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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덕호 Aug 01. 2024

목수는 자동화 기계를 꿈꾸는가

가구제작⑤ CNC와 기계의 언어

공방에서 유일한 작업자인 나는 기껏해야 한 번에 한 개의 기계를 붙들고, 노동력을 나무와 함께 갈아 넣어야 한다. 그 와중에 도면을 입력하면 자동으로 목재를 재단해 준다는 CNC 라우터의 존재는 게으른 목수의 삿된 욕망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이 기계는 원체 과묵하고 먼저 말을 거는 법이 없다. 이것이 인간적 사고방식에 익숙해지는 일은 영원히 없을 것이다. 나는 이곳에서 나의 언어가 직접적으로 통하지 않는 이 거대한 기계와 자유롭고 막막하게 표류하고 있다. 




기계왕국


앞서 이야기했듯이, 합판이나 집성판으로 가구를 만들 때 필요한 기계들과 제재목으로 가구를 만드는 공방에 필요한 기계들은 구성에 조금씩 차이를 보인다. 시중에 유통되는 판재의 두께는 12mm, 15mm, 18mm 등으로 일정하게 규격화되어 있다. 판재로 가구를 만들 때는 정해진 두께에 맞게 설계하고, 바로 재단작업에 들어가면 된다. 반면에 제재목으로 가구를 만들기 위해서는 우선 한 면을 평면으로 깎아낸 뒤 원하는 두께를 만들어 내는 작업부터 필요하다. 넓은 판을 만들기 위해서는 같은 두께로 가공한 널빤지들을 단차 없이 이어 붙이는 집성 과정도 거쳐야 한다. 


가구를 제작하는 방식에도 차이가 있다. 일반적으로 판재 가구에는 나사못이나 타카 등의 연결방법을 주로 사용하고, 제재목으로 원목가구를 만들 때는 짜맞춤과 같은 방식을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사각형의 짜맞춤 장부홈을 가공하는 각끌기를 비롯해서, 제재목의 표면을 평면으로 만들거나 목재끼리 집성할 면을 다듬는 수압대패, 자동대패 같은 기계들은 판재로 가구를 만드는 공방에서 사용할 일이 거의 없다. 


나의 작업영역은 양쪽 모두에 걸쳐 있다. 상업적으로 보자면 효율적인 선택이 아니다. 넓지 않은 공방에서는 주력 분야를 명확히 정해두는 것이 공간 확보와 작업 연속성 측면에서 훨씬 유리하다. 기계 욕심이 많아 초반에 이것저것 다 모은 결과인데, 어느 쪽 하나를 과감하게 선택하거나 버리지 못하고 우물쭈물하다 이렇게 됐다. 몸집이 상당한 이 기계들을 놓을 공간은 당연하고, 재료가 되는 제재목과 합판을 놓을 공간도 두 배로 든다. 이 덩치들을 모두 껴안고 북적거리고 있자면 심란해질 때도 있지만, 나무 종류를 가리지 않고 뭐든 만들어낼 것 같은 묵직한 기계들의 조합은 볼 때마다 미덥다. 


작업실 초기 기계 레이아웃과 동선계획




CNC 라우터


이 다채로운 기계들 사이에서도 독보적인 존재감을 뽐내는 것은 단연 공방 한 편에 자리 잡은 CNC 라우터이다. 엄청난 덩치의 이 기계는 컴퓨터수치제어(CNC, Computer Numerical Control)를 통해 부재를 원하는 모양으로 가공해 준다. 도면을 보고 나무를 자동으로 잘라준다는 이야기다. 공방에 있는 것은 3축짜리 모델인데, 커다란 드릴같이 생긴 스핀들이라는 장치가 x, y, z축을 따라 움직이며 재료를 깎거나 잘라낸다. 각각의 축을 따라 스핀들이 좌우, 앞뒤, 위아래로 간섭 없이 이동할 수 있는 입체적인 작업 영역이 필요한 데다가 별도의 컨트롤러를 비롯해 부가 장치들까지 주렁주렁 달고 있어서, 이 기계 하나가 온전히 작동하기 위해 잡아먹는 공간은 작은 원룸 한 칸 정도는 거뜬히 된다. 


