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도 언어다 이해해야 할 메시지다
언어는 마음을 담는 그릇이다. 내면에 머물러있던 감정이 언어를 통해 제대로 된 모습을 갖출 때 인간은 서로 소통할 수 있다. 우리가 느끼는 대부분의 감정은 언어를 통해 전달된다. 그러나 언어가 인간의 모든 감정을 나타내는 것은 아니다. 언어로 형상화하기 어려운 복잡하고 미묘한 감정들은 비언어적인 모습을 빌려 드러나기 때문이다. 망설이는 눈빛이나 어색함이 감도는 분위기 같은 것들에 언어로 표현하지 못한 메시지가 숨겨져 있다. 나는 이것을 ‘비언어적인 언어’라고 부른다. 그중에서도 침묵은 우리가 가장 쉽게 접할 수 있는 비언어적 언어다. 침묵은 그 자체로 독립적인 의사표현이다. 사람들은 침묵을 통해 분노와 실망감을 나타내기도 하고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갑갑한 심경을 드러내기도 한다. 그래서 사람과의 소통에 있어서 침묵의 언어를 파악하는 능력은 정말 중요하다.
1인 가구수가 500만을 넘긴 우리 사회에서 침묵은 이제 하나의 사회적 현상으로 나타나고 있다. 혼밥과 혼술이 일시적인 이슈에서 하나의 문화로 인정받는 요즘. 자의든 타의든 우리가 갖는 침묵의 시간은 분명 과거보다 길어졌다. 일상에 지쳐 입을 닫아버리기도 하고 공적인 관계에 집중하느라 쏟은 에너지를 회복하기 위해 침묵의 시간을 갖기도 한다. 혼자만의 시간을 즐기는 많은 사람들은 침묵을 통해 다양한 감정을 표출한다. 그리고 이 침묵 속에는 자신을 배려해달라는 배려의 요청과 누적된 피로감을 씻고자 하는 욕구가 담겨 있다. 대화창의 줄어들지 않는 숫자 1이나 한 잔 하게 나오라는 전화에 시큰둥한 반응은 그래서 이해심을 필요로 한다. 침묵의 언어는 상대를 이해하고자 하는 마음을 통해서만 해석될 수 있기 때문이다.
침묵에 대해 구체적인 설명을 요구하는 조급한 마음은 사실 이기적이다. 상대방의 침묵으로 인한 자신의 답답함을 풀고자 하는 의도가 강하기 때문이다. 물론 걱정이나 염려도 동반되겠지만 침묵하고 싶은 상대방은 그런 조급함에 갑갑함을 느끼게 된다. 어떤 이유로 침묵하는지는 모르지만 현재의 침묵을 있는 그대로 존중해주는 마음. 시간이 지나고 나면 자연스럽게 이어질 대화를 기다리는 배려가 있는 이해심이 침묵을 대하는 올바른 마음가짐이다. 가만히 이야기를 들어주는 경청이 상대방에 대한 존중과 이해하려는 의도에서 비롯되듯 침묵을 기다려주는 태도 역시 마찬가지다. 그리고 많은 이해심을 요구하는 만큼 침묵은 성실히 기다려준 이에 대한 보답으로 이어진다. 말로는 표현하지 못하는 침묵의 감정을 헤아려주는 상대에게 사람들은 ‘진심’을 허락하기 때문이다.
관계에 있어 가장 중요한 본질은 관계가 진전되는 속도가 아니라 내실이 다져지는 깊이에 있다. 쉽고 편한 것들이 좋은 것으로 대접받는 시대를 사는 우리는 인간관계마저 편하기를 원한다. 그러나 가벼운 관계에 진심이 깃들기는 어렵다. 인간관계에서 먼저 내어줄 수 있는 이타심이 부족하다면 내면의 메시지인 침묵을 기다려주는 이해심을 갖자. 침묵이 하나의 언어가 되듯 기다리는 마음 역시 언어가 된다. 서로를 향한 단어들을 주고받지 않아도 이해하는 마음으로 사람은 소통할 수 있다. 언어는 마음을 담는 그릇이지만 때때로 진심은 언어가 없어도 충분히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 마음과 마음은 통하기 때문이다.
언어 이면에 숨어있는 메시지를 읽어내는 사람을 우리는 섬세한 사람이라고 부른다. 침묵의 언어를 이해하려 노력하는 사람은 섬세함과 더불어 사려 깊은 배려심까지 갖춘 사람이다. 나의 침묵을 헤아려줄 그런 사람을 곁에 둔다면 정말 행복할 것이다. 그런 행복을 주는 이에게 사람은 마음을 열 수밖에 없다. 진심은 언제나 이해와 배려를 통해서만 나눌 수 있는 것이다. 침묵은 그런 점에서 인간관계의 진심을 확인시켜주는 아주 중요한 매개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