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방운영④ 규모의 제약
가구의 크기를 결정하는 요인은 제작자나 의뢰인의 순수한 의도만이 아니다. 여기에는 여러 가지 현실적인 조건이 따라붙는다. 가구가 놓일 공간의 면적, 시중에서 구할 수 있는 자재의 규격, 운송수단의 적재 능력, 제작자의 체력과 기술적 역량 등이 그 예이다. 주문가구를 제작할 때, 의뢰인이 일반적인 가구 규격을 의식하지 않은 채 비현실적인 크기를 원하는 경우가 있다. 무작정 요청에 충실하게 만들기보다는 의도에 대해 충분한 대화를 나누고, 필요하다면 조정이나 대안을 제시하는 것이 세심한 제작자의 역할이다.
사이즈 정하기
주문제작 가구의 크기를 결정하는 요인은 의외로 제작자나 의뢰인의 순수한 의도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여기에는 여러 가지 현실적인 조건이 따라붙는다. 가구가 놓일 공간의 면적은 기본이고, 시중에서 구할 수 있는 자재의 규격과 운송수단의 적재 능력도 중요한 변수다. 아쉽게도 제작자의 체력과 기술적 역량 역시 상당한 영향을 미친다. 이는 인력과 자원이 부족한 소규모 공방에서 더욱 두드러진다.
프로젝트의 필요에 따라 차이가 있겠지만, 1인 공방에서는 보통 혼자서 전체 제작 과정을 도맡아 진행하게 된다. 재료를 구매해서 실어오고, 이것을 자르고 조립하고, 마감한 뒤 배송까지 모두 한 명이 해결한다. 의자 같은 경우는 비교적 수월한 작업이다. 의자 하나쯤 혼자 옮기지 못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지속적으로 큰 하중을 버텨야 하므로 설계 단계에서부터 손이 많이 가기는 하지만, 혼자 제작한다는 측면에서는 대체로 쉽게 다룰 수 있는 품목이다. 일단은 가볍고, 작업대 위에 너끈히 올라가고도 남는다. 면적이 넓지 않아 마감 작업을 하기도 편하다. 겹쳐 쌓으면 보관이나 배송할 때 부피를 줄이기도 용이하다.
여기서 덩치가 조금씩 커지면 난이도가 올라간다. 하드우드로 견고하게 만든 책상이나 테이블은 혼자서 들기조차 힘들다. 그나마 작업대 위에 올려둔 상태에서 내가 여기저기 움직여가며 작업하면 그리 어렵지 않게 조립과 마감을 마칠 수 있다. 넓적한 상판이 가장 중요한 부분이라서, 이를 펼쳐놓고 작업하기도 상대적으로 수월하다. 상판과 프레임을 따로 작업한 뒤 최종 결합하면 연결부위나 상판 뒷면까지 깔끔하게 마감할 수 있다.
서랍장처럼 그렇게 크지 않아 보이는 것들도 여러 개의 박스가 겹쳐있는 구조이기에 상당히 무겁다. 이런 가구들은 바닥이나 내부를 마감할 때 진땀을 뺀다. 거실장처럼 부피가 큰 것들은 여러 부분으로 나누어 제작한 뒤, 설치 장소에서 바닥이나 벽과 수평을 맞춰 조립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무작정 한 덩어리로 만들어버린다면 작업 과정에서 다루기 힘들 뿐 아니라, 목재의 변형에도 대처하기 힘들다. 내 키를 훌쩍 넘는 큰 수납장을 한 덩어리로 만드는 것은 불가능하지는 않지만 웬만해서는 미루고 싶은 작업이다. 특히 제대로 된 마감을 적용해야 할 때는 더욱 그렇다. 이런 종류의 가구는 철저한 계획에 따라 바닥이나 안쪽면을 미리 마감하고, 윗부분 작업에는 사다리를 사용하고, 고하중 바퀴가 달린 플랫폼에 올려놓고 이리저리 돌려가며 작업한다. 배송할 때 문짝이나 서랍을 분리해서 빼두면 한두 사람이 안전하게 옮길 수 있는 무게가 된다.
