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다 괜찮다’는 말을 하기까지
감정은 사람의 내면에 휘몰아치는 천재지변과도 같다. 몰려오는 감정은 맘대로 막을 수도 없고, 원하지 않는다고 해서 쉽게 털어낼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피할 수 있는 감정은 없다. 사랑과 행복이 주는 기쁨이 봄처럼 가슴을 물들이며 퍼져나가는 것만큼이나 마음에 슬픔이 젖어드는 속도 역시 신속하고 정확하다. 특히, 고통을 동반하는 슬픔에는 에누리가 없다. 살면서 나이가 들고 자의식과 내면이 크게 성장하더라도 슬픔에서 비롯되는 아픔을 이겨내기란 언제나 힘겹고 매번 버겁다.
소중한 사람을 잃어버린 상실감, 믿었던 것들로부터 건네받은 배신감, 예상치 못했던 이별과 당혹스러운 실패까지. 예고 없이 밀려오는 이런 감정들은 거대한 슬픔을 몰고 와서는 고통을 일상으로 만들어버린다. 계절의 끝을 알 수 없듯 슬픔의 끝 역시 알 수 없다. 다친 마음이 언제쯤 나을지 우리는 예상할 수 없다. 단지 무덤덤하게 ‘그땐 그랬었지’라는 혼잣말을 하기까지 꽤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만을 알고 있을 뿐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슬픔은 이겨내는 것이 아니라 견디는 것이다. 슬픔 앞에서 인간은 한없이 나약해진다. 우리 내면에 있는 마음에는 근육이 없다. 시간이 지난다고 저절로 강해지는 것도 아니고 시련의 크기에 비례하여 단련되는 것도 아니다. 그래서 슬픔은 언제나 고통스럽고 늘 처절하다.
슬픔을 단 번에 덜어내는 방법은 없다. 긴 겨울은 봄이 와야 끝난다. 계절이나 감정은 내 뜻대로 되지 않는다. 휘몰아치는 눈발이 잦아들고 두꺼운 얼음이 가늘어질 때까지 조용히 기다려야 한다. 슬픔이 잠잠해지기까지 우리는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야 한다. 마음의 짐은 가까운 사람들과 나눠들 수 있지만 겨울의 끝에서 봄으로 나아가려면 본인의 의지로 스스로 걸어야 하기 때문이다. 혼자가 되면 사람은 지난 시간을 천천히 돌아보게 된다. 그러다 보면 처음에는 현실을 부정한다. 나에게 일어난 불행의 원인을 남에게서 찾는다. 나는 피해자고 내게 등을 돌린 누군가와 세상은 가해자가 된다. 그렇게 원망을 쏟아내다 보면 미움이 싹튼다. 사람에 대한 회의감이 찾아오고 잃어버린 것들에 대한 아쉬움은 분노 섞인 후회가 된다. 그러다 문득 내 안을 향해있던 시선을 밖으로 돌려보면 세상은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잘 돌아가고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내가 현실을 부정하고 스스로를 자책하느라 흘려보낸 시간이 아깝게 느껴질 때 슬픔의 그림자는 천천히 뒤로 물러나가기 시작한다. 잃어버린 것들이 아니라 남아있는 것을 헤아리면서 우리는 슬픔이 쓸고 간 엉망이 된 내면을 조금씩 수습하게 된다. 분노와 미움은 마음의 깊은 수면 아래로 가라앉고 단단하게 뭉쳐있던 감정의 응어리들이 하나씩 풀어지면서 슬픔이 지배하던 계절은 천천히 끝난다. 시간은 약이 아니다. 그러나 사람은 커다란 슬픔에 빠져있을 때 혼자 보내는 시간 속에서 답을 발견하게 된다. 외롭고 고독한 끝날 줄 모르는 고립을 견디다 보면 슬픔의 끝에 도달하는 때가 반드시 온다. 마음대로 앞질러 갈 수도 없고 내가 원한다고 아픔이 사라지는 것도 아니다. 겸허하게 그리고 담담하게 긴 슬픔의 계절을 보내야 한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만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선택이다.
맞설 수 없는 거대한 슬픔 앞에서 인간은 스스로 나약함을 납득하게 된다. 대항하려는 마음을 거두고 천천히 슬픔을 받아들이면서 역설적으로 우리는 슬픔으로부터 점차 벗어나게 된다. 내게 찾아온 시련과 불행을 이해할 수는 없지만 현재의 상황을 하나씩 납득함으로써 슬픔을 견디는 걸음마를 떼는 것이다. 이는 체념과는 다르다. 체념은 모든 것을 포기하는 것이다. 슬픔을 납득하는 태도는 체념이 아닌 인정이다. 현실을 인정함으로써 답답하던 마음은 점점 유연해지고 미움과 분노 그리고 후회와 원망 같은 슬픔에 동반되는 감정들로부터 조금씩 자유로워진다. 피할 수 없다면 인정해야만 한다. 그래야 생활을 이어나가며 사람답게 살 수 있다.
커튼을 치고 방문을 걸어 잠그고 침대에 누워 깊은 잠 속으로 스스로를 떠밀어 보냈던 시간들을 떠올려본다. 사람을 떠나보내고 기회를 흘려보내고 자신을 책망했던 날들. 이제는 모두 한데 묶어 기억이라는 이름표를 달고 차분한 모양으로 내 안에 정리되어 있다. 크고 작은 슬픔에서 비롯되는 고통은 지나고 나면 결국 단순한 기억이 된다. 물론 ‘아프다’가 ‘아팠다’가 되기까지는 적지 않은 시간이 필요하지만 매일 주어지는 24시간이 모이면 슬픔을 덮기에 충분한 양이 된다. 고통의 순간은 결코 영원하지 않다. 흘러나오는 눈물은 그치고 감정은 생활에 집중하면서부터 점점 무뎌진다. 그러다 보면 마음에도 봄이 온다. 무척이나 느리고 답답하게 느껴질 만큼 더딘 걸음이지만 계절이 변하듯 마음도 변한다.
사막의 끝에서 숲이 시작되듯 긴 슬픔의 끝에서 우리는 새로운 기회와 인연을 만난다. 살아가다 보면 잃어버린 것보다 더 소중한 것들을 슬픔을 통해 발견하게 된다. 그러는 동안에도 아픔은 가끔씩 예고 없이 찾아와 내면을 우울한 빛깔로 물들여놓겠지만 괜찮다. 평범한 날들을 보내고 일상에 쫓겨 살다 보면 어느새 지난 시간들을 돌아보며 ‘그땐 그랬지’라는 혼잣말을 할 수 있게 된다. 고민하며 답을 찾을 필요는 없다. 때론 시간이 나 대신 답을 찾아 주기도 한다. 사는 건 그런 것이다. 영원은 없다. 모든 것들은 결국 순간에 지나지 않는다. 인생은 제법 긴 시간이다. 거대한 삶에 비춰본다면 고통은 짧은 순간이다. ‘괜찮다’는 말을 하기까지는 꽤 많은 시간이 필요하겠지만 언제나 그랬듯 결국에는 모두 다 괜찮아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