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방운영② 목수라는 직업
좋아하는 일이 직업이 되었다. 난관이 있다면 애써 의연하게 대처하고, 그보다 조금 더 많은 즐거움을 찾아내면 되지 않겠냐는 단순한 셈법으로 이 일을 선택했다. 직업을 택했다기보다는 취미와 직업의 경계가 모호한 지점으로 나를 의식적으로 끌고 왔다. 하지만 취미화된 직업보다 직업화된 취미는 더 나빠 보인다. 상업공방을 운영하는 지금도 목공은 내가 지원하고 부양해야 하는 대상이다. 우리는 애매하게 서로를 먹이거나 살리고 있다.
취미와 직업
좋아하는 일이 직업이 된다는 게 마냥 즐겁지만은 않다는 말은 귀에 못이 박이도록 들어봤다. 의외인지는 모르겠으나, 취미였던 목공을 결국 직업으로 삼은 나는 이 문장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범인들에게 생업이란 대개 괴로움을 주는 것이 고유한 속성임을 생각하면, 생계활동의 뿌리가 취미에 있다 한들 이를 크게 벗어나지는 못할 것이리라. 하지만 어차피 괴로워할 수밖에 없다면 좋아하는 일이 주는 고통을 택하는 편이 낫다 싶었다. 이게 맞나, 싶은 괴로움의 틈새에 불쑥불쑥 고개를 내미는 환희와 기쁨의 순간들이 더 반가울 것이므로.
스스로의 선택으로 말미암은 고통 속에서 주인공이 결국 구원을 얻는 이야기는 끊임없이 반복해서 재생산되어 왔다. 내가 겪는 것들은 여기에 비하면 엄청난 고통도, 위대한 구원도 아니지만 당사자의 작은 그릇에는 충분히 넘쳐난다. 난관이 있다면 애써 의연하게 대처하고, 그보다 조금 더 많은 즐거움을 찾아내면 되지 않겠냐는 지극히 단순한 셈법으로 나는 직업으로서의 이 일을 해 나가고 있다.
목공을 직업으로
목공에도 많은 종류가 있다. DIY 키트를 조립하거나 스푼을 깎는 우드카빙 등은 비교적 짧은 시간 안에 좁은 공간에서도 간단하게 즐길 수 있다. 하지만 취미목공으로 어지간한 크기의 가구를 만들기 위해서는 다소 까다로운 현실조건들이 필요하다. 먼지와 소음을 감당할 수 있는 공간과 기계, 그리고 충분한 시간이다. 처음에 나는 이것을 위해 가까운 목공방의 문을 두드렸다.
대학교를 졸업하고 직장 생활을 시작한 지 몇 년 지나지 않아서였다. 당시 살던 곳은 서울 망원동이었는데, 멀지 않은 곳에 목공 클래스를 운영하는 원목가구 공방이 있었다. 여기서 가구라고 부를만한 첫 번째 작품을 만들었다. 공방에 있는 기계들이나 작업과정이 몹시 흥미를 끌었다. 좀 더 진지하게 해 보고 싶은 마음이 들어 관련 정보를 수집하고 책을 읽어 들이기 시작했다. 텍스트나 영상만으로는 성에 차지 않았다. 회사를 몇 년 더 다니다 그만두고 전문 목공 아카데미에 등록했다. 1년짜리 과정이었다. 집에서 전철과 버스를 갈아타고 두 시간 넘게 가야 하는, 꽤 거리가 먼 곳이었다. 이 기간에는 생각처럼 많은 것을 실현하지는 못했지만 직업으로서의 목공에 관해 진지하게 고민할 수 있었다. 비슷한 생각으로 모여든 사람들과 여러 가지 얘기를 나눴다. 수료할 시점에는 아쉬움이 컸다. 커다란 서가에서 자신 있게 목공이라는 두툼한 책을 꺼내 들었으나, 손을 놓지 못하게 만드는 흥미로운 첫 챕터를 갓 읽자마자 내려두는 느낌이었다.
본격적으로 목공을 알기 위해서는 우선 작업실을 구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작업실 임대료와 기본적인 기계, 공구의 금액을 어림잡아 산출해 보니 처음의 뿌옇던 계획이 조금 더 불투명해졌다. 내 인생에 회사생활은 이제 없을 줄 알았지만 실제로 없었던 것은 통장의 잔고였다. 부득이하게 다시 직장을 구해서 제주에 내려왔고 생각보다 오래 다녔다. 언젠가 취미로 작은 작업실 하나 꾸릴 수 있겠거니 생각했는데 애초에 작은 단위의 돈들은 서로 뭉치는 성질이 없어 보였다. 대패질할 힘이라도 충분히 붙어있을 때 시작해야 한다는 생각에 기계 몇 종류 살 돈이 가까스로 모이자 이번 직장도 그만뒀다. 부족한 건 하면서 채워나가겠다는 생각으로, 다소 무리다 싶기도 한 계획을 실행에 옮겼다.
