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방운영③ 혼자 일하기
1인 상업공방을 운영한다는 것은 내가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임대료나 전기요금 따위를 낼 도리가 없음을 뜻한다. 사업주이자 유일한 직원으로서 기획, 제작, 마케팅, 판매까지 모든 것을 전담해야 한다. 그래도 혼자 일하는 것은 대체로 만족스럽다. 지금 내가 하는 일이 매력적으로 느껴지는 가장 큰 이유는 모든 것이 나의 책임하에 완성된다는 것이다. 전체 의사결정과 문제 대처가 나 하나의 주관과 지식에 의해 이루어진다. 모호한 책임소재를 애써 따져보거나 애꿎은 시스템을 탓하며 변명거릴 찾지 않아도 된다.
게으름을 그리워하며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을 좋아한다. 몇 날 며칠이고 혼자 지루함 없이 가만히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사람들과 함께일 때 나는 대체로 뭔가를 열심히 하고 있기에 천성이 부지런하다고 오인받는 경우는 많았다. 사실 내가 바득바득 움직이는 것은 남몰래 어딘가 처박혀 느긋할 수 있는 순간들을 안정적으로 확보하기 위해서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것이 일반적으로 말하는 부지런함의 발생 원리인지는 모르겠다. 여하튼 내가 아는 성실한 이들이 저마다 홀로 온전히 게으를 순간을 위해 악착같이 일하는 중이라고 상상하면, 한없이 의심스럽던 그들의 근면이 납득이 간다.
직장인 시절에는 여유 부릴 시간이 거의 없었다. 그래도 프로젝트 사이사이 틈이 생기면 조심스레 딴짓에 매진했다. 귀여운 급여를 볼모로 쉴 틈 없이 나를 괴롭히는 회사의 자원을 거리낌 없이 약탈하겠노라, 아르센 뤼팽 같은 대도의 이름을 감히 떠올리기도 했다. 허나 실제로 축내는 데 성공한 것은 드물게 한두 시간 남짓 멍때리거나 웹서핑할 시간 정도였다. 가장 엄한 법으로 형량을 따져본들 이 가련한 직장인은 훈방조치쯤 받을 것이다. 이런 상황인지라 처음 목공에 기웃거릴 무렵에는 느긋한 공방의 일상을 상상하며 기대감을 키우곤 했다. 러시아워를 피해 여유롭게 출근한 뒤 잔잔한 음악, 갓 내린 커피와 함께 작업을 시작하겠지?
하지만 실제로 목공방을 시작한 뒤 이 생각을 고쳐먹기까지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러시아워를 피하는 방법은 늦게 출발하는 것 말고도 하나 더 있다는 것. 빠른 비트가 육체노동을 가속화하고, 커피는 취향 충족보다 각성이 목적이라는 것을 알았다. 1인 상업공방을 운영한다는 것은 내가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면 임대료나 전기요금 따위를 낼 도리가 없다는 뜻이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아도 사업장 앞으로 날아드는 고지서는 차곡차곡 쌓여간다. 태평하게 한 달에 한두 점의 가구를 만든다면 청구 항목의 누적된 숫자를 온전히 소거할 수 없다.
그렇다고 끊임없이 가구만 만들면 해결되는 문제는 아니다. 1인 목공방의 운영자는 기획에서 마케팅, 판매까지 사업 유지에 필요한 모든 것을 전담한다. 제작자, 경영자, 촬영감독, PR, 회계, 영업사원, 배송원 등의 역할을 혼자서 능히 해내야 한다. 나는 이 모든 것을 욕심내서 다 할 수 없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일부 과정을 모른 척 덮어두거나, 어느 정도 기대치를 낮춰야만 제작에 들어가는 힘을 비축할 수 있다. 아, 몸도 마음도 게으를 수 있는 시절은 다 갔다.
혼자 일하는 것이 좋다
일이 몰리면 같이 작업할 사람을 구해야 하나 싶은 때도 있다. 하지만 두 명분 이상의 일손이 항시 필요한 것은 아니기에 공방의 유일한 노동자를 수일에 걸쳐 혹사시킴으로써 그때마다 대처하곤 한다. 어떤 때는 매우 급하면서도 간절하다. 주로 쓰러질뻔한 무거운 가구를 부여잡고 엉성하게 균형을 유지하고 있는 순간이다. 여기를 이렇게 잡았으면 안 되는 거였는데, 후회와 아쉬움이 절실하게 머리를 스친다. 엉거주춤한 채 고뇌하다 아크로바틱한 동작들을 통해 가까스로 안전하게 내려놓는다. 간혹 찾아오는 이런 순간들만 잘 넘기면 혼자 일하는 것은 대체로 만족스럽다. 고립된 상태에서 좀 더 작업에 집중해보고 싶은 마음이 아직은 더 크다.
