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구제작④ 공구이야기
마음에 드는 공구를 사용할 때면 그럴듯하고 중요한 일을 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 더욱 진지하게 작업에 임하게 된다. 번거로운 작업도 좀 더 웅장하고 의식적으로 만들어준다. 어찌됐건 목공은 '도구로 나무를 깎아서 원하는 모양을 만드는 것'이고, 나무를 다듬는 것은 나에게 즐거운 행위이다. 내가 만든 의자가 누군가에게 영혼의 안식을 주지는 못할 수 있지만, 어딘가에서 화분을 올려두거나 열린 문을 받치고 있다면 그것도 충분히 멋진 일이다. 이런 멋진 일을 할 수 있게 도와주는 소중한 공구들이 있다.
수공구 예찬
목공방에서 사용하는 수공구들은 저마다의 매력이 있다. 나는 수공구를 사 모으는 것을 특히 좋아한다. 때로는 필요에 의해서라기보다는 수집에 가까운 활동이기도 하다. 공방의 수공구들은 주로 날붙이들인데, 똑같이 생긴 공구도 사용되는 합금의 종류에 따라 강도가 다르다. 제조사에 따라 전통적인 모양도 있고, 공학적인 기계장치 같아 보이는 디자인도 있다. 하나 둘 사들이다 보면 금액도 상당해서 가산을 탕진하기 십상이다. 왜 나는 수공구의 유혹에 이리도 취약한가?
여느 공방에서 가구 결합부의 접착제를 제거할 때 가장 많이 사용되는 것은 15센티미터짜리 철자일 것이다. 하나에 천 원 남짓 하는 저렴한 가격에다 두께가 얇고 적절한 탄성이 있어 삐져나온 접착제를 긁어내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다. 무엇보다 급하게 필요할 때 늘 눈에 보이는 곳에 하나쯤은 있는 도구이기에 더욱 손이 간다. 삼천 원짜리 구두칼로는 철자보다 더 세심하게 접착제를 벗겨낼 수 있다. 90도 결합부위에 딱 들어맞는 사각형의 날이 달린 전용 스크래퍼도 있다. 어떤 사람들은 굵은 플라스틱 빨대의 끝을 사선으로 잘라낸 뒤 접착제를 긁어내기도 한다.
그중 내가 접착제 제거용으로 가장 즐겨 사용하는 공구는 무려 180달러짜리 치즐플레인이다. 치즐플레인은 서양대패의 한 종류로, 대팻날의 가장자리가 끌처럼 노출된 구조라서 안쪽 모서리에 있는 접착제를 효과적으로 긁어낼 수 있다. 황동으로 된 몸체가 상당히 묵직하면서 클래식한 모양이라 시각적인 만족감까지 준다. 같은 금액이면 구두칼을 100개는 살 수 있지만, 사용할 때마다 뭔가 그럴듯하고 중요한 일을 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 더욱 진지하게 작업에 임하게 된다. 꾸덕하게 굳어가는 접착제를 없애는 번거로운 작업을 좀 더 웅장하고 의식적으로 만들어주는 멋진 물건이다. 물론 평면 위에 튀어나온 목재를 단차 없이 다듬는 원래의 용도로도 말할 것 없이 완벽하다. 사용하는 과정에서 끊임없이 연마하고 관리하며 내 몸처럼 손에 점점 달라붙는 것도 수공구의 크나큰 매력이다.
끌과 대패부터, 수공구들
목공의 완성은 끌과 대패라는 말에는 이견을 찾아보기 힘들다. 아무리 기계가 좋아진다 한들 끌과 대패를 사용하는 마무리는 완성도를 높이는 데 필수적이다. 특히 짜맞춤으로 가구를 만들 때 더 그렇다. 손에 움켜쥐고 몸 전체를 이용해 밀거나 당기는 동작으로 나무를 가공한다. 잘 연마된 날이 서걱거리며 나무를 부드럽게 깎아내면 기분마저 상쾌하다. 어디 하나 걸리는 곳 없이 목재 표면을 미끄러지듯 지나가면 투명한 대팻밥이 길게 뽑혀나오는 쾌감이 매우 중독적이다. 한 손에 쏙 들어와 여기저기 사용하는 블록플레인이나 장부 홈을 파는 라우터플레인, 숫장부를 가공할 때 사용하는 숄더플레인, 마구리면을 갈라짐 없이 대패질할 때 쓰는 슈팅보드플레인 등 용도와 상황에 따라 다양한 종류가 있어 수집 욕구를 자극한다.
