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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덕호 Jul 04. 2024

목공방에서 사용하는 나무들

가구제작① 나무의 이력

눈썰미 좋은 목수는 눈앞에 놓인 나무의 성향을 어떤 방식으로 발현해서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낼지 고민한다. 나뭇결의 간격을 보고 어느 정도의 속도로 세월을 견뎌왔는지 가늠한다. 옹이가 있다면 어느 위치에 어느 방향으로 가지를 뻗고 있었을지 생각한다. 이때쯤 유달리 추웠던 겨울이 있었구나, 어떤 면들이 한 몸으로 맞붙어있었겠구나 상상한다. 사냥꾼의 빗나간 납탄이 박혀 있는 것을 발견한 적도 있다. 나무의 이런 모습들이 공방의 상상력을 더욱 풍부하게 만든다.  




하드우드와 소프트우드


가구를 만들 때 사용하는 나무는 크게 '하드우드'와 '소프트우드'로 분류된다. 하드우드는 말 그대로 단단한 나무들이고, 소프트우드는 연질의 나무들이다. 하지만 소프트우드 중에서도 상당히 단단한 성질의 나무가 있고, 어떤 하드우드는 일반적인 소프트우드보다 무르기도 하다. 애초에 이 분류 방식은 목재의 경도와 절대적인 관계가 없다. 정확히는 나무의 식물학적 특성에 따라 구분한 것이다. 하드우드는 꽃을 피우고, 열매 안에 씨앗이 맺히는 속씨식물에 해당한다. 대부분 기온이 떨어지면 잎을 떨구는 낙엽수로, 넓은 잎을 가지고 있다. 반면 일반적인 소프트우드는 솔방울처럼 씨앗이 밖으로 드러나는 겉씨식물이다. 보통은 일 년 내내 푸른 잎을 유지하고 뾰족한 바늘 모양의 잎을 가진 침엽수다. 단단하고 부드러운 성질에 따라 나뉘어 불리지만, 목질의 특성이 기표와 절대적으로 일치하지는 않는다.  


하드우드와 소프트우드라는 단어 자체가 예전에는 낯설었지만, 원목가구에 관한 관심이 높아지고 지식도 늘어나면서 이제는 많이 알려졌다. 물론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하드우드는 단단하고 비싼 나무, 소프트우드는 무르지만 저렴한 나무라는 인식이 일반적이다. 앞서 언급했듯이 자세히 파고들지 않으면 이것도 딱히 틀린 말은 아니다. 가구재로 흔히 접할 수 있는 대부분의 나무들이 이 설명에 들어맞는다. 더구나 이렇게 단순화된 공식은 가구를 판매하는 입장에서도 유용하다. '하드우드로 만들었다'는 짧은 언급만으로 왜 이렇게 높은 가격을 기꺼이 지불해야 하는지를 구매자에게 빠르게 납득시킬 수 있다. 더 저렴한 대안을 찾는 결론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대부분이긴 하지만 말이다. 국내에 주로 유통되는 하드우드는 북미에서 온 것들이 많다. 월넛(호두나무), 화이트오크와 레드오크(백참나무, 적참나무), 체리(벚나무), 애쉬(물푸레나무), 메이플(단풍나무) 등이 다. 소프트우드는 레드파인, 라디에타파인, 뉴송, 미송 등의 소나무 종류를 비롯해서 삼나무, 편백나무 등이 있다. 


하드우드는 소프트우드보다 더디게 자란다. 성장 속도가 느리다는 것은 같은 체적의 목재를 비교했을 때 밀도가 더욱 높다는 것을 의미한다. 조직이 치밀한 만큼 더 무겁고 단단하다. 횡으로 절단한 하드우드의 단면에서는 기공을 관찰할 수 있다. 나무의 수분과 영양분을 운반하는 통로인데, 나무의 종류에 따라 그 크기와 배치가 다양하다. 소프트우드는 그 역할을 가늘고 긴 세포조직이 대신하므로 육안으로 구멍이 보이지 않는다. 이 조직은 상대적으로 물러서 표면을 손톱으로 꾹 누르면 자국이 남을 정도이다. 


이 모든 것들은 나무의 쓰임새를 결정하는데 도움을 주는 일반적인 성질이다. 어느 것이 더 좋고 나쁘다를 단언하게 하는 절대불변의 가치가 아니다. 각각의 나무가 지닌 다양한 특성을 어떤 곳에 가장 적합하게 활용하는지가 더욱 중요하다. 고유의 성향을 어떤 방식으로 발현하여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낼지 고민하는 것, 그것이 눈썰미가 좋은 목수가 할 일이다. 