나는 혼자 일하는 것을 좋아한다. 지금의 일이 나에게 매력적인 가장 큰 이유는 모든 것이 나의 책임하에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의뢰인의 기호나 요구를 반영하여 최종 제작물의 설계와 제작방식을 결정하고, 원하는 날짜 안에 사용 가능한 상태로 완성하는 것이 1인 제작자가 할 일이다. 모호한 취향은 구체화하고, 예산이 부족하면 소재나 제작방식의 변경을 제안한다. 설계를 통해 사용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원목의 변형을 방지하고, 여의치 않다면 사용자에게 미리 충분히 설명한다. 혹시 모를 결함에 적절히 대처하는 것까지 오롯이 나 혼자만의 책임이다. 모호한 책임소재를 애써 따져보거나 상급자의 결재를 받을 필요도 없다. 애꿎은 시스템을 탓하며 변명거릴 찾지 않아도 된다.
모든 의사결정이나 문제 대처가 나 하나의 주관과 지식에 의해 이뤄진다는 것이 부담스러울 수도 있지만, 제작자로서는 거리낄 것이 없는 일이기도 하다. 말 그대로 '나만 잘하면 다 잘 되는' 구조이므로 기술과 경험이 쌓여갈수록 유리하다. 때로 머릿속은 마냥 복잡할지언정 큰 볼륨으로 노동요를 틀어 부스트를 얻거나, 여차하면 바로 드러누울 수도 있는데 뭐 어떤가.
혼자 일하는 것은 어렵다
판재 중 사용이 빈번한 18mm 두께의 자작나무 합판을 옮겨보자. 한 장의 무게가 40kg에 육박한다. 무게 자체만 보면 혼자서 그럭저럭 들어 옮길 만하다. 하지만 가로 1.2미터 세로 2.4미터의 넓적한 모양을 하고 있기에, 암만 봐도 무게중심을 안정적으로 잡고 옮기기엔 벅차다. 들어 올리는 순간 시야도 가려진다. 그 상태에서 공방 여기저기 놓여 있는 각종 기계나 제작 중인 가구들과 부딪치지 않게 요리조리 방향을 바꿔가며 원하는 위치로 이동한다. 재단을 위해 테이블쏘에 올려놓고 나면 스위치는 저 멀리에 있어 다시 합판 아래로 기어들어가야 한다.
판재는 보통 눕힌 상태로 겹쳐서 보관한다. 힘을 고르게 받게 하고 공기와의 접촉면을 최소화해서 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다. 현재 작업실 목재 보관 선반에는 자주 사용하는 자작나무 합판과, 제조사가 다른 네 종류의 라왕합판, 얼마 전 주문제작 후 남은 화이트오크 집성판, 도색이 필요한 작업이 있을 때 간혹 사용하는 고밀도 컬러보드, 언젠가 구매했던 스프러스, 편백나무 집성판 등이 차곡차곡 쌓여 있다. 이상적인 목재 보관 선반이라면 종류와 두께별로 각각 다른 칸이 지정되어 있어야 한다. 하지만 사용하는 판재의 종류는 무척이나 다양한 반면 목재를 보관할 수 있는 공간은 지극히 한정적이다.
가장 절망적인 상황은 내가 당장 사용하려는 판재가 다른 종류의 목재들 저 아래에 깔려 있는 것이다. 위에 쌓여있는 나무들을 한 장씩 다 빼서 세워두었다가, 원하는 판재를 확보한 뒤 다시 빼두었던 것들을 원래 있던 곳에 쌓아놓는다. 좁은 공간에서 목재에 흠집이 나거나, 다른 것들에 흠집을 내지 않게 아등바등하다 보면 그날 사용할 재료를 무사히 꺼내놓는 것만으로도 하루의 체력이 모두 소진되는 느낌이다.
높은 선반에 판재를 올리거나 내릴 때는 번쩍 들어 자연스레 머리로 받치게 된다. 정수리가 비어 가는 압박감이 상당히 좋지 않지만 그 순간에는 신경 쓸 겨를이 없다. 둘 곳이 마땅치 않아 어설프게 세워둔 합판 무더기가 쓰러지면 깔린 채 내일 발견될 수도 있겠다. 기력이 없을 때는 합판 아랫부분을 양 발 위에 올리고 한 걸음씩 걸음마를 떼듯 이동시킨다. 이스터 섬의 원주민들이 거대한 돌을 이렇게 옮겼다지 아마. 바람이 세차게 부는 날 트럭에서 나무를 내릴 때는, 연날리기를 하듯 합판에 매달려 몇 걸음씩 날아가기도 했다.
