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단한 나무를 계속해서 깎아내다 보면 제아무리 강한 합금이라도 무뎌지기 마련이다. 무딘 날은 작업자를 알게 모르게 지치게 만든다. 작업이 잘 안 풀릴 때 날을 연마해야 하는 이유가 이것이다. 마음이 급할 때도 침착하게 날을 갈다 보면, 그 행위만으로 차분함을 되찾기도 한다. 목공방에서는 나무가 지닌 정적인 힘과 거대한 목공 기계들의 역동적인 회전이 수시로 충돌한다. 가장 역동적인 움직임과 가장 정적인 성질이 충돌하는 이 지점이 가장 위험한 순간이다.
일이 안 풀릴 때는 날을 연마한다
이상하게 작업이 잘 안 되는 날이 있다. 평소 같았으면 대번에 마무리했을 작업도 왠지 모르게 더 많은 시간을 잡아먹는다. 기계로 나무를 자른 면이 마찰열로 까맣게 그을리거나, 나뭇결이 심하게 들고일어나기도 한다. 딱 들어맞는 장부 하나를 다듬는데도 몇 번을 끼웠다 빼며 고개를 갸우뚱한다. 이유를 알 수 없다. 일진이 사납다는 게 이런 느낌인가? 힘들다고 개 산책을 짧게 끝내서 원한을 산 걸까? 어젯밤 술기운이 아직 남아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무속적이거나 체력적인 이 모든 우려는 날카롭게 연마한 날 끝에서 자취를 감춘다. 무딘 날은 작업자를 알게 모르게 지치게 만드는 범인이다.
작업이 잘 안 풀릴 때 날을 연마하는 것은, 공구를 다루는 작업자들의 정신수양 수단이기도 하다. 전기로 작동하는 습식 그라인더로 빠르게 날을 세울 수도 있지만, 숫돌의 입도를 높여가며 손으로 연마하는 맛에는 비교할 것이 못된다. 단단한 나무를 계속해서 깎아내다 보면 제아무리 강한 합금이라도 무뎌지기 마련이다. 사용하지 않을 때도 관리를 제대로 하지 않으면 녹이 피어오른다. 작업실에 있는 날붙이들을 모조리 꺼내놓은 뒤 깨끗한 물을 떠 와 숫돌에 적시면, 마치 정성을 다해 치성을 드리는 장면이 연상되어 사뭇 진지해진다. 하얀 소복을 입은 이가 달도 없는 밤에 칼을 가는 모습이 뜬금없이 생각나기도 한다. 잘 기억은 나지 않지만 드라마에서는 그 칼로 원한 서린 복수를 하려고 했던 것 같다. 소기의 목적을 정확하게 달성하기 위해서 당장 칼을 들고 뛰어들기보다, 일단 날부터 날카롭게 연마할 생각을 했다는 것은 작업자의 관점에서 참으로 본받을만한 자세다.
일정한 각도를 유지하면서 젖은 숫돌의 표면에 날을 문지른다. 갈려 나온 미세한 입자가 번지면서 특유의 금속 냄새를 풍긴다. 반복되는 움직임 속에서 날은 누그러졌던 광택을 매섭게 되찾는다. 연마를 마친 날에 힘을 주지 않고 종이에 살짝 그어본다. 종이는 서걱거리는 소리와 함께 저항감 없이 반으로 갈라진다. 잘 갈린 날은 커터칼로 지우개를 자르듯 쉽게 나무를 깎아낸다. 이제야 뭔가 잘 풀리는 것 같고 작업에도 속도가 붙는다. 주문이 밀려 있더라도 시간 내어 날을 연마하면, 결국 그 시간 이상을 절약할 수 있다. 마음이 급할 때 침착하게 날을 갈다 보면 그 행위만으로 차분함을 되찾기도 한다.
입도에 따라 색상이 다른 숫돌은 수집욕을 불러온다
윤활이 필요해
기계도 마찬가지다. 목공방에서 가구를 잘 만드는 법은 부하(stress)를 줄이는 과정이라고 요약할 수 있겠다. 나무는 고요하게 움직인다. 정적으로 보이지만 육중한 힘의 흐름을 내포하고 있다. 목공방에서는 이 정적인 힘과 거대한 목공 기계들의 역동적인 회전이 수시로 충돌한다.
작업실에 있는 테이블쏘는 5마력짜리다. 이 강한 힘이 날카로운 톱날을 힘차게 회전시킨다. 두꺼운 나무를 자를 때는 톱날을 조금씩 올려가며 몇 번에 나눠 작업한다. 한 번에 자를 수는 있지만, 톱날과 목재가 닿는 면적이 넓을수록 마찰이 많이 발생하기에 위험도가 증가한다. 부하가 많이 걸리면 마찰열에 의해 나무가 심하게 변형될 수도 있다. 재단면이 타거나, 나무를 켜면서 갈라진 부분이 열에 의해 안쪽으로 오므라들면서 톱날을 꽉 잡아 기계가 멈추기도 한다.
