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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덕호 Sep 19. 2024

작품과 상품, 무엇을 만들어 볼까

공방운영⑤ 최저시급 목수

상업공방에서는 제작기간이 오래 걸릴수록 투입된 노동의 가치가 줄어들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보기에 어딘가 아쉬운 가구를 내놓는 것은 많이 부끄러운 일이다. 나는 설계나 제작 공정 최적화에 상당한 시간을 할애하는데, 한계가 명확한 나 하나의 노동력을 최대한 효율적으로 사용하기 위해서이다. 어디까지 하고, 어디서부터 중단할 것인지는 늘 고민스럽다. 흡족하지 않은 상태로 작업을 종료하는 것은 영 마뜩하지 않은 일이지만, 언제까지 매달려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납기는 생명, 품질은 자존심


제대로 된 가구를 만드는 일은 많은 시간을 필요로 한다. 하지만 상품화된 가구를 판매하는 공방에서는, 제작기간이 오래 걸릴수록 그에 들인 노동의 상업적 가치가 줄어들 수밖에 없다. 공방 초창기에는 마치 대단한 작품이라도 만들어낼 듯, 금 하나 긋고 끌질 한 번 하는데도 온 힘을 쏟았다. 그러나 순수 작업시간만 따져도 최저시급에 훨씬 못 미친다는 걸 깨달으면서 이 마음가짐은 오래가지 못했다. 시간과 비용, 그리고 수익의 상관관계가 그려내는 난해한 곡선들은 어디서 만나는 걸까. 그렇다고 해서 내가 보기에 어딘가 아쉬운 가구를 내놓는 것은 많이 부끄러운 일이다.  


가구는 제작자의 노력에 대체로 정직하게 응답한다. 시간을 많이 들일수록 결과물의 품질이 어느 정도까지는 비례해서 좋아진다. 특히 세심한 마감작업은 전체적인 완성도를 좌우한다. 하지만 이 과정에 비용이나 수익과 같은 현실적인 요소가 개입한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상업 가구를 만들 때는 어디까지 디테일을 유지하고, 어느 선에서 중단할지가 가장 고민되는 지점이다. 완성도를 높인 만큼 합당한 판매가를 책정할 수 있다면 문제는 해결되지만, 유명 작가의 작품이 아닌 이상 이것은 실질적으로 어렵다. 나에게 제작을 의뢰하는 사람들은 합리적인 금액에 실용성을 갖춘 맞춤 가구를 원하거나, 평소보다 조금 더 투자해서 마음에 드는 원목가구를 만들려는 경우가 많다.


어느 정도 완성도를 가진 가구에 세부적인 디테일은 추가적인 가치를 부여한다.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부위에도 나사못 대신 장부결합을 사용하거나, 뒷면이나 바닥에도 앞부분과 동일한 마감 방식을 적용할 수 있다. 하지만 모두가 이를 알아봐 주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공들인 가구보다 후딱 만든 가구가 더 좋은 반응을 얻을 때도 있다. 배송을 마치고 구매자에게 기술적으로 어려운 부분이나 신경 써서 넣은 숨은 디테일을 수줍게 설명하다 보면, 이 가구가 생각보다 비싼 이유를 구태여 해명하는 것 같은 어색함이 느껴지기도 한다.


어느 공장 벽면에 플래카드로 붙어있을 법한 '납기는 생명이고 품질은 자존심'이라는 문구는 제조업계의 격언처럼 전해져 내려온다. 납기와 품질 둘 다 중요하다는 뜻이지만, 상업공방에서는 어쩔 수 없이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상황이 종종 발생한다. 심정적으로 나는 품질을 위해 명예로운 죽음도 불사하겠다는 편이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주문자의 의중이 이 선택을 좌우하므로 내 마음대로 죽을래야 죽을 수도 없는 몸이다. 내 가구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의뢰인의 매장 오픈을 미룰 수는 없는 노릇이기 때문이다. 고백하건대, 다행인지 모르겠지만 이제껏 나에게 가구 제작을 맡긴 이들 중 나처럼 까탈스럽거나 사소한 완성도에 집착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리하여 나는 시큰거리는 자존심에 몰래 반창고를 붙여갈지언정 여전히 잘 살아가고 있다. 


비가 많이 오면 배송을 미루는 게 낫다




어떻게 작업할 것인가


원목 테이블의 상판을 하부 프레임과 결합할 때는 수축팽창에 대비해야 한다. 전용 철물을 사용하면 간편하고 효과적이다. 여기서 지극히 정성을 들인다면, 같은 수종의 나무로 슬롯 모양의 홀이 가공된 버튼을 만들어 결합부에 적용할 수 있다. 들이는 품에 비해 효과적이라고 말하기는 힘들다. 하지만 더 높은 금액을 받을 수 있는 훌륭한 이유쯤은 된다. 단순한 철물 대신 같은 재질의 나무를 세심하게 가공해서 연결하는 것은 구매자도 충분히 수긍할만한 가격 상승 요소이다. 물론 수긍하는 것과 구매로 이어지는 것은 별개의 문제이고, 이런 디테일은 테이블 하부에 숨어 있기에 다시 들여다보며 흐뭇할 일이 드문 것이 현실이다.