작동 중에 부재가 움직이지 않도록 합판이 놓인 베드의 아래에서 엄청난 힘으로 공기를 빨아들여 고정하는데, 이를 가동하기 위한 별도의 터빈이 딸려 있다. 톱밥과 먼지를 빨아들이는 전용 집진기까지 따로 연결된다. 여기에다가 라우터 스핀들이 돌아가며 나무를 깎는 소리까지 더하면 가히 비행기 이륙을 연상시킬 법하다. 덩치는 물론이고 소리까지, 여러모로 위압감을 준다. 


공방의 다른 기계들은 대체로 단순하고 묵직하다. 대형 목공 기계들이라 해도 보통은 버튼을 눌러 원형의 톱날이나 회전하는 스핀들을 켜고 끄는 것이 주요한 기능이다. 복잡한 작용은 없더라도 얼마나 강력하고 안정적으로 작동하느냐가 기계의 크기나 금액, 성능과 직접적으로 연결된다. 작동 중인 기계에 사용자가 능동적으로 부재를 갖다 대거나 움직여서 가공하는 방식이다. 따라서 이 기계들에 대해서는 작업자가 유일무이한 주도권을 가진다. 달리 말하자면, 1인 공방을 운영하는 나는 기껏해야 한 번에 한 개의 기계를 붙들고 나의 노동력을 고스란히 나무와 함께 갈아 넣어야 한다는 것이다. 반면에 CNC 라우터는 어떨까. 부재를 고정해 두면 컴퓨터가 주도적으로 가공을 해 준다고? 이제야 말이 좀 통할 것 같군! 


도면을 입력하면 그대로 잘라준다




로빈슨 크루소


'고양이 손이라도 빌린다'는 말이 있던가. 1인 공방에서 크고 작은 작업을 나눠가질 수 있는 누군가, 또는 무언가가 있다는 것은 엄청난 효율을 가져다준다. 나 하나의 노동력은 한계가 명확했고, 작업에 있어서 나는 생각보다 더 미적대거나 효율적이지 못한 경우가 많았다. 그런 와중에 도면을 입력하면 자동으로 목재를 재단해 준다는 이 기계의 존재는, 최소한의 노동으로 생활하고 싶다는 게으른 목수의 삿된 욕망을 한껏 자극했다. 


국산 가격의 절반도 채 안 되는 저렴한 중국산 모델일지언정 기대만으로도 충분했다. 나는 이 거창한 기계를 들여오면서 돈키호테의 산초 판사나 홈즈의 왓슨, 배트맨의 로빈, 아이언맨의 자비스 같은 유능한 사이드킥의 이름들을 찬찬히 떠올렸다. 버튼 하나로 지난한 재단 과정을 뚝딱 처리할 수 있다니 솔깃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내가 파악한 이 기계장치의 실상은 어르고 달래고 붙잡아주지 않으면 아무것도 하지 않는 과묵한 쇳덩어리에 더 가까웠다. 끊임없이 말을 걸어줘야 했다. 작업을 시작하기 위해서는 작성한 도면을 'G코드'라는 이 기계의 언어로 변환하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이것은 기계에 물려놓은 날의 두께와 모양을 감안해서 x, y, z축의 어떤 경로를 어느 정도의 속도로 이동할지에 대해 자세히 쓴 설명서이다. 금속성의 침묵 앞에 나는 낑낑대며 두꺼운 합판을 들어 기계에 올린 뒤 위치를 잡는다. G코드로 변환한 도면을 업로드하고, 날의 상태를 점검하고, 좌표계에서 (0, 0, 0)으로 표시되는 시작지점을 눈으로 가늠하여 설정해 준다. 부재 고정장치를 가동하고, 집진기 전원을 올린다. 이 모든 것이 다 준비되면 그제야 버튼을 눌러 작업을 시작시킨다. 떠내려갈 듯 시끄러운 가공 작업이 끝나면 완료된 부재를 회수하고, 남은 자재를 치우고, 베드를 청소한다. 이 기계는 원체 과묵하고 먼저 말을 거는 법이 없다. 


