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르츠산도와 앙버터

개성이 모여 몰개성이 되는 과정

by 김태민

막바지 꽃샘추위가 한창이다. 밤늦게 내린 비 때문인지 아침 기온이 뚝 떨어졌다. 추운 날씨 탓인지 아침부터 따뜻한 커피 한 잔이 생각나 집 근처 카페에 들렀다. 출근시간이 지난 카페는 한산했다. 익숙하게 에스프레소와 크루아상을 주문하고 메뉴판을 훑어보다 새로운 메뉴 후르츠산도를 발견했다.


얇게 자른 하얀 식빵 혹은 카스텔라 사이에 생크림과 여러 가지 과일을 넣은 샌드위치 후르츠산도. 익숙한 재료들이 주는 맛의 조합도 나쁘지 않고 알록달록한 과일의 색감이 예뻐서 보기에도 좋다. 빵과 생크림 그리고 과일만 있으면 누구나 만들 수 있는 정말 간편한 음식이다.

그래서 작년쯤 후르츠산도가 서울의 이른바 ‘핫한’카페들의 대표 메뉴로 자리 잡아 SNS에서 화제가 되었을 때 나는 이해가 가질 않았다. 예뻐서 그런 건지 아니면 과일과 생크림이라는 검증된 재료가 주는 호불호 없는 맛 때문인지 후르츠산도는 유행을 만들어내며 아직까지 큰 사랑을 받고 있다. 주문한 커피를 들고 창가 자리에 앉아 SNS 해쉬태그에 후르츠산도를 입력해봤다. 그러자 10만 건이 넘는 검색 결과가 쏟아져 나왔다. 모두 다른 사람들이 찍은 사진임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진들이 일정한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 흥미로웠다.

사진의 각도와 색감 그리고 후르츠산도가 놓인 대리석 테이블의 패턴과 배경으로 보이는 카페의 인테리어까지 전부 다 비슷했다. 소비는 개인의 분명한 취향과 개성이 반영된다. 신기한 점은 그런 개성이 모여 유행이라는 획일화된 몰개성을 만들어낸다는 점이다. 사진을 넘기다 보니 비슷한 사례 몇 가지를 별로 어렵지 않게 떠올릴 수 있었다. 천연 벌꿀 아이스크림, 대만 카스텔라, 딸기 찹쌀떡, 치즈등갈비, 마카롱, 그리고 사회적 신드롬으로 불렸던 허니버터칩까지.


이런 음식들은 정말 맛있어서 유행한 것은 아니다. 유행이니까 사람들이 유행이란 거대한 흐름에 동조하면서 이슈가 된 것이다. ‘남들도 하니까 나도 해봐야지’하는 부러움과 ‘남들도 하는 데 나만 안 하면 안 될 것 같아’라는 불안함. 이 두 가지가 한국 소비구조의 핵심이자 유행의 본질이다.


그러다 보니 사람들은 유행에 민감할 수밖에 없고 본인이 원해서가 아니라 유행을 따라가느라 지갑을 열게 된다. ‘유행하니까 한 번쯤’이라는 생각으로 먹고 마시는데 소비한 횟수를 손가락으로 접다 보면 사람들 대부분이 두 주먹을 쥐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소비는 본인의 자유로운 결정이다. 그리고 유행을 따르는 것이 잘못된 것도 아니다. 다만,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유행 때문에 지갑을 여는 횟수가 점점 늘어나는 것이 결코 좋은 일은 아니다.


일본의 경제성장기 때 유행해서 지금은 일본 중년층에게 추억의 메뉴로 통하는 후르츠산도. 그런 후르츠산도가 30년 이상의 시간차를 두고 바다 건너 한국의 20대에게 큰 인기를 끌고 있는 현실. SNS가 만들어내는 유행의 힘이 한국 사회에 끼치는 영향력은 정말 놀라운 수준이다. SNS에서 시작된 후르츠산도의 인기대열에 요즘은 앙버터라는 새로운 동반자가 등장했다. 2012년부터 서울에서 간간히 보였던 앙버터가 갑작스레 큰 인기를 끈 이유 역시 SNS 때문. 그러다 보니 전국의 수많은 카페들이 앙버터를 메뉴로 들여놓으며 너도나도 판매 대열에 가세했다.