합판으로 작은 가구를 만들 때 타카나 나사못을 사용하면 손쉽게 조립할 수 있다. 그러나 나사못 없이 짜맞춤 방식으로 제작하면 못자국이 남지 않아 깔끔하고, 견고한 결과물을 얻을 수 있어 많은 이들이 선호한다. 반면에 단단하게 조립만 되어 있다면 연결방식 따위는 중요하지 않다고 여기는 사람들도 있다. 어떤 사람들을 대상으로 제품을 만들지는 제작자보다 상업공방의 운영자 입장에서 결정할 문제에 더 가깝다. 다행히도 1인 공방에서 내가 만들어낼 수 있는 가구의 수량은 지극히 제한적이다. 굳이 대다수를 타깃으로 삼을 필요가 없으므로, 제작자의 입장에서 선택권 지분을 조금이나마 더 확보할 수 있다.


나는 설계나 제작 공정 최적화에 상당한 시간을 할애한다. 책상에서 일하는 시간을 늘리고 직접 몸을 쓰는 제작 시간은 최소화하려는 속셈이다. 전체 작업시간은 늘어나지만 물리적인 체력 소모는 덜하다. 동일한 제품을 여러 개 만들 때는 오히려 시간을 크게 절약할 수도 있기도 하다. 하지만 나의 공방은 각기 다른 맞춤형 가구 주문이 대부분이다. 한 점의 주문 가구를 제작할 때는 일반적인 경우보다 훨씬 더 많은 시간이 소요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방식을 고수한다. 한계가 명확한 1인분의 체력을 최대한 효율적으로 사용해야만 한다.  

여기저기 늘어놓기 바빴던 초창기 작업




얼마에 팔 수 있을까


나는 비싼 가구용 부품들을 좋아한다. 고급 브랜드의 하드웨어는 대개 우아하고 견고한 데다, 의도한 기능을 부드럽게 잘 수행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구매자들에게는 일반 바퀴 가격의 서너 배를 훌쩍 넘는 고급 바퀴가 되려 마이너스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이런 고가의 부품들은 가구의 가격을 불필요하게 높이거나, 잠재 고객의 구매 의욕을 이른 단계에서 차단해 버릴 수 있다. 그래서 나는 적정 수준의 바퀴로 기본 견적을 전달하고, 더 경제적인 옵션과 고급 옵션을 따로 제안하고는 한다. 깔끔한 마감이나 내구성, 부드러운 회전과 견고한 브레이크 등 고급 바퀴의 장점은 충분히 매력적이지만, 대다수의 구매자는 결국 기본으로 제시한 제품을 선택하는 경향이 있다. 그래, 적당한 디자인의 바퀴가 잘 굴러가기만 하면 된다는 게 맞는 말이기는 하다. 


합판 가구를 만들 때 도면을 잘 배치하면 상당한 양의 자재를 절약할 수 있다. 테트리스 게임을 하듯 부품들을 빈틈없이 채워 넣어, 버려지는 부분을 줄이는 것이다. 하지만 합판에도 분명 나무의 결이 드러나 있다. 제재목이나 집성목에서 나뭇결의 방향을 맞춰주는 것은 가구의 변형을 방지하는 중요한 설계 요소이지만, 수축팽창이 거의 없는 합판에서는 영향을 거의 미치지 않는다. 그러나 나는 교과서적 관점에서 올바른 결의 방향을 임의로 바꿔버리는 것이 심리적으로 영 힘들게 느껴진다. 거기다 어떤 때는 이것이 가구를 제작하는 사람만의 과한 집착일 수도 있겠다 싶어 더 괴롭기도 하다.


같은 종류의 마감제라도 제조사에 따라 성향이 다르고, 같은 제조사라도 제품에 따라 성능 차이가 있다. 당연한 소리지만 같은 종류의 마감제라면 고가의 제품이 친환경 등급이나 작업성 측면에서 대체로 우수하다. 발림성, 평활도, 광택의 느낌 등 제품 라벨에 수치로 표시되지 않는 작업성은 민감하게 구분하기는 힘들지만, 결과물에 분명한 영향을 미친다. 특히 넓은 면이 중심이 되는 합판가구에서는 마감제 소모량이 상당하기에 제품 선택에 따른 금액 차이가 생각보다 클 수 있다. 약간의 건강염려증까지 가진 나는 유아용 제품에 사용 가능하다고 인증받은 고급 마감제를 선호하기에 재료비의 원가 비중은 더욱 높아진다. 


수공구를 사용하는 작업은 재미있지만 시간이 오래 걸린다




만든 사람에게는 보인다


나뭇결의 방향, 제작 시점의 온도와 습도, 나무가 제재된 위치에 따른 결의 방향성 등 어지간한 구매자는 신경 쓰지 않을 이 모든 것이 소심한 제작자를 머리 아프게 한다. 조명 아래 특정 각도에서만 보이는 표면의 미세한 사포 자국은 만든 사람에게는 허깨비처럼 겹쳐 보이기에, 완전히 없앨 때까지 끊임없이 괴롭다. 