그럼에도 나는 먼지를 털어주거나 고장난 센서를 교체하고, 레일을 윤활하는 등 일방적인 교류를 이어간다. 도면을 그리고, 수치를 입력하고, 코드를 변환한다. 얼마큼의 속도로 어느 정도의 깊이를 어떤 방향과 순서로 작업할지 이 기계의 언어로 꼼꼼히 적는다. 작업 방식과 나무의 종류에 따라 스핀들 회전 속도를 조정하거나 여러 번 나눠 가공하는 등, 설정값을 세심하게 조정해 가며 기계의 행동에 대한 이해를 늘려 나간다. 기계 소리가 공방 건물을 가득 채울 때도, 나는 그 옆에서 비트가 중간에 부러지거나 부재가 위치를 벗어나진 않는지 지키고 서 있다. 이 기계는 주어진 경로로, 주어진 속도로, 주어진 깊이만큼 지나갈 뿐이다. 이 기계가 인간적 사고방식에 익숙해지는 일은 영원히 없을 테지만, 각자의 영역에서 서로의 양식을 적절히 지켜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우거진 나무들 사이 일차선 도로를 따라 한참을 달려 공방에 도착한다. 주변에는 민가조차 드물다. 샌드위치 패널로 지어진 창고건물의 커다란 미닫이문을 열고 들어서면 유달리 높은 천장이 적막감을 더한다. 이곳 목공방의 업무는 회사에 다닐 때와는 사뭇 다르다. 하루의 작업 분량과 순서를 알아서 정하고 착수하지 않으면 안 된다. 내가 금 그은 만큼이 그날의 일과이다. 망망대해 위의 작은 섬에 혼자 고립된 막연함이 느껴지기도 한다. 반복해서 G코드를 입력하고, 버튼을 누르는 그 기간 동안 서로의 언어를 어렴풋이나마 이해할 정도는 되었을까? 나는 이곳에서 나의 언어가 직접적으로 통하지 않는 이 거대한 기계와 자유롭고 막막하게 표류하고 있다. 


CNC 라우터 본체와 컨트롤러 패널




미로, 또는 통로


CNC 라우터가 판재를 완전히 잘라내기 위해서는 나무판의 두께 이상으로 날이 파고들어야 한다. 이때 기계가 제 몸을 파먹지 않도록 베드 위에 미리 MDF 재질의 희생판을 깔아준다. 이 기계는 지시받은 대로 경로를 오갈 뿐 제 몸을 아낄 줄 모르기 때문이다. 수십여 차례에 걸친 작업이 끝난 뒤, 날이 지나간 자국들로 엉망이 된 이 판은 그간의 작업 기록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레코드와 같다. 남아있는 도면 자국들이 그간 거쳐온 작업들을 상기시킨다. 켜켜이 쌓인 기록의 실타래를 하나씩 차분히 풀어내거나, 특징적인 요소들을 골라 새롭게 조합해보기도 한다. 선들이 이리저리 중첩된 모양은 복잡해 보이지만, 이때만큼은 괴물이 기다리는 어지러운 미로가 아니라 상상력 가득한 통로가 된다. 때로는 여기서 헤매는 것이 나쁘지 않다. 


희생판에는 날이 지나간 자국이 고스란히 남는다




기묘한 숲


CNC 라우터로 합판을 가공하고 나면 남는 부분이 생긴다. 도면을 작성할 때 부품과 부품 사이 어느 정도 간격을 줘야 가공과정에서 간섭이 일어나지 않기 때문이다. 날이 지나간 길을 따라 부품들을 조심스레 끄집어내는 발굴 과정을 거치고 나면, 합판은 뼈대만 남는다. 어릴 적 조립식 로봇 장난감을 만들 때, 부품을 떼어낸 플라스틱 프레임과 닮은 모양이다. 


가공 후 남은 자재는 회수한 뒤 쓸만한 부분이 있으면 최대한 활용한다. 그마저도 불가능한 나머지는 공방 한쪽에 겹쳐 세워둔다. 이렇게 두었다가 어느 정도 수량이 모이면 한 번에 목재 폐기물 처리장으로 가져가서 폐기한다. 가운데가 뻥뻥 뚫려있는 판재의 뼈다귀들이 겹겹이 쌓인 모습은, 모순적이게도 나무들이 빽빽하게 들어선 숲처럼 보이기도 한다. 한때 숲이었던 것들이 이제는 낯선 숲의 모습을 하고 있다. 나무들도 이 먼 땅에서 헤매고 있는 걸까? 처리를 미뤄둔 채 쌓여가는 합판이 점점 더 쌓일수록 입체감이 더해지며 숲은 깊어진다. 기계 소리가 울리는 그 숲 속 어딘가에서 오늘도 무언가를 찾아 나선다. 


재단이 완료된 부품을 빼내는 것은 발굴작업을 연상시킨다


부품을 모두 회수한 후 남은 뼈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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