깊은 단맛을 자랑하는 팥앙금과 부드러운 버터를 빵 사이에 끼워 넣은 앙버터. 여기에서 앙(小豆,あん)은 일본어로 팥을 뜻한다. 역시나 후르츠산도처럼 일본에서 영향받은 음식이다. 올해 초 온라인상에서 반등했던 반일감정과는 별개로 한국사람들 일본 음식문화 참 좋아한다. 입소문을 타서 인기를 끈다는 것은 이미 옛말. 대다수의 사람들에게 생소한 음식이 갑작스레 유행하는 이유는 SNS와 미디어에서 촉발된 마케팅의 힘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젊은 층이 많이 찾는 카페는 이러한 유행을 가장 빨리 그리고 직접적으로 반영한다. 그러다 보니 핫플레이스로 꼽히는 전국 모든 카페거리의 카페들은 약속이나 한 듯 비슷한 인테리어와 메뉴를 공유하고 있다. 가로수길의 카페에서 느낀 분위기를 경주의 황리단길에서도 그대로 체험할 수 있다. 사람들이 선호하는 트렌드를 반영하는 것이 매출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므로 납득은 간다. 새하얀 벽에 미니멀리즘 취향의 인테리어도 깔끔하고 예쁘다. 공장에서 찍어낸 그릇 같은 천편일률적인 아름다움이긴 하지만.

사람 사는 곳은 어디나 유행이 존재한다. 그러나 한국처럼 유행이 사회 전체의 소비와 취향을 결정짓는 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곳은 드물다. 이전까지 없던 흥미와 호기심을 만들어서 가면서까지 지갑을 열고 인증샷을 찍고 SNS에 업로드하는 노력과 열정. 세계 어디를 가도 이런 소비자는 없다. 이러한 한국인 특유의 소비 방식은 ‘소속감에 대한 욕구’로 인해 발생한다.


SNS는 일상을 기록함과 동시에 자신의 일상을 타인에게 공유하는 역할을 한다. 많은 사람들이 SNS를 통해 유행의 대열에 합류하면서 ‘나도 먹어봤어, 나도 해봤어.’라는 메시지를 드러내는 것이다. 다수에 속한다는 느낌은 개인차는 있겠지만 대체로 안도감과 우월감을 제공한다. 소수가 아니라 다수가 되고 싶은 욕구가 존재하는 한 SNS의 막강한 영향력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남들만큼 사는 게 가장 어렵고 남들 따라 하는 게 제일 힘들다. 그걸 알면서도 사람들은 열심히 유행 따라먹고 마시고 소비하며 열심히 유행을 쫓아간다. 내 돈과 내 시간을 써가며 열정적으로 유행을 받아들인다. 유행은 욜로나 소확행이란 말로 이름만 살짝 바뀐 채 지난 몇 년간 사람들의 지갑을 얄팍하게 만들어주었다. 그리고 이러한 유행의 끝에는 언제나 또 다른 유행의 시작이 놓여있었다. 후르츠산도와 앙버터 다음에는 또 다른 음식이 SNS의 간택을 받을 것이다.


20대 때는 유럽의 이미지를 차용한 것들이 인기를 끌었다. ‘프랑스 정통, 120년 역사의 영국‘ 같은 수식어를 붙인 음식과 패션 아이템들이 참 많았다. 요새는 굳이 이런 스토리텔링도 필요 없어 보인다. 고급스러운 이미지 세탁도 필요 없다. 유행하기만 한다면 어차피 유래나 배경 따위 상관없이 줄을 서서 지갑을 열고 몇 시간이든 기다리며 인증샷을 찍을 테니 말이다.

글을 쓰면서 문득 궁금해진다. 내가 즐겨 마시는 에스프레소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질색하는 음료다. 그럴 일은 없겠지만 만약 에스프레소가 후르츠 산도와 앙버터처럼 큰 인기를 끈다면? 좋아하지도 않는 쓴맛을 참아가며 인증샷을 찍고 다들 열심히 SNS에 업로드할지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