직업을 택했다기보다는, 취미와 직업의 경계가 모호한 지점으로 나를 의식적으로 끌고 온 셈이다. 정규 직업에서 돈을 벌어 별도의 취미를 영위하는 구조에서 수수료와 같은 불필요한 단계를 날려버렸다. 취미에서 수익을 얻어 직업의 구색을 갖추는 것에서 시작했다. 하지만 취미화된 직업보다 직업화된 취미는 더 나빠 보인다. 이러한 상황이니 상업공방을 운영하는 지금도 목공은 내가 지원하고 부양해야 하는 대상이다. 가구를 팔아 대금을 받으면 다시 기계를 매입하고, 철물과 소모품들을 구입하고, 관련된 책을 주문하고, 다시 작업을 시작할 나무를 들여온다. 우리는 애매하게 서로를 먹여 살리고 있다.
딱히 가리는 작업 없이 할 수 있는 건 두루두루 하려고 노력한다. 돈이 되거나 재미있거나, 둘 중 하나면 일단 한다. 둘 다라면 어쩔 수 없이 돈이 되는 쪽이 우선이다. 돈은 안 되지만 재미있을 것 같아 시작했는데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었다. 재미는 없지만 돈은 될 것 같아서 시작했는데 그렇지 않은 경우도 많았다. 그래도 어느 정도의 경험치가 남는다면 스스로를 납득시킬 수 있다. 그렇게 나는 나무를 만지며 살아있다.
본업에 진심인 목수
나는 기계나 공구 쇼핑을 좋아한다. 새로운 기계를 구입함으로써 기존에 어렵거나 불가능했던 작업을 하나씩 활성화할 수 있다. 컴퓨터 게임의 스테이지를 하나씩 클리어하듯이 작업 영역이 넓어지고 작업자의 스킬이 추가된다. 좀비들을 피해 가슴 졸이며 출구를 찾아야 하는 호러 게임에서 고성능 무기 아이템을 얻으면, 좀비 떼를 휩쓸고 다니는 액션 게임의 쾌감마저 느낄 수 있는 것과 같다. 평소 눈독 들이던 초합금 수공구를 구입하거나, 장바구니에 묵혀두었던 전동공구를 마침내 손에 쥐는 순간은 목공인이 일한 보람을 느끼는 최고의 시간 중 하나이다.
우선 일러두건대, 이것은 내 경험이 아니라 직장인 A라는 가상의 인물 이야기다. 그렇고말고. A는 한 달에 몇 시간 제대로 할애하지도 못하는 취미 목공에 빠져 허우적대는 중이다. 회사 컴퓨터로 목공 유튜브를 보다 제때 할 일을 놓치기도 하고, 점심을 김밥으로 때우면서도 사무실로는 비싸 보이는 공구나 마감제 등이 수시로 배송된다. 다만 잦은 야근과 주말 출근으로 인해 제대로 사용하지는 못하는 것 같다. 주변인들은 A를 쉽게 이해하지 못하고, 당사자의 안타까움도 내내 커져간다. 극단의 현실주의를 적용하자면 그는 생활이나 경제에 대한 관념이 지극히 결여된 자이다.
하지만 A의 직업이 가구를 만드는 목수라고 가정해 보면 어떨까? 하루종일 끊임없이 가구의 구조에 대해 생각하고, 결구 방식에 관한 책을 사서 읽고, 마감제의 화학적 원리에 대해 연구하고, 버는 족족 아낌없이 공구를 사들인다. 지금 당장은 불필요해 보이는 기계 설비에도 투자를 아끼지 않지만 단지 업황이 좋지 않아 주변의 아쉬움을 자아낼 뿐이다.
취미일 때는 일견 정신 나가 보이는 행동도 이제는 본업에 충실한 장인처럼 보인다. 돈을 버는 센스는 없을지언정 그마저 우직하게 느껴진다. 이러다 언젠가 성공할 것 같은 근거 없는 아우라도 풍긴다. 당장 필요는 없지만 갖고 싶었던 고가의 목공기계를 카드할부로 구입한다 해도, 대책 없는 소비가 아니라 중장기 사업운영을 위한 공격적인 투자라는 솔깃한 생각이 든다! 이렇게 철없는 가구제작자의 잔고는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게 유지된다.
유예의 습성, 납기라는 동력
유예는 가장 빈번한 나의 습성이다. 작업을 바로 시작하는 일은 거의 없었다. 마지막까지 도면을 살피다 더 나은 아이디어가 떠오를 때까지 꾸물거리고, 책을 읽거나 뭔가를 먹고 잠시 졸기도 하다 도면을 다시 붙들고 수정한다. 오랜 고민을 거쳐 작업 순서를 최적화한다. 비생산적 행태에 대한 자책감이 들기 시작하면 그제야 그것을 원동력 삼아 비로소 일을 시작하곤 했다. 준비동작이 상당히 큰데, 애써 좋게 말하자면 설계나 제작 공정에 불확실한 노고를 투입하기 꺼리는 성향 때문이다.
