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방운영⑦ 가구를 만드는 일
가구를 만드는 일은 사소하지만 중요하고, 중요하지만 대단하지 않은 일상적 행위이다. 가구를 만들기 위해 나무를 잘라내거나 구멍을 뚫어 서로 연결하는 작업이 오늘 저녁 식탁에 올라갈 채소를 다듬거나 두부를 써는 일과 크게 다를 필요가 없다. 누구나 할 수 있고, 누군가 해야 한다. 그러면서도 나는 가구의 성찬을 정교하게 차려내고 싶은 욕심이 있다. 누구나 필요한 가구를 만들 수 있지만, 아무래도 나는 좀 더 잘 만들고 싶다. 그렇기에 만들고 또 만드는 공방의 나날들은 내게 무척이나 즐겁다.
가구 만드는 게 뭔데?
가구라는 것은 지금 내가 이 글을 쓰고 있는 책상이나, 엉덩이를 대고 앉은 의자와 같이 늘 곁에 두고 사용하는 물건이다. 사소하지만 중요하고, 중요하지만 대단하지 않다. 가구를 만드는 일도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숭고하거나 성스러운 작업이 아니다. 그저 생활에 필요한 물건을 알맞은 재료로, 적합한 공구를 사용해서 만들어내는 과정이다. 막상 쉽지는 않지만 어렵게 생각할 일은 더더욱 아니다.
가구를 만드는 일에 대해 경외심을 가지고 최선을 다하고자 하는 마음에는 변함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가구를 만들기 위해 나무를 잘라내거나 구멍을 뚫어 서로 연결하는 작업이 오늘 저녁 식탁에 올라갈 채소를 다듬거나 두부를 써는 일과 크게 다를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생활 속에서 필요한 물건이 있다면 만들어서 쓰면 된다. 누구나 할 수 있고, 누군가 해야 한다.
굳이 직접 하지 않아도 좋다. 고백하자면, 나도 가구를 사서 쓰기도 한다. 내 집에 있는 가구 대부분은 적당한 가격대의 대량생산 제품들이다. 주문가구를 만들어 팔기도 부족한 시간에, 내가 사용할 가구를 만드는 데 상당한 공을 들인다는 것은 사치스러운 일이다. 집에 온 손님이 이 식탁도 직접 만든 거냐고 눈을 반짝이며 물어볼 때, 서로가 다소 민망한들 어떠랴.
이런 공장제 가구들을 공방에서 똑같이 재현한다고 가정해 보자. 거대 기업의 재료 효율적인 설계, 대량생산과 유통을 통해 설정된 낮은 가격은 소규모 공방에서 흉내조차 내기 힘들다. 재료비만 계산해도 그들의 판매가와 얼추 맞먹을 때도 있다. 이는 달리 말해, 공장에서 만들어내는 가구에 비해 부가적인 가치를 만들어내지 못하면 개인 공방으로서 존재 의미가 없다는 것을 뜻한다.
가구를 만드는 일은 매일 먹는 식사를 준비하는 것과 비슷한 일상적 행위이다. 누구나 배를 채울 수 있는 음식을 만들 수 있다. 때에 따라서는 사 먹는 것이 훨씬 간편하기도 하다. 하지만 좀 더 맛있고 근사한 음식에 도전하고 싶은 순간도 역시 필요하다. 나는 가구의 성찬을 정교하게 차려내고 싶다. 누구나 필요한 가구를 만들 수 있지만, 아무래도 나는 좀 더 잘 만들고 싶다.
교육공방, 체험공방
목공은 넓은 작업실과 시끄러운 기계들이 필요한 거창한 작업이라는 인식이 강하다. 이는 어느 정도 사실이다. 그래서 일반적으로는 접근이 쉽지 않고 거리감마저 느낄 수 있다. 하지만 매력적인 일임은 틀림없다. 나는 더 많은 사람들이 스스로 쓸 가구를 부담 없이 만들어보고, 그 과정에서 재미를 느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이 흥미로운 작업을 나만 혼자 몰래 숨어서 하고 있는 것 같아 종종 아쉽다.
목공 체험이나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할지 고민한 적도 있다. 이 구석까지 사람들이 찾아올지는 모르겠지만, 잘 운영한다면 어느 정도 안정적인 수익원으로 삼을 수도 있을 것이다. 기대수익으로 보자면 주문제작이 낫지만 매달 일정한 수익을 예상할 수 있다는 것은 운영상의 큰 이점이다. 월세나 전기요금 따위의 고정비를 충당한다고 생각하면 편하다. 하지만 현재 공방 운영 구조로는 조금 힘들지 않나 싶어 미루고 있다. 제작 주문은 날을 정하지 않고 들어오고, 약속한 기간 안에 집중해서 마무리해야 한다. 주말에 프로그램을 운영한다면 금요일까지는 하던 작업을 중단하고 정리했다가, 다시 끄집어내는 일을 반복해야 한다.
나 혼자 쓰는 것을 전제로 세팅된 공방 구조를 조금 개선할 필요도 있다. 사람을 기계로부터, 기계를 사람으로부터 보호해야 한다. 내가 상업활동에 사용하는 개인 공구들을 공용으로 두는 것은 상상하기조차 힘들기에, 기본적인 수공구나 전동공구는 몇 벌 추가로 마련해두기도 해야겠다.
