 몇몇 수종에서는 특유의 무늬를 보여주기도 한다. 어느 것을 어떻게 연결할지, 가구 제작자의 머리를 싸매게 만드는 고민인 동시에 끝내 희열을 가져다주는 퍼즐 같은 재미이다. 


같은 시기에 들여온 목재는 한 나무에서 제재한 것들일 확률이 높다. 바닥에 늘어놓고 찬찬히 살펴보면 일치하는 무늬를 발견할 수 있다. 넓은 판재를 집성해서 만들 때 두꺼운 목재를 반으로 켜서 단면을 대칭으로 배치하는 기법이 있는데, 펼쳐놓은 책의 두 페이지와 같다고 해서 북매칭(bookmatching)이라고 한다. 제재목들 사이에서 일치하는 무늬를 발견한다면 나무의 두께를 희생하지 않고도 데칼코마니같이 아름답게 연결되는 패턴을 만들어낼 수 있다. 따라서 하나의 가구를 만들 때는 가급적 같은 시기에 들여온 나무 중에서 비슷한 것들이 있는지를 우선 살핀다. 물론 동일한 때 들여왔더라도 다른 나무에서 제재된 목재라면 무늬나 색상의 특성 등에서 차이를 보일 것이다. 또한 같은 나무라고 해도 심재와 변재 등 부위에 따라 이질적인 느낌을 줄 수 있다. 이러한 이유로 '무늬 맞추기'는 상당히 번거로운 작업이며 결국 불가능한 경우가 더 많지만, 성공했을 때 큰 만족감을 준다. 


통원목의 지름을 그대로 유지한 우드슬랩 형태로 제재하기도 한다. 이때는 중심부의 심재에서부터 켜켜이 쌓인 춘재, 추재와 변재 부위 및 껍데기층까지 나무 하나의 생애를 고스란히 확인할 수 있다. 

 

무늬를 배치하는 것은 늘 고민이다




가구와 나무의 방향성


제재목으로 가구를 만들 때는 무늬 선택에 가장 많은 시간을 할애한다. 무늬들을 어떻게 연결했을 때 가장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아름다운 패턴을 만들어낼지 고민한다. 어떤 방향으로 연결해야 변형을 줄이고 오랫동안 견고함을 유지할 수 있을지, 어떤 나뭇결을 어떤 방향으로 잘라서 사용할지 궁리한다. 최초의 한 컷을 잘라내기 전에 머릿속으로는 가구를 완성하고 무너뜨리기를 몇 번이나 반복한다. 금속의 톱날이 나무를 지나가는 것은 찰나이지만 그 순간 모든 것이 결정된다. 나무를 재단하는 것은 비가역적인 동작이다. 


이 한 그루의 나무는 그 자리에서 얼마나 오랜 시간을 서 있었고, 몇 번의 계절을 보낸 끝에 어떤 방식으로 제재되어 내 앞에 놓이게 되었을까? 다시 이 나무가 서 있을 마지막 모습을 어떻게 만들어낼지 면밀히 들여다보며 골똘히 생각에 잠긴다. 나는 매사에 쉽게 휘청거리지만 이 순간만큼은 그럴 수 없다. 마주하고 깊게 고민하는 것이 일평생 같은 방향으로 자라온 이 나무에 대해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예우이다. 


제재 후 남은 바깥 부분 더미


제재소의 목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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