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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덕호 Aug 15. 2024

끊임없이 변형하는 나무의 성질

가구제작⑦ 마감과 완성

가구를 만드는 사람은 구조 설계부터 조립, 마감에 이르기까지 목재의 변형을 방지하기 위한 수고를 아끼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무로 만든 가구의 크고 작은 변형은 필연적이다. 나무는 정적이지만 그 안은 끊임없이 떠들썩하다. 이 시끄러운 소리들을 달래주는 게 마감의 역할이다. 매끄럽게 마감된 가구의 표면은 나무의 생애와 사람의 생활을 연결하는 아주 얇고 투명한 교집합이다. 마감 작업까지 끝나면 이 가구의 제작자로서 나의 역할은 마무리된다. 이제 나는 그것을 어떻게든 팔아야 하는 또 다른 운명에 처했다.




원목의 특성입니다만?


'원목 가구의 자연스러운 특성'이라는 말은 좋게 해석하면 나무라는 소재가 가지는 매력, 나쁘게 말하면 근원적인 한계를 압축해서 설명한다. 가구의 하자를 의심하는 구매자에게 제작자가 가장 먼저 건네는 효과적인 방어수단이기도 하다. 이 말은 어떨 때는 맞고, 어떨 때는 틀리다.


원목 가구 판매처의 상품 설명을 보면 주의사항이 이것저것 길게 붙어 있다. 원목이므로 색상과 무늬는 화면과 다를 수 있다거나, 옹이나 흠집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거나, 사용환경에 따라 갈라지거나 변형될 수 있다는 등의 문장들이다. 불필요할 정도로 자세해서 무던한 구매자까지 되려 겁먹는 게 아닌가 하는 경우도 있고, 어떤 곳은 제작과정의 무성의까지 뭉뚱그려서 두루뭉술하게 넘어간다 싶기도 하다.


제작자는 변형을 방지하기 위해 들이는 당연한 수고를 아끼지 않는다. 이 노력은 가구의 구조 설계에서부터 조립과 마감에 이르는 전체 과정까지 끊임없이 적용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무로 만든 가구의 변형은 필연적이다. 정도에 차이가 있을 뿐 절대 변형이 없을 것임을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 나무의 무늬는 겉으로는 고요하지만 깊은 곳에서부터 아주 천천히, 그리고 무겁게 일렁이고 있다.


내가 만든 가구에도 하자, 아차, '원목 가구의 자연스러운 특성'이 언젠가 발현될 수도 있을 것이다. 소심한 가구제작자인 나는 어디까지 이걸 미리 설명하고,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늘 고민한다. 새 가구를 받고 신나야 할 시점에 내가 만든 가구의 잠재적인 허점이나 잘잘못을 구구절절 끄집어내서 일러바치는 이상한 모습으로 비칠 수도 있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미없는 주의사항을 귀 기울여 듣고, 나무의 성정을 있는 그대로 기꺼이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어서 즐겁게 만든다.


노출된 제재목 양 끝단은 수분 증발로 갈라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페인트칠된 상태로 유통된다




함수율과 수축 팽창


제재한 나무는 일정 수준으로 건조한 다음에야 가구재로 사용할 수 있다. 목재의 건조 정도는 수분 함유량을 수치화한 '함수율'로 표시한다. 건조가 완료되어 시중에 유통 중인 목재의 함수율도 계속해서 변한다. 흔히 목재는 숨을 쉰다고 표현한다. 습도가 높으면 공기 중의 수분을 흡수하고, 건조한 날에는 뱉어내면서 주위 환경에 적응한다. 수분을 흡수하면 목재는 그만큼 팽창하고, 다시 뱉어내면 수축한다.


나이테는 방사형이므로 제재목의 부위별 수축률은 동일하지 않다. 변형이 왔을 때 전체적으로 균일하게 줄어들거나 늘어나는 것이 아니라, 휘거나 뒤틀린다는 뜻이다. 심재보다 변재의 수분 함유량이 많고, 변형의 폭도 크다. 다른 부분과 밀도 차이가 큰 옹이 부위도 마찬가지다. 공방에 쌓아둔 나무 또한 실내 환경의 영향을 받는다. 가공을 시작하는 순간부터 속살이 노출되며 변형의 폭은 더 커진다.