흔해빠진 망치나 톱과 같은 공구도 용도에 따라 세분화된다. 끌 타격용 망치, 조립용 고무망치, 저반동 우레탄 망치, 말렛이라고 부르는 나무망치 등이 있고, 톱에는 플러그톱, 등대기톱, 세공용 톱, 쥐꼬리톱, 부재의 중심부부터 잘라내기 위한 줄톱 등이 있다. 이렇게 다양한 종류들을 하나씩 사서 모으는 것은 공방 생활의 큰 재미다. 오래 두고 사용할수록 손에 익는 느낌이 좋다. 녹을 제거하고, 날을 연마하고, 녹슬지 않게 기름을 먹여주는 과정 또한 즐겁다. 수십 년 된 낡은 공구를 중고로 구매해 리스토어해서 사용하는 사람들도 많다. 공구에 공을 들이고 애정을 붙일수록 말을 잘 듣는다.
전동공구의 진동이나 소음과는 달리, 조용한 와중에 나무를 깎으며 스미는 차분한 정서가 있다. 매끈하게 잘 관리된 공구가 주는 만족감이 있다. 체중을 실어 밀고 당기며 바른 자세로 리듬감 있게 나무를 가공하는 행위는 원초적인 즐거움을 준다.
전동공구의 분류
일반 가정에서 가장 익숙한 전동공구는 벽에 구멍을 내거나 나사못을 박는 핸드드릴일 것이다. 전동공구는 전원의 종류에 따라 플러그를 꽂아 사용하는 유선과, 배터리를 사용하는 무선공구로 나뉜다. 유선공구는 우리나라의 경우 220볼트의 전원을 받아 작동하는데, 배터리 타입에 비해 강한 힘을 낸다. 별도의 배터리가 장착되어 있지 않기에 상대적으로 가볍다. 어딘가에 연결되어 있다는 것은 안정감과 부가적인 힘을 준다. 하지만 코드의 길이가 정해주는 반경을 벗어나기 힘들다는 단점이 있다.
대중적으로 유통되는 무선공구는 전압에 따라 두 가지로 분류된다. 18볼트(20볼트)와 10.8볼트(12볼트)이다. 18볼트는 더 강력하지만 그만큼 배터리가 크고 무겁다. 콘크리트 벽에 타공을 하는 것과 같이 부하가 많이 걸리는 작업용으로는 18볼트 이상을 추천한다. 물론 무선보다는 유선이 낫다. 일반적으로 같은 작업을 할 때 높은 전압의 강력한 공구를 사용하는 쪽이 수월하다. 하지만 가구를 조립하며 나무에 구멍을 내거나 나사못을 박을 때는 10.8볼트짜리 공구로도 충분하다. 도리어 무리한 힘을 가했을 때 나무가 쩍 하고 갈라지거나 나사 머리가 망가질 수 있다. 부재를 곡선으로 자르는 직쏘나, 직선으로 재단하는 원형톱 등도 무선 제품들이 있다. 최근에는 테이블쏘처럼 큰 힘이 필요한 기계들도 고전압 배터리를 사용하여 포터블로 구동되는 제품들이 출시된다.
색깔놀이
배터리가 달린 공구를 처음 구매한다면 신중을 기해야 한다. 배터리는 상당히 고가인 데다가 사용량에 따라 여분의 배터리도 필요하다. 동일 제조사의 동일 전압 제품군에서는 같은 종류의 배터리를 사용한다. 따라서 한 제조사의 제품들로 공구함을 구성하는 것이 유리하다. 대체로 처음의 선택이 끝까지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 대부분의 제조사는 배터리 없이 본체만도 판매하므로, 배터리를 어느 정도 보유하고 있다면 기계만 추가할 수도 있다. 타 제조사의 배터리를 사용할 수 있는 어댑터도 어렵지 않게 구할 수 있지만, 제조사에서 공식적으로 지원하는 것은 아니다.
각 제조사 브랜드별로 특유의 컬러와 디자인이 있다. 포터블 전동공구는 항상 옆에 두고 끊임없이 사용하게 되므로, 브랜드 특유의 색깔과 특징을 신중히 살펴보고 끝내 마음에 드는 것을 골라야 후회하지 않을 것이다. 제조사에 따라 통일된 규격의 플라스틱 공구박스를 기본으로 제공하는 경우도 많아 이 또한 사 모으는 재미를 준다. 직쏘, 원형톱, 트리머, 라우터, 해머드릴, 임팩드라이버 등 공구함을 채워가다 보면 새로운 가공 영역이나 방식을 해금해 나가는 즐거움도 느낄 수 있다. 일례로 나는 최근에 구매한 10.8볼트 소형 그라인더 덕분에 지인의 산속 양봉장 입구에 튀어나온 금속봉을 손쉽게 절단해 줄 수 있었다. 기계를 옮기거나 전원을 연결할 필요조차 없이, 작업시간은 채 1분도 걸리지 않았다.
