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랑말랑한 개인의 고유한 가치를 어떤 형태로 빚어내고자 할 때, 먼저 필요한 것은 그것을 위한 공간이다. 내 경우엔 목공 작업실이 갖고 싶었다. 나 혼자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는 공간이 어딘가에 있다는 것은 얼마나 멋진 일인가. 하지만 임대료를 지불하는 상업공방 운영자로서 공간의 생산성은 늘 어려운 주제이기도 하다. 작업을 하다 보면 혼자서도 내내 부족하기만 한 공간이지만 어떤 날엔 망망대해처럼 넓게 느껴진다. 일단 뭐든 할 수 있는 나만의 방이 생겼으니, 뭐든 해 나가 보는 수밖에 없다.
쉽게 시작하지 못하는 사람
나는 뭔가를 하기 위해서는, 시작할 수밖에 없도록 스스로를 몰아세우는 거창한 준비상태가 필요한 종류의 사람이다. 내 기준에 들어맞는 이 요구조건은 상당히 까다로워서 사실 어떤 것을 제대로 시작한 적조차 드물다. 충족되지 않은 상태로 떠밀려 첨벙거리던 기억은 허다하지만. 결단력 부재와 늘어지는 게으름 탓일지언정 '현실과 이상의 이격에 자리 잡은 미완의 정서적 완벽주의' 정도로 대충 그럴듯하게 덮어두었으면 한다. 이런 내가 어느 날 본격적으로 가구를 만들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때 나에게 필요했던 준비물은 역대 가장 엄청난 규모였는데, 바로 '작업실'이었다.
가구와 같이 큼직한 형태를 갖추고 있는 게 아니더라도 뭔가를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최소한의 물리적, 심리적 공간이 필요하다. 나만의 욕망에 충실하고 집중할 수 있는 장소이다. 회사생활을 되돌아보면 마치 거대한 응접실 같았다. 직급이나 업무로 엮인 서로와의 관계를 통해 상대를 바라보았고, 상대방이 나에게 기대하는 역할에 최선을 다했다.
비유하자면 나는 거기서 열리는 파티나 교류회의 순서를 고안하거나, 오신 손님이 기꺼운 환대의 기운을 느낄만한 장치를 심어두거나, 호불호 없을 웰컴드링크의 종류를 고심하는 등의 일을 했다. 첫 모금이 너무 차갑지는 않을까? 너무 단맛은 꺼려하는 사람이 있지 않을까? 탄산으로 인한 트림을 억제하느라 정상적인 교류활동이 방해받진 않을까? 소심한 성격 탓에 이따위 밑도 끝도 없는 소모적인 고민을 이어갈 수밖에 없었다. 내 취향은 아니지만 상급자의 마음에 들도록 공간을 장식하거나, 대중적인 연주자를 섭외해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음악이 흘러나오게끔 했다.
퇴사 후 1인 목공방을 꾸려나가는 지금의 나는 거기서 빠져나와 개인의 방을 마련한 셈이다. 마음에 드는 그림을 벽에 걸어두거나 즐겨 듣는 신나는 노래를 크게 틀어놓는다. 이곳에서 나는 다른 사람의 욕망을 반영하거나 흉내 낼 필요가 없다. 냉장고를 초록색 맥주와 빨간색 콜라만으로 가득 채울 수도 있다.
1인실 치고는 넓어 보인다
자기만의 방
내 작업실은 제주 외곽의 허름한 창고 건물이다. 날벌레들이 공동점유를 주장하고, 공방 앞 수풀더미에 노루가 가끔 출몰한다. 단열이나 차폐가 제대로 되지 않는 거대한 슬라이딩 도어가 안과 밖을 구분한다. 비가 오면 종종 물이 들이친다. 샌드위치 패널로 된 벽에는 수납공간을 만들기가 여의치 않아 정리는 늘 뒷전이다. 그래도 오롯이 나의 일을 할 수 있는 별도의 공간이 있기에 매우 흡족하다. 늦은 밤 시끄러운 기계 소리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 도심지에서는 임대료나 소음 때문에 지하에 위치한 공방이 많은데, 나의 공방은 1층에 자리 잡고 있다. 제주의 외곽 지역에서는 지하공간을 찾는 것이 더 어렵기도 하다. 낮에는 해가 들고, 나무를 실어오거나 완성된 가구를 내보내기도 쉽다.
이 공간에서 모든 것은 내 결정에 따라 이루어진다. 기계를 다루거나, 작업 순서를 배치하거나, 식사시간을 정할 때도 마찬가지다. 중간에 다른 일을 해야 되면 그저 하던 것 그대로 잠시 멈췄다가 아무 일 없이 다시 돌아오면 된다. 내가 손을 놓으면 일시 정지 버튼을 누른 것처럼 고스란히 저장되고, 필요하면 언제든 다시 이어간다.