제재목으로 가구를 만드는 것은 하루아침에 끝나는 일이 아니다. 나무를 재단, 조립하고 완성하기까지 최소 수일에서 수주가 소요된다. 그동안 속살을 드러낸 목재들은 공방의 온도와 습도에 맞춰 끊임없이 꿈틀댄다.


나무는 탄성이 있는 소재이므로 어느 정도의 휨은 조립과정에서 바로잡을 수 있다. 번거롭더라도 여러 번에 나눠 가공함으로써 변형을 늦추는 방법도 있다. 목재를 보관할 때도 비닐로 감싸서 외부 습도와의 직접 접촉을 차단하고, 무거운 것을 올려서 눌러두기도 한다. 조립할 시점의 조건을 생각해서 일부러 치수 오차를 줄 때도 있다. 변형이 일어나도 시각적으로는 눈치채기 힘들게 설계상 약간의 트릭을 적용하거나, 수축 팽창하는 방향으로만 조금씩 움직임을 허용하는 전용 철물을 사용하기도 한다.


변형에 대한 고민 없이 만든 가구는 시간이 지나며 전체 모양이 조금씩 뒤틀리고, 결구 부위가 터져버릴 수 있다. 이 변화는 습도가 변하는 계절 단위로 느리게 일어난다. 아예 수축 팽창을 못 하도록 접착제나 못으로 단단히 고정해 버린다면 어떨까? 작은 부품이라면 변형되는 폭이 작아서 어느 정도 견딜 수 있을지도 모르겠으나, 테이블 상판 정도 되는 넓은 목재라면 끝내 이겨내지 못하고 어딘가 터져버릴 것이다. 목재의 종류나 크기, 나뭇결의 방향, 마감 상태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일반적인 가정용 원목 가구의 변동폭은 몇 mm에서 몇 cm단위까지 이른다. 실내가 건조한 겨울에 수축을 버티지 못해 틈이 벌어진 부분이, 여름에는 팽창해서 다시 붙기를 반복하기도 한다.


작업실 온습도계와 함수율 측정기. 여름이었다.




마감 작업


그래서 목재 마감이 필요하다. 마감은 제작자의 손에서 이루어지는 가구제작의 마지막 단계이다. 최종 사용을 앞두고, 가구의 미관을 향상하는 목적과 함께 완성된 가구의 수축과 팽창을 최대한 저지해 주는 것이 마감이다. 나무의 표면에 침투하거나 얇은 막으로 덮어버리는 방식으로 수분과의 접촉이나 오염, 변형을 방지한다. 광택을 주거나 더욱 짙고 깊이감 있는 색상을 이끌어내기도 한다. 목재 마감의 세계는 넓고도 깊다. 가구를 만드는 전체 과정 중 마감은 내가 가장 어렵다고 느끼는 단계이다. 어느 정도 알겠구나 싶다가도, 깊게 파고들수록 종종 오리무중이다. 하지만 공들인 만큼 마감 품질은 배신하지 않고 상승하므로 자원과 노력을 쏟아부을 가치가 충분한 것만은 확실하다.


수시로 닦아내야 하는 식탁의 상판은 강한 마감이 필수적이다. 손을 별로 타지 않는 선반 종류는 강도보다는 미관 위주로 마감 방식을 선택해도 될 것이다. 조립이 뼈대를 세우는 과정이라면 마감은 살을 붙이고 옷을 입히는 단계이다. 세심하고 꼼꼼한 마감은 마음에 드는 향수를 뿌리거나 액세서리로 멋을 내는 역할까지 충분히 해 낸다.


레드오크에 보일드 린시드 오일을 바르자 색감이 확 살아난다




마감제의 종류와 사용


오일, 바니쉬, 래커, 왁스, 셀락, 페인트, 스테인, 심지어 비누에 이르기까지 목재가구 마감에 사용되는 재료는 다양하다. 오일이나 왁스는 목재의 내부로 스며들어 보호하는 '침투성 마감'이고, 바니시, 래커와 같이 표면에 얇은 보호막을 형성하는 것은 '도막형 마감'이라고 한다.