톱날의 상태도 영향을 미친다. 오래 사용한 톱날에는 녹이 스는 것은 물론, 톱밥이나 송진이 굳어 있을 수도 있다. 이런 것들은 톱날을 무디게 만들어 마찰은 더욱 심해진다. 부하의 원인을 꾸준하게 줄여나가는 것이 목공방을 원활하게 굴러가게 하는 기본 원칙이다. 그리스나 엔진오일을 사용해서 기계에 윤활을 하는 것과 같은 원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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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험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위험은 보이지 않는 곳으로부터 온다. 기계의 매뉴얼과 안전수칙을 잘 따르면 사고가 발생할 위험은 큰 폭으로 낮아지지만, 인간은 실수를 반복한다. 정반 위로 빼꼼히 머리를 내민 테이블쏘의 톱날은 수면 위의 상어 지느러미처럼 금방이라도 내 손가락을 잡아먹을 듯하다. 목공방에서는 펄럭거리는 옷의 장식이나 후드의 끈 같은 것도 위험요소가 된다. 섬유가 회전하는 날에 걸려 끌려들어 가는 순간 끔찍한 결과를 가져온다. 같은 이유로, 테이블쏘나 기타 회전 공구로 작업할 때 장갑을 끼는 것은 금기시된다. 항상 날과 내 손의 위치, 힘의 방향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작업해야 한다.
공방에서 작업할 때는 모든 감각을 활용하지만, 특히 위험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는 것은 각종 소리와 냄새이다. 사실 눈으로 확인했을 때는 이미 사고가 일어난 뒤인 경우가 많다. 기계가 작동할 때 나는 소리가 평소와 다르거나, 타는 냄새가 난다면 그것은 어디선가 필요 이상의 부하가 걸리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바로 원인을 찾지 않으면 눈 깜짝할 사이에 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 결을 거스르는 방향으로 나무를 가공할 때도 평소와 다른 소리를 들을 수 있다. 이때는 가공 중인 나무가 뜯기거나 튕겨나갈 수 있으므로 작업방향을 바꿔주는 것이 좋다.
목공방에서 가장 무서운 사고 중 하나는 킥백(kickback)이라는 현상에 의해 일어난다. 킥백은 테이블쏘와 같이 회전운동을 하는 기계에서, 고정된 펜스와 돌아가는 톱날 사이에 낀 나무가 엄청난 속도로 튕겨 나오는 현상을 말한다. 나무가 오갈 곳 없는 상태에서 회전하는 기계의 강한 힘이 살짝 어긋나게 작용하면, 그 힘이 고스란히 나무를 역방향으로 튕겨내 버린다. 톱날은 엄청난 기세로 회전하고, 펜스로 가로막힌 나무는 제 위치를 유지하려 한다. 가장 역동적인 움직임과 가장 정적인 성질이 충돌하는 이 지점이 가장 위험한 순간이다. 게으른 천성과 치열한 노동의 현실이 충돌하는 지금, 나는 위험한 상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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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고와 부상, 위험요소
이러다 사고 한 번 나겠다는 생각은 높은 확률로 현실화된다. 위험한 기계로 가득한 목공방에서는 사고와 부상의 가능성이 늘 존재한다. 기계를 사용할 때는 늘 정신을 집중해야 한다. 여차하는 짧은 순간에 손가락을 날려 먹는 것은 예삿일도 아니다. 부족한 손가락은 오래된 목수의 훈장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하지만 노련한 가구 제작자의 경력은 손가락의 부재보다는 완성된 가구의 존재로 증명하는 게 아무래도 나아 보인다.
지극히 몸을 사리는 소심한 성격에 건강염려증까지 있는 나로서는 작업효율이 떨어지거나 비용에서 손해를 볼지언정, 다행히 아직까지는 병원 방문이 필요한 큰 사건 없이 작업을 지속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크고 작은 위험에 처한 경우도 많다. 공방에서 일어나는 대부분의 사고는 원칙을 고수함으로써 발생 가능성을 현저히 줄일 수 있다. 시간에 쫓겨 그러면 안 되는 걸 알면서도 이번 한 번쯤이야, 라는 생각이 사고를 불러일으킨다.
두 번 연속으로 킥백을 맞은 적이 있다. 나에게 있었던 거의 유일한 사고이다. 주문이 밀려 서둘러 작업을 이어가던 중이었다. 이렇게 작업하면 사고 나도 할 말 없겠군, 이라고 생각하는 순간 재단 중이던 얇은 합판이 휘면서 톱날을 타고 올라가 내 아랫배를 스쳤다. 역시 그렇군, 이라고 생각하며 새 합판으로 다시 작업을 시작하자마자 같은 방식으로 배를 강타당했다. 두 번째 타격지점은 부어오른 상태로 단단하게 굳고 피멍이 들어 한 달 넘게 나를 조롱했다. 그때 사고를 일으키고 뜯겨버린 부재 두 개는 액자로 만들어 눈에 잘 보이는 곳에 걸어두었다.
사소한 통증은 늘 존재한다. 나무 가시가 박히거나 눈에 티끌이 들어가는 것에는 빨리 익숙해져야 한다. 작업 중에는 눈치채지 못하다가 집에 돌아와서 씻고 나면 발견되는 따끔거리는 상처들이 있다. 큰 부상에 대한 두려움은 늘 존재한다. 칼은 예리하게 잘라내지만, 톱날은 원형의 금속판에 달린 수많은 날카로운 이빨들이 부재를 깎아 없애는 원리이다. 톱날에 손가락이 잘린다면 잘 회수해서, 제 시간 안에, 유능한 의사가 요령 있게 접합하더라도 톱날의 두께만큼 손가락은 짧아진다.
큰 기계들의 매뉴얼을 보면 사양이 무시무시하다. 내가 보유한 공방의 기계들은 0.5마력에서 8마력까지 다양하다. 0.5마력짜리 포터블 원형톱과 5마력짜리 산업용 테이블쏘 중 더 위험한 것은 뭘까? 둘 다 약해빠진 인간의 손가락을 잘라내기에는 충분한 힘이다. 살살 잘리면 덜 아플까? 차라리 강한 힘으로 깨끗한 절단면을 만들어내는 것이 나무에게나, 손가락에게나 좋은 일일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