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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화 카페기행

기억하고 기록하다

by 김태민

아주 추운 날이나 더운 날을 제외하면 거의 매일 산책을 한다. 풀꽃이 가득한 공원을 지나 낡은 골목길을 건너 느긋한 걸음으로 동네 한 바퀴를 돈다. 조금 멀리 있는 동네까지 갈 때도 있다. 안양은 걷기 좋은 길이 정말 많다. 동네마다 고유한 매력과 색감을 품고 있어서 걷는 즐거움이 있다.


만안도서관에서 나와서 냉천로를 따라 걸었다. 푸른 마트 삼거리에서 발걸음을 돌려 문예로로 내려왔다. 양옆으로 늘어서있는 쭉 뻗은 삼나무들이 하늘에 닿을 것 같았다. 우듬지가 파랗게 물드는 모습을 상상했다. 산책을 마치고 나면 꼭 카페에 간다. 단골이었던 문예로 커피가 나간 자리에 KAFE K가 생겼다.


창가 자리에 앉아서 라테를 마셨다. 작은 카페다. 조용하고 한적한 곳이라 가끔씩 들러서 책을 읽었다. 오래 영업했으면 좋겠다. 따뜻한 색감의 벽을 물들이는 노란 조명이 기분 좋은 공간이다. 10-1번 버스가 지나는 문예로 18번 길은 밤산책을 다니는 길이다. 정류장 옆에 있는 커피정기구독은 단골카페다.


원목으로 짠 기다란 테이블에 앉아서 글을 쓰거나 바깥 풍경을 구경한다. 벽에 걸린 커다란 태피스트리가 예뻐서 비슷한 제품을 사다 집에 걸어두고 싶었다. 저녁에 가면 참 좋은 곳이다. 정든 골목 사이로 밤이 내려앉는 모습이 예쁘다. 좋은 카페의 기준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나는 동네의 분위기와 잘 어울리는 카페를 선호한다.


평촌대로를 거쳐 흥안대로를 걷다 보면 카페 에이미의 봄이 나온다. 창 밖으로 따뜻한 불빛이 쏟아져 나오는 모습은 마치 지브리 애니메이션에 나올 것 같다. 나무로 만든 커다란 들창아래 앉을 수 있는 작은 의자가 놓여있다. 옆에 있는 키 작은 화분은 거리를 지나는 사람들을 향해 손인사를 건넨다.


매장에서 로스팅한 리브레 원두로 만든 라떼를 들고 나와서 가게 앞 의자에 앉는다. 저녁에서 밤으로 접어드는 순간을 감상하면서 느긋한 기분을 즐긴다. 가을은 산책이 더 즐거워진다. 아침마다 이슬이 내리는 백로를 지나면 하루 종일 선선한 바람이 분다. 사람들로 붐비는 주말을 피해서 인덕원에 간다.


점심시간이 지난 평일 오후는 무척 여유롭다. 학의천을 따라 걸으면서 광합성을 한다. 햇살을 충분히 쬔 다음 계단을 타고 올라가서 관양로를 걷는다. 사거리에서 왼쪽으로 돌면 레이커피바가 나온다. 밀크캐러멜 색의 나무 문을 열고 들어가면 차분한 색감이 감도는 실내가 눈에 들어온다.


낮은 채도의 색온도가 마음을 편안하게 만들어준다. 제일 좋아하는 자리에 앉아서 말차크림라떼를 마신다. 행복이라는 단어가 떠오르는 순간이다. 양옆에 있는 레이킷이나 벤앤버터도 좋다. 전부 다 마음에 드는 카페들이다. 늦가을이 되면 신촌동으로 산책을 자주 다녀온다.


자유공원을 한 바퀴 돌고 나면 근처 카페를 찾는다. 카페 카탈란과 시그니처 로스터스를 두고 종종 고민한다. 양자택일이 제일 어렵다. 카탈란의 대표메뉴는 그라니따다. 적당한 단맛이 고소한 우유와 어우러지는 조합이 마음에 든다. 낮은 조도의 어둡고 아늑한 공간이라 산책 후에 편하게 쉴 수 있는 곳이다.


시그니처 로스터스는 맛있는 커피가 생각날 때마다 가는 곳이다. 커다란 원형 테이블에 앉아서 아인슈패너를 마신다. 커피의 산미와 향미를 부드럽게 감싸는 크림이 매력적이라 자주 생각난다. 안양을 찾는 지인들에게 추천했는데 다들 좋아했다. 혼자가도 함께 가도 늘 좋은 카페라서 단골이 됐다.

안양천을 두고 마주 보는 박달우회로와 석수로는 봄에 걷기 좋은 길이다. 충훈부 벚꽃길까지 이어지는 코스는 이름처럼 꽃길이다. 꽃잎과 함께 흩날리는 새하얀 봄햇살을 맞으면서 봄을 만끽한다. 산책이 끝나면 크크커피에 가서 커피를 마신다. 1층에 커다란 전면창이 돋보이는 카페다.


구름 한 점 없는 맑은 날 앉아서 계절을 즐기기 좋은 곳이다. 2층은 책 읽기 좋은 곳이라 시간이 나면 창가 자리에서 하늘과 책을 번갈아 본다. 구름 한 점 없는 가을하늘이 예쁜 그림엽서 같았다. 라떼를 마시면서 책을 읽고 글을 썼다. 산책하고 집에 돌아가는 길은 늘 행복하다. 걷기 좋은 길 그리고 편안하게 쉴 수 있는 카페들이 많아서 조금 더 행복해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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