가용 자원의 한계
재료의 크기도 중요하다. 비규격인 우드슬랩 등을 제외하면, 시중에 주로 유통되는 제재목 중 가장 긴 것은 12자, 3.6미터 정도다. 두께는 1인치에서 3인치 사이가 일반적이다. 여기서 양 끝부분을 잘라내고 대패작업으로 표면을 평탄화하면, 사용 가능한 부분의 크기는 훌쩍 줄어든다. 판재의 표준 규격은 가로 1.2미터에 세로 2.4미터가량이다. 특정 종류는 이보다 작은 것도 있다. 물류 운송에 활발히 사용되는 1톤 화물차의 적재함 크기를 생각하면, 이보다 큰 자재는 구하기 힘들 것이다. 따라서 이 크기를 초과하는 가구를 만든다면 두 장 이상을 이어 붙이는 수밖에 없다. 겉으로 드러나는 이음매 없이 만들려거든 자재 규격 내에서 설계해야 한다.
조립을 할 때는 접착제가 완전히 경화될 때까지 부재들을 단단히 고정하기 위해 클램프를 사용한다. 그러므로 공방에서 보유한 클램프의 최대 길이와 수량을 고려하여 작업을 계획해야 한다. 가구를 만들 때 클램프는 생각보다 훨씬 많이 필요하다. 작은 소품 종류라도 한꺼번에 많이 만들다 보면 조립 단계에서 클램프가 부족하기 일쑤다. 클램프는 원목가구 공방의 주요 제작 역량 중 하나이며, 보유 현황에 따라 한 번에 만들 수 있는 가구의 수량과 크기가 달라진다. 제작자는 공방의 작업 역량을 항상 객관적으로 파악하고 있어야 한다.
배송이 가능한가
주문제작 가구의 사이즈를 정할 때 현실적으로 가장 중요한 조건이 있다. 배송지에서 엘리베이터를 사용할 수 있는지, 가구가 현관문과 방문을 통과할 수 있는지 여부다. 근소한 차이로 문을 지나가지 못한다는 것을 현장에서 깨달았을 때의 절망감은 이루 말할 수 없으리라. 그럴 때는 가구를 세우거나 뒤집는 등 모든 방법을 동원한다. 그래도 안되면 출입구의 문짝을 분리해서 공간을 확보하기도 한다. 그렇기에 현장 실측을 할 때는 어떻게 배송해서 설치까지 완료할 것인지에 대한 사전 검토가 반드시 필요하다.
최후의 수단으로 사다리차를 부르는 방법도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시간 맞춰 사다리차를 예약하고 추가 비용을 부담하는 것보다, 가구를 몇 부분으로 나누어 제작한 뒤 현장에서 조립하거나 처음 계획했던 사이즈를 약간 줄이는 방안을 선호한다.
최근에 상당한 크기의 외부 설치물을 제작한 적이 있다. 오두막 골조 형태의 대형 구조물이었는데, 연결부를 꼼꼼하게 마감하기 위해 작업실에서 완성한 뒤 그대로 옮겨 설치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1차 조립을 끝내고 나서야, 이것이 트럭 적재함 가로폭을 손가락 한 마디정도 벗어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중간에 의뢰인의 요청으로 규격이 약간 변경되었는데, 그때 다시 한번 확인하는 것을 누락한 탓이다. 이미 자정 가까이 되는 시간이었고 접착제는 굳어가고 있었다. 이럴 때는 망연자실할 겨를도 없다. 세상에 대한 분노와 자책, 신세 한탄을 속성으로 마무리하고 잽싸게 분해 작업을 시작했다. 면을 다시 정리하고, 트럭에 실을 수 있도록 조립식으로 구조를 변경했다.
제작까지 이르지 않더라도 의뢰 단계에서 이런 일은 드물지 않게 일어난다. 일반적인 가구 규격이나 인체공학적 비율을 의식하지 않은 상태에서 흔치 않은 사이즈를 말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특히 일반적인 품목이 아닐 경우 더 그렇다. 심지어 사소한 것에 집착하는 성향의 제작자조차도 이런 실수의 예외가 되지는 않는다는 것을 앞서 언급한 사례에서 확인할 수 있다. 평소 자주 접하는 부피나 무게감을 벗어난 제작물에 대해서는 더욱 세심하게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이와 같은 이유로, 제작 역량을 과시하기 위해 의뢰인이 요청한 생소한 규격을 무리하게 구현할 필요는 없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다. 생각보다 크네요, 같은 말을 배송 직후에 듣고 서로 말을 잇지 못하는 상황을 연출하고 싶은 게 아니라면 말이다. 의뢰인이 특정 규격을 원하는 이유에 대해 충분히 대화를 나누고, 필요하다면 조정이나 대안을 제시하는 것이 세심한 제작자의 역할이다. 따뜻한 아이스 아메리카노가 누군가의 이상적인 취향일 수 있다는 것은 이해하되, 굳이 세상의 물리법칙에 혼돈을 가져오려 노력할 필요는 없을 테니까.