하지만 상업공방을 운영하는 지금은 납기라는 것이 끼어든다. 그것도 엄청난 존재감을 내뿜으며. 완성된 가구를 약속한 시각 안에 의뢰인이 받을 수 있도록 어떻게든 시간을 분배하고, 노력을 투자해야 한다. 한 번쯤 갖고 싶었던 디자이너의 작품이 아니라 필요에 의해 구매하는 실용가구를 한두 달 이상 불만 없이 기다릴 사람은 드물 것이다. 최대한 빠르게 제작을 마치고 배송을 시작해야 한다. 주문이 여러 건 밀려 있을 때는 더더욱 그렇다. 한 건 지연되기 시작하면 연쇄적으로 늘어지므로 긴장감을 유지하게 된다.
반면에 쉽게 착수하지 못하고 미적거리는 이들에게는 납기의 존재가 되려 긍정적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끝이 쉬 보이지 않는 막연한 구상과 최적화의 미로를 빠져나와 적절한 수준에서 제작에 돌입할 수 있다. 계획이 충분하지 않게 느껴지더라도 일단 작업을 시작한 뒤 몰입하다 보면 좋은 결과물이 나오거나, 그 과정에서 배우게 되는 점이 분명 있다. 납기가 있으므로 나처럼 극도로 소심한 자들이 평균적인 수준의 결단력이라도 갖출 수 있다. 아무리 시간을 투입해도 과정이 항상 만족스럽거나 완벽한 품질의 결과물을 보장하지는 않기에, 의뢰인과 약속한 완성일자는 작업에 적절한 속도감과 동력을 부여한다.
목수라서 행복한 덕후
다시 취미와 직업에 대한 얘기로 돌아가보자. 아무리 생각해 본들, 직업으로 고통받으며 번 돈으로 소중한 취미를 영위하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다. 이 방식이라면 취미는 나에게 기쁨만을 주는 상태 그대로 고결함을 유지할 수 있고, 순순히 직업에 충실하게 만드는 바람직한 구속력도 가지게 된다. 하지만 내가 좋아하는 이 일을 얼마나 자주, 많이 할 수 있을지를 생각하면 시간이나 여력이 한없이 모자라게 느껴질 수 있다.
한 달에 스툴 한 개를 만들어보거나, 근사한 서랍장을 몇 개월에 걸쳐 완성하는 거라면 부지런한 직장인이 취미로 할 수 있는 수준이다. 반면에 100개의 다양한 가구를 만들어보고 싶다는 소망은 본업이 따로 있다면 현실적으로 실현 불가능하다. 이것을 당연히 해낼 수 있게 만드는 방법은 하나, 가구를 만드는 일이 직업이 되는 것이다. 심지어 소정의 비용을 받아가면서까지 할 수 있다. 게다가 비싼 나무나 구하기 힘든 부품을 사용하면 더 많은 돈을 받는다! 취미목공인이 직접 사용할 수납장을 만드는 상황을 가정해 보자. 황동을 깎아 만든 몇만 원짜리 손잡이를 서랍 하나하나에 달거나, 개당 십만 원이 넘는 디자인 바퀴를 부착하는 것은 쉽사리 결심이 서지 않는 일이다. 하지만 좋은 나무를 선택한 안목 있는 의뢰인에게는 거기에 어울릴만한 고급 하드웨어를 세심하게 선별해 제안해 볼 수 있다. 비싼 부품을 쓴다고 해서 그 돈이 주머니로 들어오거나 내가 직접 사용하는 것은 아니지만, 제작자로서 매우 충족되는 경험이다.
취향과 디자인에 대한 의견도 적극적이며 구체적으로 나눌 수 있고, 구매자가 장기간 직접 사용하며 내구성 테스트도 해 준다. 이것이 단순히 수요와 공급 내지는 생산과 소비만으로 얽힌 관계만이 아니라고 생각하면, 가구를 만드는 사람에게는 셀 수 없는 가치를 지닌다. 많은 사람이 내가 만든 가구에 합당한 금전적 대가를 지급하고 기꺼이 즐겨 사용해 준다면 그것만큼 제작자로서 기쁜 일은 없을 것이다.
다양한 재료들로 새로운 어떤 것을 만들어내는 작업은 상상하고, 떠돌고, 배우고, 구상하고, 실현하는 모든 행위들을 응축하여 정제된 결과물로 내보이는 일이다. 반복하고 또 반복할수록 만드는 이의 경험과 지식은 깊어진다. 오늘도 가구를 만들며 이 과정을 지속할 수 있어서 다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