더 큰 기계들
정해진 장소에 설치해놓고 사용하는 대형 기계들도 있다. 일반적으로 목공방에서 가장 중심이 되는 기계는 테이블쏘일 것이다. 넓은 정반에 원형의 톱날이 아래에서 올라와 판재나 각재를 직선으로 재단한다. 사용량이 많을 것이므로 작업실 레이아웃을 고민할 때 가장 좋은 자리에 먼저 놓는다. 기계를 배치할 때는 단순히 기계 덩치만큼의 면적뿐 아니라, 부재가 가공 과정에서 움직일 수 있는 공간을 필수적으로 확보해야 한다. 이렇게 큰 기계들은 널리 사용하는 220볼트가 아닌 380볼트 전원을 주로 사용한다. 힘도, 소리도 굉장하다.
제재목을 다루는 공방, 소위 원목가구 공방에는 수압대패와 자동대패가 필수다. 제재목으로 가구를 만들 때는 거친 목재의 한 면을 완전한 평면으로 가공하는 것으로부터 작업을 시작한다. 수압대패는 긴 정반에 회전하는 대팻날이 달려 있어서, 그 위를 지나가는 목재의 바닥면을 평평하게 만든다. 목재 자체의 무게에 손으로 지긋하게 누르는 최소한의 힘을 더해 목재를 통과시킨다. 한쪽 면을 평탄화한 다음, 그 면을 기준으로 다음 작업을 이어간다. 자동대패는 나머지 한쪽 면을 기준면과 평행하게 만들어준다. 손대패로는 시간이 아주 오래 걸리고, 평탄성을 장담하기가 힘들다.
대형 목공기계들은 소음과 함께 엄청난 분진을 만들어낸다. 분진은 작업자의 건강과 기계의 성능에 해를 끼친다. 각 기계에는 배관이 연결되어 있어서 작동할 때 발생하는 톱밥을 집진기로 빨아들이는데, 청소기의 거대화된 버전이라고 할 수 있다. 모든 기계는 작동성능을 보장하기 위해 부지런히 관리해 주어야 한다. 제대로 된 집진은 물론, 사용 전후 먼지를 털고, 날 상태를 점검하고, 녹슬지 않게 닦고, 구동부를 윤활하는 등 끊임없는 보살핌이 필요하다.
연필을 깎는 일
목공을 한 문장으로 요약하자면 '도구로 나무를 깎아서 원하는 모양을 만드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연필을 깎아본 게 언제였을까. 작은 글씨를 쓰기 위해 끝을 뾰족하게 만들기도 하고, 그림에 명암을 표현하기 위해 심을 뭉툭하고 길게 드러내기도 한다. 나무를 깎아 의도한 결과물을 만들어 내는, 우리가 접한 최초의 목공인 셈이다.
연필도 자주 깎을수록 능숙해진다. 연필을 깎는 동안에는 나도 모르게 집중하게 된다. 연필을 깎는 칼이 공방에서 사용하는 끌이나 톱과 같은 것이라면, 외날이 달린 휴대용 연필깎이는 대패 정도로 비유할 수 있겠다. 연필 끝을 집어넣고 손잡이를 돌리거나 모터로 작동하는 자동 연필깎이는 목공기계의 보급이라고 생각하면 될까? 어떤 도구를 사용하든 나무를 끊임없이 다듬는 것은 나에게 즐거운 행위이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나무를 깎다 보면 나(subject)는 먼저 사라지고 행위(verb)만 남는 순간이 온다. 도를 닦아 물아일체에 이르는 과정과도 유사하게 느껴진다.
이렇듯 한 자루의 연필을 깎는 것은 그 자체로도 오락적이고, 예술적이며, 만족감을 준다. 깔끔하게 깎은 연필을 전등에 비춰 보면 황홀한 기분조차 든다. 그러나 그것이 나에게 더욱 의미 있는 이유는, 연필을 뾰족하게 깎아내서 흑연을 드러내는 것이 행위의 최종 목표가 아니기 때문이다. 내가 만드는 가구의 최종 목표는 누군가가 사용하는 것이듯, 이 연필의 목표는 뭔가를 쓰거나 그려가는 것이다. 장편 소설이든, 오늘 저녁 찬거리 쇼핑리스트이든, 가구의 도면이든, 부재에 치수를 표시한 선이든 간에 크거나 사소한 의미를 끊임없이 끄적여 낸다. 내가 만든 의자가 생각처럼 누군가에게 거창한 안식을 주지는 못할 수 있다. 하지만 어딘가에서 화분 받침으로 쓰이거나 바람에 문이 닫히지 않게 받치고 있다면 그것도 충분히 멋진 일이다. 어설픈 목수라도 이런 멋진 일을 할 수 있게 도와주는 소중한 공구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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