침투성 마감은 나무의 무늬나 촉감이 어느 정도 유지되고, 나무 고유의 색깔과 무늬를 효과적으로 강조한다. 사포질을 끝내고 먼지를 털어낸 뽀얀 가구에 오일이 스며들면 색감이 쏟아지듯 확 살아나는데, 흑백이었던 세계가 컬러로 명확해지는 느낌에 비견할 만하다. 보호력은 다소 약하지만 나무의 질감까지 고스란히 유지한다. 유지보수가 상대적으로 쉬운데, 손상이 생겼을 때 사포로 조금 갈아내고 다시 오일을 발라주면 감쪽같다. 반면 도막형 마감은 목재의 표면에서 경화되면서 필름과 같은 막을 형성하여 목재를 보호한다. 자연스러운 느낌은 덜하지만 외부 충격과 오염에 강하다. 침투성 마감은 쉽게 상처 날 수 있지만 약을 바르면 낫는 살거죽이고, 도막형 마감은 단단한 외골격과 같다고 생각하면 되겠다.


상업공방에서 가장 대중적으로 사용하는 마감제 두 가지를 꼽으라면 오일과 바니쉬일 것이다. 각각 침투성 마감과 도막형 마감의 대표격들이다. 아마씨에서 추출한 린시드오일이나 유동나무 열매에서 온 텅오일이 가구 마감용으로 사용되는 천연오일이다. 천연오일은 상대적으로 건조가 느리고, 사용 중에도 짧은 주기로 재도포해야 최상의 컨디션을 유지할 수 있다. 천연이라는 말이 주는 호감과는 별개로 관리가 까다롭거나 보호력이 충분하지 못한 경우가 많다. 그래서 많은 목공 마감제 전문 제조사들은 여기에 경화제나 바니쉬 성분 등을 혼합한 제품들을 내세운다. 천연 오일의 단점을 보완하고 사용성을 극대화한 제품들이다. 제조사의 레시피에 따라 건조시간, 권장하는 도포 횟수, 스며드는 정도, 보호 강도, 광택 등 종류와 특성이 천차만별이다. 제품에 따라 아동용 장난감에 사용할 수 있다거나, 식품 접촉에 적합하다거나, 유해물질 배출량이 0에 수렴한다는 등 여러 가지 인증마크를 확인할 수도 있다. 바니쉬 역시 마찬가지인데, 제조사와 종류에 따라 사용성이나 성능이 천차만별이다. 마감제에 대해 제대로 알기 위해서는 많이 사용해 보고 정직한 경험치를 쌓는 수밖에 없다.


마감 작업을 할 때 주변 환경도 마감 품질에 영향을 미친다. 마감제가 건조되는 동안 먼지가 유입될 수도 있고, 온도나 습도에 따라 광택이나 투명도 품질에 차이를 보일 수 있다. 최상의 결과물을 얻기 위해서는 제품 매뉴얼을 꼼꼼히 읽고 제조사가 의도한 사용 환경 조건을 우선 충족해야 한다. 너무 덥거나, 춥거나, 습한 날은 마감작업을 하기에 좋지 않다. 마감제의 특성에 따라 물이나 미네랄스피릿 등의 용제를 적절히 추가하여 농도를 조절하거나, 두 개 이상의 마감제를 혼합해서 사용하기도 한다.


다양한 종류의 테스트용 마감제들




전설의 마감제를 찾아서


목공방을 차린 뒤 이내 단 하나의 완벽한 마감제를 찾는 여정을 시작했다. 실제 제품에 적용하지는 않더라도 사용해보지 않은 마감제가 있다면 조금씩은 사서 테스트해보곤 한다. 바르는 순서에 따른 마감제의 조합이나 제조사 권장량을 벗어난 도포 횟수, 마감 직전 마무리 사포의 입도 등을 달리하며 다양한 수종에 실험했다. 초중반까지는 이러다 곧 찾을 수 있겠는데, 라는 착각을 하기도 했으나 시간이 지날수록 신기루처럼 멀어져만 갔다. 결과적으로 하나의 정답을 찾지는 못했고, 앞으로도 못할 것이라는 것을 알았다. 아니, 처음부터 몰랐던 것은 아니지만 그제야 순순히 인정하게 되었다.