제작 과정에서도 큰 가구는 혼자 작업하기 버거울 때가 많다. 조립과 마감 단계에서는 가구를 뒤집거나 이리저리 돌려가며 꼼꼼하게 작업해야 하기 때문이다. 완성된 가구를 배송하는 것도 예삿일이 아니다. 출발 몇 시간 전부터 준비해야 한다. 이동 중 흠집이 생기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미리 비닐이나 스펀지로 감싼다. 소형가구는 거뜬하지만 조금이라도 커지면 포장조차 어렵다. 나 혼자 어떻게든 들 수 있는 무게라고 해도, 우격다짐으로 들어 올리는 것과 흠집 없이 조심스레 옮기는 것은 천지 차이다. 그렇기에 1인 공방에서는 바퀴와 지렛대의 위대함을 새삼 깨닫는다. 모아이 석상을 만들거나 피라미드를 쌓는 고대 노동자의 마음으로 경건하게 이들을 대하게 된다.
화물차와 배송
상업공방을 시작한 뒤 획기적이라고 할만한 변화 중 하나는 1톤 화물차를 구매한 것이다. 이로써 좀 더 경쟁력 있는 가격에 목재를 실어오거나 완성된 가구를 직접 납품하는 게 가능해졌다. 배송을 해주는 좀 더 비싼 자재상에서 주문하거나 운송비를 지불하고 화물차를 부르는 선택지도 있지만, 이것은 단지 비용의 문제만은 아니다. 내가 원하는 시간과 일정에 맞게 바로 행동할 수 있다는 게 가장 큰 장점이다.
별도의 화물배송을 사용하면, 화물차를 사용하는 것에 덧붙여 가구를 싣고 내리는 것까지 도와주는 인력이 생긴다. 운송 전문가가 내 가구를 안전하게 실어서 함께 옮겨준다고 생각하면 비용이 아깝지 않다. 하지만 트럭이 생긴 이후에는 거의 혼자 작업한다. 어디를 들어서 밑을 받치고 어느 쪽으로 돌려서 바퀴에 살포시 얹을지, 어디를 잡고 이동한 뒤 적재함에 미리 깔아 둔 스티로폼 패드에 안착시킬지에 대해 세밀한 시뮬레이션을 거친다. 다 완성한 가구를 배송하다 흠집을 만들 수는 없는 노릇이다. 배송 전 조명 아래에 놓고 그럴듯하게 사진이라도 찍어서 홍보용으로 사용하고 싶은데 거의 그러지 못했다. 제작 일정은 대체로 빠듯하고, 특히 배송 당일에는 이 과정에 온 정신을 다 쏟고 낑낑대야 한다. 웬만한 배송에만도 반나절 이상의 에너지가 꼬박 다 들어간다.
그린우드 카빙
꾸역꾸역 배송이 끝나면 작업실로 돌아와 전기트럭에 연결할 전원 코드를 길게 끌어온다. 커넥터를 연결하면 삐빅, 하는 짧은 소리와 함께 충전이 시작된다. 사이드미러를 접고 얌전히 기다리는 트럭은 귀를 젖힌 순하고 거대한 짐승 같다. 적재함에 가구를 고정했던 탄력끈이나, 설치를 위해 가져갔던 공구들을 끄집어낸다. 그때그때 정리해두지 않으면 나중에 더욱 번거로운 일이 생긴다. 한숨 돌린 뒤 여력이 있다면 가벼운 작업부터 다시 시작한다.
무성하게 우거진 공방 앞의 풀들이 바람에 흔들린다. 들판에 소를 끌고 나간 목동이 큰 나무 아래서 머무는 모습을 묘사한 글을 어디선가 읽은 적 있다. 목동들은 목수이기도 하다. 가축을 돌볼 뿐 아니라 자연에서 생활하며 다양한 도구나 생활용품을 나무로 직접 만들어 사용한다. 갓 잘라 건조되지 않은 생목을 그린우드(green wood)라고 하는데, 이것을 칼로 깎아 이것저것 만들곤 한다. 말뚝에 매어놓은 소가 풀을 뜯는 동안 목동은 꺾은 나뭇가지로 지팡이나 스푼 따위를 깎아내고 있었다. 이 장면은 목동에게 여유로운 휴식이었을까, 아니면 풀을 뜯고 돌아가는 길에 저녁으로 먹을 빵을 살 수 있을지 고민하는 시간이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