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혼자 산다

혼자라도 괜찮고 혼자라서 더 행복할 수도 있다

by 김태민

점심으로 돈까스를 먹었다. 자주 가는 돈가스집의 등심까스는 맛도 좋고 돈까스를 주문하면 쌀국수를 반값에 먹을 수 있다. 그러다 보니 돈까스와 쌀국수는 단골손님들에게 사실상 이 집의 세트메뉴로 취급받고 있다. 나는 아침은 가볍게 먹고 점심을 든든하게 먹는 편이기에 등심까스와 라지 사이즈의 쌀국수를 주문했다. 당당하게 두 명분의 음식을 앞에 둔 모양새가 조금 쑥스럽긴 했지만. 기분 좋게 식사를 하는 동안 테이블은 손님들로 금세 가득 찼다. 한 가지 재미있는 사실은 나를 포함한 사람들이 모두 혼자 점심식사를 하는 ‘혼밥러’였다는 점이다. 그리고 입구에 서서 대기하고 있는 새로 온 손님들 역시 대부분 혼자 온 사람들이었다.

대학교 앞이나 시내 중심가의 음식점과 카페들은 아예 1인용 테이블을 만들어 급격하게 늘어난 혼밥러 혹은 나홀로족들을 배려하고 있다. 여럿이 주문해야 하는 전골이나 찌개 같은 메뉴도 1인 식사가 가능하게 세팅되어 나오는 경우가 늘어났다. 메뉴도 다양하다. 일본 가정식부터 복국 심지어 랍스터 코스요리도 1인 기준으로 주문이 가능하다. 대형마트나 쇼핑센터만 봐도 1인 가구를 위한 다양한 생활용품들 채워 놓은 상품 코너를 쉽게 만날 수 있다. 개별 포장된 식재료부터 작은 사이즈로 나온 세제와 조미료들까지 혼자 사는 사람들을 위한 배려가 돋보이는 제품들이 정말 많아졌다. ‘고생스럽게 왜 굳이 혼자 살려하느냐.’는 말은 이제 정말 옛말이 되어버렸다. 혼자가 어색했던 시절은 가고 이제 나 혼자 살아도 얼마든지 괜찮은 시대가 온 것이다.

1인 가구의 수는 어느 순간 500만을 훌쩍 넘겨버렸다. 학업과 취업 등 환경의 변화로 인해 혼자 살게 되는 경우도 많겠지만 500만이 넘는 1인 가구의 대부분은 자발적인 독립을 선택한 사람들이다. 과거에는 분명 혼자 사는 사람을 안쓰럽게 바라보는 사회적인 시각이 존재했었다. 자취나 하숙이라는 단어 속에 가족과 떨어져 먼 타지에서 고생하는 사람의 이미지가 뿌리 깊게 박혀있었던 것을 생각해보자. 그러나 시대가 바뀌면서 자취라는 말 대신 ‘싱글라이프’라는 아주 멋들어진 표현이 등장했다. 인생을 즐기는 1인 가구만의 라이프스타일은 이전에 없던 트렌드를 만들어내면서 새로운 사회계층의 영향력을 보여주고 있다.

사실 급격하게 늘어난 1인 가구가 사회를 구성하는 당당한 한 축으로 인정받게 된 것은 막강한 구매력 때문이다. 소비재를 판매하는 유통업체와 거대기업들은 철저하게 수익성을 기반에 두고 사업을 운영한다. 분야를 가리지 않고 1인 가구를 대상으로 한 상품과 사업을 기업들이 쏟아내고 있는 이유는 싱글라이프가 돈이 되기 때문이다. 개인주의 라이프스타일을 지향하는 1인 가구의 구매력은 상당하다. 소비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의식주뿐만 아니라 콘텐츠 분야에서도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한다. 미디어, 영화, 공연, 전시 그리고 여행에 이르기까지 문화생활 전반에서 폭발적으로 늘어난 1인 소비자들은 충성스러운 손님이면서 동시에 트렌드를 만들어내는 왕이다.

혼자서 여유롭게 삶을 즐기려고 하는 1인 가구 특유의 욕구는 구매력과 영향력을 토대로 사회 속에서 그 입지를 더욱 탄탄하게 만들어줄 것이다. 과거에도 혼자 사는 1인 가구는 적지 않았다. 다만 지금의 싱글라이프와 달리 지난 시절의 자취생과 하숙생들은 혼자만의 생활을 즐기는 데 시간과 비용을 크게 투자하지는 않았다. 이것이 지금의 자발적 1인 가구와 다른 결정적인 차이점이다. 가정을 이루는 것이 사회적인 의무이자 사람으로서의 도리라는 생각이 지배하던 시대는 끝났다. 생각이 변하면 사람이 달라지고 사람이 달라지면 결국 시대도 변모한다. 혈연으로 맺어진 3,4인 규모의 가구가 중심이던 사회에서 독립적인 생활을 영위하는 1인 가구를 새로운 형태의 가구 구성으로 인정하게 된 오늘날. 500만을 훌쩍 넘어선 1인 가구는 생활의 방식을 결정하는 기준이 사회적 관념과 통념에서 개인 중심의 취향과 선택으로 변화했음을 나타내 주고 있다.

행복은 사회적인 의무가 아닌 개인적인 선택에서 비롯된다. 남들처럼 남들만큼 사는 방식에서 벗어나 나답게 사는 것에 매력을 느끼는 시대가 온 것은 그런 점에서 분명한 진보다. 사회가 전통적으로 제시하는 모범답안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형태의 삶을 선택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증가하고 있는 것을 보면 결국 변화는 많은 사람들의 선택이 한 방향으로 이어질 때 발생하는 것이다. 개인은 작지만 수많은 개인이 공감을 통해 하나가 되면 오래된 고정관념이나 낡은 관습도 새로운 변화에 맞게 옷을 갈아입을 수밖에 없다. 생각의 변화가 곧 시대의 변화를 만들어내는 강력한 원동력이다. 통념과 규칙이 강요하는 내용을 거부하고 취향과 소신을 선택하려는 경향이 이제는 새로운 시대의 상식으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 혼자라서 눈치 보이던 시대는 가고 혼자라서 당당한 세상으로 변화하고 있는 것이다.

사는 것은 바둑을 두는 것과 많이 닮았다. 어디에 돌을 놓을지 생각하고 행동에 옮기려 하면 그 순간 기다렸다는 듯이 사방에서 훈수가 날아온다. 원칙을 지키라는 말부터 시작해서 반대를 위한 반대까지 한 마디씩 듣다 보면 삶에 관한 분명한 결정권을 가지고 있음에도 우리는 선택 앞에서 주변의 눈치를 살피게 된다. 그러나 삶은 단 한 번뿐이다. 바둑판의 승패가 단판으로 결정되듯 인생도 리허설 없이 단 번에 끝난다. 그러므로 세상이 이야기하는 간섭에 귀 기울이기 전에 내 안의 솔직한 목소리를 듣는 것이 더 중요하다. 혼자라도 괜찮고 혼자라서 더 행복할 수도 있다. 형태가 달라도 행복의 본질은 같다. 원하는 것을 선택하면 사람은 행복해진다. 당당하고 자신 있게 혼자만의 삶을 선택한 많은 사람들을 응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