오일마감을 끝낸 화이트오크 테이블 상판




제재목, 집성목, 합판


하드우드와 소프트우드가 나무의 태생적 성질에 따라 나눈 것이라면, 가공하는 방식에 따라 분류하는 방법도 있다. 제재목은 통나무를 큰 덩어리로 직접 잘라낸 것이다. 보통 긴 널빤지 모양인데, 대형 프랜차이즈 커피숍에서 볼 수 있는 거대한 통원목 테이블 상판도 여기에 해당한다. 집성목은 상대적으로 작은 원목 조각들을 이어 붙여 만든다. 목재의 면과 면을 접착제로 붙여 연결하는 것을 집성이라고 한다. 작은 목재들을 활용해서 만들기에 자원 효율적이고, 다양한 크기와 형태를 만들어낼 수 있는 장점이 있다. 합판은 장판처럼 넓고 얇게 켠 나무 시트를 섬유질 방향이 교차하도록 켜켜이 쌓아 만든 판재이다. 변형이 적고, 이음매 없이 깔끔하게 넓은 면적을 확보할 수 있다. 이 외에도 자잘하게 부서진 나무 조각이나 톱밥을 압착해서 만드는 파티클보드, MDF 등이 있다. 


제재목은 하나의 덩어리로 되어있지만, 나머지는 제작 과정에서 접착제를 사용한다. 이에 따라 친환경 등급에서부터 실내 사용이 불가능한 자재까지 나뉜다. 특히 파티클보드나 MDF는 접착제와 나무 조각을 반죽하여 압착한 것이므로, 노출면에 사용하기보다는 시트지나 무늬목 등을 입혀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집성판이나 합판은 일반적으로 3X4(910x1820mm)나 4x8(1220x2440mm) 사이즈의 표준 규격으로 제작된다. 두께도 다양하다. 크기가 균일하지 않은 제재목으로 가구를 만들기 위해서는 일단 한 면을 평평하게 만든 뒤, 그것을 기준 삼아 원하는 두께로 가공하는 작업부터 시작해야 한다. 하지만 규격화된 판재를 사용하면 정해진 두께로 설계하고 바로 재단에 들어갈 수 있다. 상업공방에서 판재를 주력으로 취급한다면 제재목 가공에 필수적인 몇몇 종류의 대형 기계를 갖추지 않아도 된다는 의미이다. 그만큼 금액과 공간, 작업시간을 절약할 수 있다. 


다양한 합판의 단면 적층라인




어떤 목재를 선택할 것인가


같은 합판이라도 유해물질 방출량에 따른 등급이 있고, 옹이의 유무 등 표면 상태에 따른 등급이 있다. 합판 재료의 원산지에 따라 품질이 달라지고, 같은 원산지의 재료로 만들더라도 제조국이나 제조사에 따라 특성이 천차만별이다. 겉면이 얇아서 조금 깊게 사포질을 하면 적층된 아랫면의 엇결이 드러나버리는 합판도 있고, 겉으로 보이지 않는 안쪽 판에는 포플러 등 저렴한 나무를 사용해서 절단면의 색감이 부자연스러운 것들도 있다. 집성판도 연결하는 방식에 따라 지그재그 모양의 집성 부위가 전면에 적나라하게 드러나기도 하고, 측면에만 작게 보이기도 한다. 


제재목은 어떨까? 한 덩어리 한 덩어리의 두께와 폭, 길이가 제각각이고, 제재하는 방식이나 부위에 따라 무늬의 형태와 색상에 차이를 보인다. 주로 해외에서 수입되므로 해상물류 상황이나 세계적인 수요, 국내 수입상의 거래일정, 재고관리 현황 등에 따라서도 상태가 많이 달라진다. 수입 하드우드의 가격은 꾸준히 상승하고 있고, 품질은 가격과 정비례하지는 않는다는 것은 경험적으로 터득했다. 타국에서 특정 수종이 유행하면서 좋은 품질의 제품을 싹쓸이해가기도 한다. 최근에는 전쟁의 영향으로 러시아산 자작나무의 가격이 많이 오르기도 했다. 


나무를 선택할 때는 용도와 취향, 비용 등 고려할 요소들이 많다. 특히 내가 있는 제주에는 하드우드 제재목을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곳이 없다. 육지의 목재상에서 들여와야 한다. 건축자재상에서 합판은 흔히 취급하지만 원하는 조건의 제품을 구하기는 쉽지 않다. 같은 등급의 자재가 육지에서 판매하는 것보다 20퍼센트가량 비싸다. 번거롭지만 육지에서 대량으로 구매하면서 단가를 낮추고 운송료를 상쇄시키는 쪽을 선택하는 편이 낫다. 이 방법으로 제주도 내 판매가와 비슷한 가격에 상위 등급의 자재를 구매할 수 있다. 애초에 도내에서는 원하는 품질의 자재를 구할 수 없기도 하다. 재고관리도 어렵고 한 번에 큰 금액이 들어가서 부담스럽긴 하지만, 목재 보관 선반에 나무를 잔뜩 쌓아놓으면 가득 찬 곳간을 바라보듯 충만한 느낌이 든다.