좋은 마감제는 많다. 기존 제품의 단점을 개선한 제품들이 지금도 개발되고 있다. 하지만 모든 상황에 완벽한 마감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특정한 취향이나 사용 용도에 가장 적합한 마감제는 존재한다. 이 실패한 모험에 끝을 고하진 않았지만, 이제는 딱히 목적지 없이 신기루를 쫓는 항해 자체를 즐기고 있다. 그 여정에서 차곡차곡 쌓여가는 데이터베이스가 그토록 찾던 보물이었다는 식상한 결말조차 교훈적이다.


판매하는 가구는 관리 용이성도 중요하다. 멋지고 좋은 것보다는 하자 가능성이 낮은 안전한 선택지를 고르는 경우도 많다. 그러나 어떤 강력한 마감도 영원하지는 않다. 조금씩 낡은 것을 보수해 가며 세월과 함께 사용하는 것이 나무라는 소재의 매력이 아닐까? 이 매력을 한 단계 더하고, 마냥 지치는 일이 되지 않게끔 유지해 주는 것이 제대로 된 마감의 역할일 것이다.


마감제의 종류나 적용 방식에 따라 결과물은 천차만별이다




가구를 완성한 후에 일어나는 일들


나무의 변형을 무턱대고 막을 수는 없다. 고도의 설계, 시각적인 트릭, 세심한 마감 등 모든 수단을 동원해서 이를 최소화하고, 때로는 의도적으로 활용하기도 해야 능숙한 제작자라고 할 수 있다. 나무가 가만히 호흡하며 주변과 동화되는 과정은 미동도 없이 역동적이다. 눈치채지 못한 사이에 계절을 맞이한 꽃이 걷잡을 수 없이 번지거나, 풀들이 우거지는 힘과도 닮았다.


톱과 대패로 자르고 다듬은 작은 나무조각에도 이 힘은 고스란히 저장되어 있다. 잠든 개나 고양이의 배가 가만히 들락거리며 숨을 쉬듯이 가구도 부풀고 잦아들며 생애를 지속한다. 나무는 정적이지만 그 안은 끊임없이 떠들썩하다. 그 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것에서 목공이 시작되고 끝난다.


이 시끄러운 소리들을 달래주는 게 마감이다. 가구 조립이 끝나면 나는 어수선한 작업실을 정리한 뒤 청소까지 끝내고 먼지가 가라앉기를 기다린다. 기계실이 분리되지 않은 공방에서 마감작업 때 먼지 유입을 막으려면 어쩔 수 없는 절차이지만, 이 준비과정은 어떤 의식을 행하는 느낌마저 든다. 깨끗한 천에 오일을 충분히 묻혀 천천히 쓰다듬듯 나무의 표면을 어루만진다. 스며든 뒤 다시 배어 나오는 오일을 닦아내고, 칠하기를 반복한다. 사용자의 피부와 직접 맞닿는 표면이기에 거친 부분은 없는지 몇 번이고 손끝으로 더듬는다. 매끄럽게 마감된 가구의 표면은 나무의 생애와 사람의 생활을 연결하는 아주 얇고 투명한 교집합이다.


마감작업을 하는 날에는 다른 작업을 무리하게 시작하지 않음으로써 프로젝트의 일단락을 기념한다. 밤이 깊기 전에 일찍 퇴근하는 드문 날이다. 마감까지 끝나면 이 가구의 제작자로서 나의 역할은 마무리된다. 한 점의 가구를 만드는 과정은 쉽지만은 않지만 목공 덕후의 입장에서 몹시 즐거운 일이다! 그러나 가구제작을 직업으로 택해버린 이상, 나는 더 좋은 환경에서 더 많은 가구를 만들 수 있게 된 대신 그것을 어떻게든 팔아야 하는 또 다른 운명에 처했다.


요즘처럼 해가 긴 계절에는 어두워지기 전에 퇴근하는 것도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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