원목가구는 빈틈없이 딱 들어맞게 설계하면 도리어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경험을 갖춘 제작자는 수축팽창이나 사용성을 감안한 의도적인 오차를 넣는데, 이때도 겉으로 드러나는 어색함 없이 자연스러워 보이도록 시각적인 트릭이나 잘 고안된 디자인을 적용해야 한다. '하나의 문이 닫히면 다른 문이 열린다'는 말은 언제나 기회가 주어진다는 명언이지만 목수에게는 설계의 실패를 의미한다. 기계적인 설계로 조금의 여유도 없이 딱 들어맞는 서랍장을 만든다면, 서랍 한 개를 닫을 때 내부 공기가 빠져나갈 곳이 없어 다른 서랍이 삐죽 튀어나와버릴 것이다. 


겨울이 되면, 나는 추위에 떨더라도 접착제는 난로를 쬐게 한다. 작업실을 비울 때도 접착제와 마감제를 보관하는 곳은 라디에이터를 항시 틀어놓고 온도를 유지해 준다. 한 번 얼었다 녹은 접착제는 기능을 상실하기 때문이다. 일단 붙을 수는 있으나 시간이 지나면 접착 부위가 뚝 떨어져 버릴 수 있다. 바니쉬로 마감할 때 작업공간의 습도가 높으면 건조 뒤 투명도가 떨어지기도 한다. 에어컨이 없는 작업실이지만 여름에도 문을 닫고, 필요하면 제습기와 더불어 등유 난로까지 잠시 가동해서 습도를 조절한다. 


온라인에서 판매하는 가구의 제품 설명 페이지를 보면 환불이 불가능한 사유에 대해 긴 주의사항이 붙어 있는 것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합판가구의 예를 들어 보자. 합판에는 옹이 자국을 감추는 패치가 존재하고, 측면에 구멍처럼 비어있는 부분이 있거나, 재단면의 나뭇결이 매끄럽지 않을 수 있다는 등의 설명들이 보인다. 합판이라는 소재의 특성이라고 하는데 이것은 맞는 말이기도 하고 틀린 말이기도 하다. 정확히 말한다면 '소비자가 납득할 수 있는 판매가를 유지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설정한 품질의 하한선' 정도로 고칠 수 있겠다. 


물론 패치나 옹이가 있는 면을 피해서 깨끗한 외관의 부품만을 잘라낼 수 있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시간이 훨씬 더 걸릴 뿐 아니라, 사용하는 부분보다 버리는 부분이 더 많을 것이다. 측면의 구멍은 비슷한 색상의 필러를 채워 막을 수 있다. 같은 색상의 나무 조각을 구멍의 모양에 맞게 세부가공해서 끼워 넣으면 더 자연스럽게 감춰진다. 절단면의 나뭇결이 거칠게 일어나는 현상은 톱날이 지나갈 자리에 미리 마스킹 테이프를 꼼꼼히 다 붙여놓으면 확실히 덜하다. 하지만 이걸 어느 세월에 다 붙이고 뗄 것인가? 결국 시간과 비용의 문제다. 결정적으로, 이 모든 것들이 다 처리된 완벽한 합판가구라 해도 몇백 만원씩 한다면 흔쾌히 살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합판가구 단면 마감




어디에서 멈출 것인가


목재의 표면을 매끄럽게 만드는 사포에는 번호가 붙어 있다. 사포의 거친 정도를 숫자로 표시한 것인데, 높은 숫자일수록 입자가 작고 조밀해서 부드러운 면을 만든다. 사포는 낮은 번호부터 차례대로 숫자를 높여 가며 사용한다. 목재를 재단할 때 생긴 톱 자국이나 탄 자국은 거친 80번 사포로 없애주고, 120번, 220번, 320번 등 더 고운 사포를 사용해 순차적으로 다듬는다. 중간을 뛰어넘어 한꺼번에 입도를 올리면 거친 표면이 제대로 정리되지 않으므로 서두르면 안 된다. 그런데 400번, 600번, 800번을 거쳐 계속 이어지는 숫자들 중 어디까지 이르러야 아쉬움이 없을까?


마감작업을 할 때는 오일이나 바니쉬를 수차례 바른다. 어느 지점까지는 얇게 여러 번 반복할수록 표면이 더욱 고와지고 보호력은 상승한다. 한 번 더 할까, 생각하는 순간 작업 기간은 짧게는 반나절에서 하루 이상 늘어난다. 어디까지 하고, 어디서부터 중단할 것인지는 늘 고민거리다. 아무리 붙들고 있어 봤자 제작에 걸린 시간보다 가구의 수명은 훨씬 길 것이므로 아쉬움은 오래 남는다. 흡족하지 않은 상태로 작업을 종료하는 것은 영 마뜩하지 않은 일이지만 언제까지 매달려있을 수는 없다. 내 손을 떠나고도 손톱 끝의 거스러미처럼 계속 신경 쓰이겠지만, 익숙해져 무던해질 날도 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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