작업공간의 제약
내 작업실은 기계실과 조립실이 분리되어 있지 않은 통짜 구조이다. 천장이 높아 벽을 세워서 공간을 나눌 수 없다. 여기에 커다란 기계들이 여기저기 놓여 있다. 각 기계의 가동범위까지 포함하면 남는 곳 없이 꽉 들어찬다. 작업실은 늘 복작거린다. 나는 그때그때 작업에 쓰이는 공간을 확보할 수 있도록, 메인 작업대와 일부 기계들에 고하중 바퀴를 달아놓고 필요에 따라 이동시킬 수 있게 해 두었다.
이 구조에서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마감 작업이다. 마감 중에 먼지가 유입되거나, 다른 작업을 하다 완성된 제작물이 손상되는 사태가 일어나면 곤란하다. 특히 오일류 마감은 완전건조에 시간이 오래 걸리는데다, 도포하고 닦아내고 건조하는 작업을 수차례 반복해야 하므로 별도의 공간이 절실하다. 기계작업을 하면 아무리 집진에 신경 써도 톱밥이나 부유 먼지가 생길 수밖에 없기에, 공간을 나눌 수 없다면 제작 일정이라도 잘 나누어 분리해야 한다.
마감작업을 한 완성품이나 부재들을 건조하기 위해 늘어놓으면 공방은 발 디딜 틈 없이 가득 찬다. 제작물의 크기에 따라 작업대나 기계를 밀어 공간을 확보해야 할 때도 있고, 수직공간을 활용할 수 있도록 건조용 선반을 급히 만들어 쓰기도 한다. 결국, 작업 공간의 크기는 만들어낼 수 있는 가구의 크기나 수량을 결정짓는 마지막 중요한 요소가 된다.
원룸과 작업실
대학교에 들어가면서 서울 생활을 시작했다. 학생 시절에는 기숙사와 원룸을 전전했다. 침대 하나, 책상 하나 옆에 바로 싱크대가 딸린 그런 방이다. 그때는 베란다나 투룸까지는 언감생심, 주방과 침실만이라도 분리된 1.5룸에 사는 것이 꿈이었다. 졸업 후 회사에 들어가고 결혼을 하기 직전까지 분리형 원룸의 소망은 결국 이루지 못한 채 자취생활을 마무리했다.
한 칸짜리 좁은 방에 함께 기거했던 여러 가지 불편들이 간혹 생각난다. 친구가 놀러 오면 빨래건조대를 접어야만 했다거나, 밥을 먹기 위해서는 책상 정리부터 하던 기억들이다. 이 번거로움들은 한구석에 아무리 잘 수납해 두어도 어느새 삐져나와 좁은 방을 어지럽혔다. 불편한 것인지도 모르고 내내 잘 지내다가도, 한 번 눈에 거슬리기 시작하는 순간 성가신 더부살이가 되어버린다. 이제 와서 돌아보면 집과 방이 커지는 순간 자연스레 사라져 눈에 띄지 않는 것들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그 순간은 내가 원한다고 불러올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지금의 작업실은 1년에 한 번 임대료를 납부한다. 임대료를 1년 단위의 연세로 지불하는 것은 제주도의 특징이다. 한 번 납부하면 당분간은 신경 쓰지 않아도 되기에 마음이 편하다. 하지만 미리 준비하지 않으면 한 번에 큰 금액을 내야 하므로 날짜가 다가오면 부담스럽기도 하다. 올해부터는 임대료를 조금 올려 받겠다고 했다. 일 년 치 임대료를 송금하고서는 생각한다. 다음 계약일이 올 때쯤엔 더 넓은 공방으로 이동할 수 있을까? 그때는 기계실과 마감실을 분리할 수 있을까? 이 정도 나이가 되었으면 좀 더 거창한 고민을 하고 있을 줄 알았는데 오래 전의 어린 나와 고민의 종류가 별반 다르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