가격대가 높은 것들이 대체로 품질도 좋지만 절대적으로 좋은 재료는 없다. 어떻게 설계하느냐에 따라, 그리고 놓이는 곳의 조건이나 적용할 마감 방식 등에 따라 신중하게 선택한다. 단지 원목을 100% 사용했다고 뿌듯해하기 위해 가구의 구조와 기능에 해를 입힐 수는 없다. 가격이 치솟는 것은 덤이다. 액자 틀 형태의 프레임 구조로 문짝을 만들 때처럼, 변형 방지를 위해 구조상 합판을 사용해야 하는 때도 있다. 상업공방에서는 작업 효율과 수급 용이성도 무시할 수 없다. 제주와 같이 동떨어진 지역에서는 특히 큰 문제가 되므로 초기에 수급 구조나 재고관리를 몇 배는 더 신경 써서 구성해야 했다. 당장 들어온 주문을 소화해야 하는데 만드는 중간에 특정 규격의 목재가 급히 필요하다면? 가까운 곳에서 급하게 구매한 목재가 기존에 사용하던 제품과 색감 차이가 난다면? 소량주문이라 물류비가 구매가와 맞먹는다면? 기상 악화로 화물을 실은 배가 제때 출항하지 못했다면? 제주항에 도착한 나무를 실어와야 하는데 마침 비가 세차게 내리고 있다면?


멀바우 집성 판재 단면에 찍혀있는 스탬프




나무의 이력


나무에는 각자 고유한 이력이 있다. 합판이나 집성판의 옆면에는 제조국이나 규격, 등급 등이 스탬프로 찍혀 있다. 하나씩 읽어보면 재미있는 내용들이 많다. 판매처에서도 신경 쓰지 않아 모르고 있을 때도 있다. 제조사 홈페이지에서 직접 정보를 얻기도 한다. 제재목도 번들이라는 큰 묶음 단위로 이력 표기가 되어있다. 수종이나 번들의 부피, 제재 후 어떤 방식으로 건조했는지, 언제 건조가 완료되었는지 하는 것들이다. 이는 나무들이 가진 자체의 성질과는 다르게 제작과 유통 과정에서 덧입은 이야기들이다. 


제재목으로 가구를 만들 때는 먼저 몇 덩어리를 꺼내놓고 대패로 한구석을 벗겨내 본다. 거칠게 제재된 표면 아래에 숨어 있던 속살이 모습을 보인다. 무늬와 색감이 어울리는 것들로 이번 가구를 만들 재료를 구성한다. 대패질로 드러낸 무늬가 예상 못하게 멋져서 감탄하기도 한다. 선별이 끝나면 수압대패와 자동대패를 거쳐 전체 나뭇결을 온전히 드러낸다. 눈앞에 벌여두고 나무가 거쳐온 날들을 떠올린다. 어떤 과정을 지나 제주 구석의 이 공방에 이르게 되었을지를 그려본다. 나뭇결의 간격을 보고 어느 정도의 속도로 세월을 선 채 견뎌왔는지 가늠한다. 옹이 부근에서는 어느 위치에 어느 방향으로 가지를 뻗고 있었을지 생각한다. 이때쯤 유달리 추웠던 겨울이 있었구나, 어떤 면들이 한 몸으로 맞붙은 채 서있었겠구나 상상한다. 이것은 가구를 만들면서 무늬를 자연스럽게 이어지게 맞출 때도 도움이 된다. 하루는 나무에 박혀있는 납탄을 발견한 적도 있다. 북미의 어느 숲 속에서 사냥꾼이 사슴을 향해 쏜 총이었을까? 첫 사냥을 나선 초보 사냥꾼이었을까? 그날 사냥에 실패하고 빈 손으로 가족들 곁으로 돌아갔을까? 총알구멍은 아물었지만 속은 계속 단단하게 아려왔을까? 가구가 만들어진 뒤에도 생각은 고스란히 남아 사용자의 이야기로 이어진다. 


어떤 날엔 유달리 심재와 변재의 대비가 뚜렷한 나무들이 보인다. 심재는 나무에서 형성된 지 오랜 시간이 지나 수명을 다한 조직이다. 연필의 흑연같이 횡단면의 한가운데 짙게 착색된 부분이다. 변재는 비교적 최근에 생성된 조직으로, 나이테 동심원의 바깥 방향으로 자라며 심재를 감싼다. 심재는 변재의 중심에 그대로 굳어 나무를 지탱한다. 원래의 기능을 잃어 생장에는 관여하지 못하지만 나무에서 가장 오래, 가장 굳건하게 서 있던 부분이다. 숲의 나무들은 한 자루씩 꼭 말아쥔 연필처럼 각자의 이야기를 써낼 준비가 되어 있었다. 나무의 이런 모습들이 공방의 상상력을 더욱 풍부하게 만든다. 


거친 표면을 벗겨내서 무늬와 색감을 확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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