그렇기에 여기서는 예전의 직장생활에서 체득한 가치들이 대개 그 의미를 잃는다. 출퇴근 시간이나 보고 절차, 사무실 내 매너와 같은 것들이다. 나는 느지막하게 작업실에 도착해서 세심하게 고른 노동요 플레이리스트를 재생하고, 짬이 날 때 먹고, 손 닿는 곳에 공구들을 늘어놓는다. 늦게까지 작업을 계속하다 너무 늦었나 싶을 때 집으로 돌아간다. 효율적이지는 못하기에 이것저것 느슨한 규칙들을 조금씩 시도하는 중이기는 하나, 과거의 규범들이 더는 의미를 가지지 못하는 무인도에서는 완전히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내지 않으면 안 된다.
커다란 창고 건물을 3분할해서 그중 하나를 사용한다
작업공간을 구해보자
사람들은 모두 작가의 측면을 가지고 있다. 각자가 가지고 있는 복잡한 특성과 세계를 어떤 방식을 통해 재현하는 것에 몰두하는데, 취미란 그런 것이 아닐까. 그 결과물은 한두 줄짜리 SNS 포스팅에서부터 좀 더 복합적인 창작물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형태로 나타난다. 사회적 욕망의 그물망에 걸러지지 않은 말랑말랑한 개인의 고유한 가치를 어떤 형태로 빚어내고자 할 때, 먼저 필요한 것은 그것을 위한 공간이다. 물론 욕심은 날 것이다. 하지만 처음부터, 또는 누구나 엄청난 작품을 벼리어 내는 영혼의 대장간씩이나 필요한 것은 아니다. 손바닥만 한 핸드폰 화면 속이거나, 양팔 안에 들어오는 책상만큼의 너비거나, 원래 용도를 잃은 조그만 창고이거나, 최신식 기계들이 갖춰진 거대한 공방이거나 할 것 없이 각각의 공간은 서로 다른 방식으로 사용자가 몰두하는 밀도를 유지할 것이다.
거창하게 이야기를 꺼냈는데, 다음 문장으로 요약할 수 있다. 작업실이 갖고 싶었다. 목공 취미를 영위하기 위한 공간 확보 방법에는 대표적인 몇 가지가 있다. 집안에 소규모 작업실을 마련하거나 일반 목공방의 취미반을 수강하는 것, 그리고 열쇠공방을 구하는 것이다.
주거지에 작업공간을 마련하는 것은 상당히 난해한 일이지만 불가능하지는 않다. 동거인이 있다면 허락을 받는 것부터 시작하자. 장기적으로 전략을 수립하고 공을 들여야 할 수는 있지만, 바라건대 이 부분이 가장 어려운 지점은 아닐 것이다. 단독주택이라면 그나마 형편이 낫겠다. 창고, 차고나 마당에 작업공간을 마련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시끄러운 기계를 사용할 때는 이웃의 눈치를 살펴야 한다. 이보다 조금 더 열악한 상황도 있다. 취미목공 커뮤니티에는 베란다 공방이라는 이름으로, 아파트와 같은 공동주택에 조성한 작업실 사진이 더러 올라오기도 한다. 얼마나 번거롭고 신경 쓸 일이 많은지 알기에 경의의 마음이 먼저 든다. 목공의 신이 있다면 이들을 먼저 살피소서. 이 경우 작업 중 발생한 분진을 처리하는 것은 물론, 벽 하나를 사이에 두고 집들이 붙어있는 탓에 전동공구를 사용하기조차 힘들다. 목재를 쌓아두거나 조립 중인 가구를 둘 곳도 제한적이다.
목공방의 취미반은 체험 목공부터 자유 제작반까지 비용을 내고 과정을 수강하는 형태이다. 공방 운영자의 의도와 재량에 따라 사용 형태가 달라지는데, 대개 일주일에 한 번에서 두 번 방문해서 관리자의 조력을 받아 기계와 공간을 이용하는 식이다. 공방의 외부 작업이나 다른 수업 일정이 있기에 정해진 시간 말고는 사용하기 힘들다.
열쇠공방은 여러 명이 한 개의 작업실을 공유하는 개념인데, 비교적 자유롭게 이용 가능하다. 공방에 따라 관리규칙은 천차만별이지만 보통은 개인 작업용으로 원하는 시간에 방문해서 사용할 수 있다. 내 상황에서는 열쇠공방을 구할 수 있다면 가장 좋았겠지만 제주에서 이런 형태로 운영하는 곳은 상당히 드물었고, 현실적으로 오갈만한 거리 안에서는 찾을 수조차 없었다.
공방 구석 사무공간(정리 후). 책상은 면적에 비해 엄청나게 대단한 일들이 일어나는 곳이다
첫 작업실 이야기
작업실이 갖고 싶었다. 온전히 나 혼자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는 공간이 이 땅 어딘가에 마련되어 있다니, 얼마나 멋진 일인가. 당시 나는 다니던 회사를 그만둔 뒤 전문 아카데미에서 목공 과정을 수료했으나, 모종의 사유로 또 다른 직장 생활을 이어가던 터였다. 서울에서 제주로 배경도 바뀌었다. 제주 생활도 익숙해질 무렵, 이제 어떻게든 작업실을 확보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느 책에서처럼 이상향으로 가는 기차표를 손에 쥐고도 올라타지 못하는 사람이 있고, 어느 노래가사처럼 누군가 날개에 관해 토론하는 동안 그저 하늘을 날아버리는 사람도 있다. 그 사이에서 나도 뭔가 시작하고 싶었다.
