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이기적인 인간이 되자

내가 나를 위해 헌신해야 하는 순간

by 김태민

오랜만에 학교 후배에게서 연락이 왔다. 회사는 다닐 만하냐는 내 물음에 후배는 그럭저럭 다닌다고 대답했다. 하지만 말끝에 자기가 지금 뭘 위해서 사는지 모르겠다는 속마음이 꼬리표처럼 붙어있었다. 꽃다운 나이에 사무실에 틀어박혀 매일 하루의 절반이 넘는 시간을 일하는데 쓰고 있다는 사실이 후배를 슬프게 만들었다. 힘든 취업난 속에서 쟁쟁한 경쟁자들을 물리치고 들어간 회사였지만 대부분의 직장인들이 그렇듯 후배의 꿈은 직장인이 아니었다. 하고 싶은 일이 있었고 해보고 싶은 것도 많았지만 학생은 공부를 해야 학생이었고 졸업을 목전에 둔 학생은 사회로 나가야만 했다. 삶의 질 따위 배려해주지 않는 업무량과 눈치가 없으면 바보 소리를 듣는 사회생활은 사람을 금세 지치게 만들었다.

후배는 자신이 슬럼프에 빠졌다고 말하며 사표를 낼 준비를 끝냈다고 했다. 나는 후배에게 직장 다니는 것 말고 하고 싶은 일이 있는지 물었다. 취미나 흥미 수준의 즐거움이 아니라 앞으로의 인생을 투자할만한 가치 있는 일이 있는지를 물어봤다. 후배는 아직 그런 일을 찾지는 못했다고 말했고 나는 회사는 계속 다니는 게 좋겠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그런 다음 하고 싶은 일에 도전하려 퇴사하는 것과 직장생활의 스트레스로부터 벗어나려고 그만두는 것은 전혀 다른 것임을 설명했다. 그리고 원하는 목표가 생기면 그때는 기쁜 마음으로 사표를 던지게 될 테니 지금은 좋아하는 일을 탐색해보라고 조언했다.

직장과 집을 오가는 일상 속에 매일 짧은 시간이라도 자신에게만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는 내 말에 후배는 공감했다.

후배뿐만 아니라 이직과 퇴사를 고민하는 지인들을 볼 때마다 밥벌이는 누구에게나 고된 일임을 실감한다. 사회적 지위와 노동의 강도 그리고 임금의 격차를 굳이 따질 필요도 없이 돈을 버는 일은 어떤 식으로든 스트레스를 수반한다. 그만두고 싶고 쉬고 싶다는 생각을 한 번도 하지 않는 직장인은 없을 것이다. 근로자라는 이름을 달고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의무와 역할을 충실하게 수행하지만 삶의 행복과 만족 같은 보상은 쉽게 따라오지 않는 게 현실이다. 의무를 이행한다고 해서 행복의 권리를 확실하게 보장받을 수 있는 사회는 아닌 것이다. 그러므로 행복해질 수 있는 권리는 개인이 스스로 찾아서 쟁취해야만 한다. 말은 쉽고 실천은 언제나 그랬듯이 정말 어렵겠지만.

사회인이라는 이름표를 달게 되는 순간부터 치열하지 않은 삶은 어디에도 없다. 저마다의 직업전선에서 각기 다른 일을 하지만 피로감이나 고단함을 수반하지 않는 경우는 없다. 그만두고 싶고 어딘가로 훌쩍 떠나고 싶은 생각을 하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 힘들고 지치고 갑갑한 것은 당연한 일이다. 사람은 일만 하며 살 수는 없다. 휴식이 필요하고 업무와 업무 사이에는 생활이 들어갈 자리가 있어야 한다. 물론 현실은 개인의 사정을 적극적으로 배려해주지 않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옳은 것을 잘못되었다고 말할 수는 없다. 노동은 삶의 수단이지 삶의 목적은 아니다. 업무에 책임감 있게 열정을 발휘하는 것은 옳은 일이나 지나친 헌신을 쏟아낼 필요는 없다. 물론 기업과 집단은 개인에게 충성과 헌신을 요구하지만 이 세상 어디에도 인간의 일생을 책임져주는 기업과 집단은 없다.

자신의 삶에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을 낼 수 없다면 그때는 과감하게 시간을 빼돌려야 한다. 이건 이기적인 것이 아니라 자기중심적인 것이다. 누구나 인생의 중심은 자신이다. 삶은 누가 뭐래도 온전히 본인의 것이다. 맡은 일에 책임을 다하고 있으면서 사회가 지운 의무도 역시 잘 수행하고 있다면 그 정도로 충분하다. 헌신은 본인의 인생 나아가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하는 삶에나 어울리는 것이다. 하던 일을 때려치우고 멀리 떠나라는 말은 할 수 없다. 소득이 주는 생활의 안정 역시 행복의 일부다. 다만 생업의 고단함과 과도한 업무에 지쳤다면 조금은 이기적으로 굴라고 말하고 싶다. 숨이 턱 막히는 일상에 숨구멍을 뚫는 일을 망설이지 말자. 어떻게 시간을 빼돌릴지에 대한 구체적인 방법은 스스로가 가장 잘 알고 있다. 집단은 한 명이 없어도 잘 돌아간다. 그러라고 개인이 모여 집단을 만드는 것이다. 걱정하지 말고 시간을 빼돌려라.

‘내가 지금 뭘 하고 있는 거지?’라는 생각이 들 때마다 나는 일하다 말고 읽고 싶은 책을 가방에서 꺼내 회사 근처의 카페로 갔다. 1시간 정도 자리를 비우는데 타당한 대답은 얼마든지 갖고 있었다. 그렇게 답답해진 머리를 비우고 좋아하는 문장들을 삼킨 채 자리로 돌아오면 퇴근하기 전까지 편하게 일할 수 있었다. 행복해지는 방법이나 정신없이 바쁜 삶 가운데 의미를 찾는 법칙 따위는 없다. 자기 계발서나 오피니언 리더들의 책에 적힌 말들은 그냥 본인의 성공담일 뿐이다. 그 방식이 내 인생에도 보편타당하게 적용될 거란 생각은 하지 말자. 진짜 삶은 언제나 지금 이 순간에 있다. 항상 원하는 것만 하고 살 수는 없지만 적어도 삶의 어느 순간에는 원하는 대로 해야만 내가 살 수 있는 순간도 있다. 고단함과 갑갑함이 극에 달해 숨이 턱턱 막힐 때면 원하는 대로 해도 괜찮다. 아니, 원하는 대로 해야 한다. 그래야 내가 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