창업을 전제로 한 전문가반 교육 프로그램이나, 진지한 목수를 위한 고급과정은 아직 내 역량 밖이라고 느낀다. 지금의 공방은 기계류 구색을 잘 갖추고 있긴 하지만, 작업공간이나 기타 여건 측면에서 내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교육공방의 조건에 크게 못 미친다. 기계와 작업공간을 불편하게 공유하면서 몇 가지 기술을 알려주거나, 세부적인 이론 없이 개인적 경험을 전달하는 수준이어서는 안 된다. 나도 아직 더 배우고, 해보고 싶은 게 많다. 현재로서는 여력이 없는 상황이지만, 언젠가 할 수도 있지 않을까? 목공을 진중하게 경험하고 싶어 모인 사람들이라면 더욱 나눌 말이 많으리라.
누구나 목공인입니다
이따금 공공기관의 의뢰를 받아 목공 프로그램을 운영하기도 한다. 공공기관은 공익적 사업목표 덕분에 일반 상업가구를 만들 때보다 더 재미난 것들을 많이 시도해 볼 수 있다. 도시재생과 관련된 기관에서는 제주도에 있는 창업기업들과 함께 사업장 공간에 들어갈 가구들을 구상하고 만들었다. 다른 곳에서는 활동비를 지원받아, 생활목공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 직접 가구를 만들어보는 프로젝트를 기획해 운영하기도 했다.
참가자 대부분은 목공을 처음 접하는 사람들이다. 머릿속에 떠올린 가구를 그림으로 그리고, 도면을 작성하고, 조립해서 완성하는 일련의 과정을 함께한다. 막연했던 상상을 실제로 구현할 수 있게 구체화하고, 참가자들의 손으로 직접 만들 수 있도록 설계를 단순화한다. 이때 만들어진 작품들은 사무공간에서 쓸 파티션이나 공용테이블도 있었고, 1인 가구의 분리식 책상도 있었다. 모녀가 함께 참가해서 커다란 수납장을 만들어가기도 했다.
나이나 성별을 불문하고 가구를 만드는 것에 대한 관심과 집중도가 대단했기에 나는 살짝 뭉클해졌다. 필요하거나 갖고 싶었던 물건을 각자의 손으로 진지하게 만들어내는 모습은 얼마나 멋진가. 자신만의 가구를 이미 완성해 본 이 훌륭한 목공인들은 나무나 가구를 보는 시각이 예전과는 사뭇 달라졌으리라. 어쩌면 그 뒤로도 더 많은 것들을 만들었거나, 만들어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
공방의 즐거운 나날들
나는 가구 전시장뿐 아니라 카페나 식당 같은 곳에서도 습관처럼 가구를 관찰한다. 테이블이나 의자 아래를 들여다보거나, 손으로 표면을 더듬어본다. 감탄이 나올 정도로 세심하게 잘 마감된 가구도 있고, 예산이 부족했거나 주인이 직접 만들었겠다 싶은 경우도 있다. 어떤 경우가 됐든 열의 있는 제작자라면 한정된 예산, 시간, 역량 안에서 최선의 노력을 다했으리라.
기술적 측면에서 어떻게 만들었을지 파악하지 못할 경우는 없다. 특히 요즘처럼 정보가 풍족하고 기계와 공구가 발전한 경우에는 더더욱 그렇다. 사실, 제작 기술보다는 어떻게 금액을 맞췄을지가 더 궁금한 경우가 많다. 고만고만한 금액대가 분명할 텐데, 혹시 나만 빼고 다른 제작자들은 가구로 막대한 부를 축적하고 있는 걸까? 아마도 그렇진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세한 장점에 비해 어려운 공정을 굳이 추가하거나, 불필요하게 느껴질지도 모르는 디테일에 상당한 시간을 투자했음이 비밀스럽게 드러나는 가구들이 있다.
효율을 중시하는 공장제 가구의 대량생산 체계에서는 제작 과정에서 재미있을만한 부분을 제거해 버리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개인 공방의 제작물에는 그런 요소들을 찾아내는 재미가 있다. 가구의 숨은 디테일에는 만든 이의 편집증적인 성격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나의 작업은 재미있는 일과 돈이 되는 일의 교집합에 머무르지만, 이지선다의 상황에서 재미는 보통 차순위로 밀려난다. 상업공방의 운영자로서 당연한 선택이지만 가구가 좋아 이 일을 선택한 입장에서는 내내 아쉬움이 남는다. 현실적인 어려움을 차치하고 굳이 어렵고 번거로운 작업을 묵묵히 해 나갔을 고집 센 제작자의 흔적을 마주하면, 마음속 깊은 곳으로부터 존경의 박수를 보낼 수밖에 없다.
'1인, 상업, 공방'을 운영하는 데는 여러 가지 제약이나 어려움이 따른다. 대부분의 문제는 '1인'보다 '상업' 부분에서 발생한다. 나의 시간과 비용을 효율적으로 투자해야 하고, 늘 계산기를 두드려 열정마저 분배해야 한다. 일이 밀렸을 때는 공방에 며칠씩 기거하며 제대로 잠도 못 자는 날들도 있다. 그럴 때면 몸도 마음도 지친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아직 가구 만드는 일이 재미있어서 다행이라고 느껴지는 순간이 불쑥불쑥 찾아든다. 그래, 나는 작업실에서 가구를 만들 때 어디에도 없는 안정감을 느끼고, 이 일이 참 마음에 든다. 앞의 단어들은 변해도 끝까지 남아있을 '공방'의 나날들은 즐겁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