그때 처음 작업실을 구했다. 열댓 평 남짓한 작은 건물이었는데, 한라산 중산간의 큰길에서 벗어나 포장도 안된 산길을 한참 따라 올라간 숲 속에 위치했다. 갖고 싶었던 수공구와 작은 기계들을 하나씩 사다 채웠다. 나만의 작업 공간이 있다는 것만으로 이미 유망한 목공인이 된 양 대패를 쥔 손에 힘이 들어가고 삶이 즐거웠다.
그러나 결과적으로는 여기서 생각했던 많은 일들이 생각만으로 그쳤다. 기회가 날 때마다 들렸지만 슬금슬금 녹이 올라오는 공구들을 닦아내기만 하다 시간이 훌쩍 지났다. 공간은 마련했으나 할애할 여유가 없었다. 내 대부분의 시간은 생계를 위한 직장생활에 우선 소비되어야만 했다. 잦은 야근과 주말근무로 몇 주만에 작업실에 가보면, 손바닥을 짚었던 자리에도 녹이 슬금슬금 올라오고 있었다. 설치해 둔 CCTV 앞에 거미가 집을 치는 것을 회의시간에 핸드폰을 쥐고 관찰했다. 딱히 뭔가 실현하지 못한 채 공간을 정리했다.
한라산 중턱 첫 작업실의 모습
공간의 생산성
지금의 작업실은 그때에 비하면 호화스러울 지경이다. 거대한 기계들이 있고, 당분간 사용할 나무도 쌓여 있다. 주문이 들어오면 종류를 가리지 않고 만들어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고민은 이어진다. 여기서 나는 과연 어떤 일들을 할 수 있을까?
내가 사는 집 앞에는 화물택배 사무소가 있다. 작업실과 비슷한 철골조 샌드위치 패널 건물이다. 매일 트럭이 들락거리고, 야적장에는 배송을 기다리는 화물들이 쌓여있다. 지게차가 분주하게 오간다. 사무실에는 두 명의 직원이 택배 접수와 안내를 돕는다. 내 작업실과 비슷한 면적이지만 거기서 발생하는 경제효과나 일의 밀도는 훨씬 높아 보인다. 닮아 보이는 배경에서 나는 갈팡질팡한다. 어떤 날에는 작업을 쉽게 시작하지 못하고 그저 앉아만 있는다. 내가 이 작업실에서 스스로를 이해시킬만한 가치를 만들어낼 수 있을까? 상당한 임대료를 지불하는 상업공방 운영자로서 공간의 생산성은 늘 어려운 주제다.
본격적인 목공은 넓은 공간이 필요하다. 대형 목공기계들이 놓일 자리를 확보해야 하고, 목재를 종류별로 쌓아 두어야 하고, 작업 중 날리는 톱밥을 피해 완성된 가구를 보관할 공간도 있어야 한다. 이 작업실은 널찍해 보이지만 기계들의 가동 영역까지 감안하면 빈틈없이 꽉 들어찬다. 벽체를 세워 공간을 분할하거나, 벽면에 마땅한 수납공간을 확보하지 못한다는 점을 생각하면 효율은 더욱 떨어진다. 일정 규모 이상의 작업을 시작하면 채 몇 시간도 지나지 않아 동선 확보조차 힘들어진다. 보이지 않는 장애물을 피하듯 목재와 조립 중인 가구들을 여기저기 늘어놓아야 한다.
특정 자재만 전문적으로 사용하거나 제작방식을 제한한다면 공방 내부를 좀 더 효율적으로 꾸밀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 짧은 시간 안에 더 만들 수 있고 경제적으로도 더 유리해진다. 하지만 아직은 이것저것 만들어 보고 싶은 게 많기에 어떻게든 다 싸안고 가는 중이다. 본격적인 나만의 작업실에 원하는 대로 머물며 상상했던 근사한 가구들을 만들어내리라 생각했지만, 현실은 여의치 못하다. 판매용 주문가구를 만드는 작업은 대개 제작자의 사적이고 자유분방한 창작욕구를 어느 정도 억제하는 방향으로 이루어진다. 누적된 경험에 따라 최선의 결과가 예견되는 안정적인 절차를 주로 택한다. 특히 납기나 금액에 있어서는 더욱 그러하다.
나는 이 공간에서 어떤 부가적인 의미를 이끌어내야 할까. 작업을 하다 보면 혼자서도 내내 부족하기만 한 공간이지만 어떤 날엔 망망대해처럼 넓게 느껴진다. 일단 뭐든 할 수 있는 나만의 방이 생겼으니, 뭐든 해 나가 보는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