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관계에 대한 회의감이 느껴질 때
계절이 변하듯 사람도 변한다. 언제까지나 계속될 줄 알았던 봄이 지나면 여름과 가을을 지나 매서운 겨울이 찾아온다. 살아가며 우리가 맺는 인간관계 역시 계절처럼 뚜렷한 변화를 맞이한다. 떠날 사람은 떠나고 남을 사람은 남는다는 사실을 아는 나이가 되더라도 갑작스레 틀어지는 관계에 적응하는 것 일은 정말 어렵다. 내 사람이라고 생각했던 소중한 이가 내 곁을 떠나고 아무 문제없어 보이던 지인들과의 사이가 어긋날 때. 어느 순간부터 사람을 만나고 사귀는 일에 대한 깊은 회의감이 밀려들기 시작한다. 누구를 만나도 결국에 끝은 찾아오고 눈앞에서 멀어지면 마음에서도 멀어진다는 사실에 마음이 갑갑해지는 그런 순간이 온다. 사람을 대하는 데 있어서 한 번 크게 어려움을 느끼고 나면 관계에 대한 본질적인 회의감에 빠지게 된다. 가족 같은 사이라도 가족은 아니고 하나뿐인 사람이라도 결국에는 남이라는 현실. 가까운 사이가 틀어지면서 남보다 못하게 느껴질 때 사람들은 깨닫는다. 오랫동안 함께한 시간도 호의를 담은 배려도 마음이 변하면 아무런 소용이 없다는 사실을. 그리고 사람들과의 접촉을 피한 채 지금까지 쌓아 올린 인간관계 전체를 돌아보는 혼자만의 시간을 갖게 된다. 가장 오랫동안 내 곁을 지켜준 익숙한 사람들에 대한 고마움을 새삼스레 느끼면서 동시에 사회생활을 통해 맺은 관계들에 대해 적당한 선을 두자는 결심을 한다. 남을 사람은 남고 떠날 사람은 떠난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그동안 필요 이상으로 인맥을 관리하는 데 지친 스스로를 다독인다. 내 사람이라고 불리는 정말 소중한 인간관계에 집중하자는 깨달음. 관계의 회의 끝에 발견하게 되는 결론이다. 그러나 객관적인 시각을 가지고 내가 나를 관찰할 수 있는 조금 먼 거리에서 바라보면 나 역시 누군가에 대한 마음과 태도를 바꾼 적이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사람은 누구나 변한다. 계절이 변하듯 관계는 변하고 철새들이 떠나듯 마음도 떠난다. 나를 둘러싼 사람들만 변하는 게 아니라 나도 변했다. 내게 상처를 준 이들이 그랬듯 나 역시 알게 모르게 다른 누군가를 인간관계로 인한 고통 속으로 밀어 넣은 장본인이다. 모든 인간관계의 책임은 ‘쌍방과실’이다. 갑작스레 틀어지는 관계는 없다. 두 사람을 갈라서게 만드는 문제는 항상 징후를 동반한다. 평소 같으면 알아차렸을 변화를 깨닫지 못한 나 역시 이전과 다르게 변해버린 것임을 문제가 생기기 전에는 알 수 없다. 나는 한결같이 신경 써주고 배려해주었는데 라는 생각은 어디까지나 내 기준에서 작성된 진술이지 진실은 아니다. 내 호의와 선의가 상대방에게 언제나 좋은 것이었는지 아니면 부담이나 불편으로 느껴졌는지는 내가 모를 일이다. 상대방이 나를 일방적으로 떠난 것이 아니라 내가 그를 떠나게 만드는 구실을 제공했을지도 모른다. 거리감을 느끼게 만든 행동은 나도 모르는 사이 나의 태도나 말투에서 비롯되었을 수도 있다. 내면에 감춰둔 오해나 감정들을 주기적으로 꺼내 서로에게 보여주며 확인하지 않았다면 가까운 관계라도 순식간에 틀어질 수 있다. 책임소재를 따져가며 과실의 유무를 물을 때 비난의 화살이 향해야 할 대상은 한쪽이 아니다. 양쪽 모두 다. 인간관계에 있어서 일방적인 피해자나 가해자는 없다. 나는 다른 사람에게 피해 주지 않고 정말 잘해줬다는 생각은 본인만의 착각일 뿐이다. 사람은 살면서 필연적으로 누군가에게 상처를 입히고 누군가로부터 상처 받으며 산다. 이는 예외 없이 모두에게 적용된다. 누구에게나 평등한 이런 원리를 우리는 섭리라고 부른다. 상처 받는 것으로부터 자유로운 인간은 단 한 사람도 없다. 그러므로 인간관계에 대한 회의감이 밀려올 때 생각해야 할 것은 내 사람을 챙기고 떠날 사람은 떠나라는 철저한 자기 위로 따위가 아니다. 스스로를 돌아보며 자신을 객관적으로 파악하는 자기반성이 먼저다. 알량한 위로에 빠져 나는 그래도 좋은 사람이었다는 착각을 범한다면 오랫동안 내 곁을 지킨 사람들 역시 언젠가 잃게 될 것이다. 애초에 내 사람이란 건 없다. 사람은 누구나 타인이고 오해가 쌓이면 혈육도 남이 되어 갈라서는 것이 인간 사회다. 내 사람이라는 이름표를 떼어내고 모든 인간관계를 동등한 선에 놓을 때 비로소 보이는 건 특별함과 평범함은 어디까지나 내가 정한 기준일 뿐이라는 사실이다. 내가 소중한 사람과 평범한 지인을 나누듯 다른 사람들 역시 이런 기준을 가지고 있다. 나는 너를 소중하게 생각하는데 너는 왜 그렇질 않느냐고 따지는 것은 그래서 어리석은 투정이다. 서로의 기준이 다른 것을 두고 논쟁하는 것 자체가 잘못된 일이기 때문이다. 다른 것을 두고 틀렸다고 생각하는 시점에서 이미 관계는 닿지 않을 평행선으로 갈라지기 시작한다. 나를 좋아해 주길 바라는 마음은 순수하다. 그렇다면 상대방에게 베푸는 호의나 배려 역시 순수한 선에서 끝내야 한다. 뜻대로 되지 않는 다고 준만큼 돌아오지 않는다고 실망하고 오해하면 그때부터 그 관계는 언젠가 끝날 유통기한을 갖는 것이나 다름없다. 인간관계가 주는 회의감에 젖은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상대방이 얼마나 변했는지를 돌아보는 일이 아니다. 내가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어떤 식으로 변하는지 되돌아보는 반성이 필요하다. 감상에 젖어 스스로를 합리화하는 것은 한 번으로 족하다. 여러 번 관계에 대한 회의감에 빠진다면 그때는 자신을 돌아보는 용기를 가져야 한다. 그때가 바로 내가 나를 바로잡아야 하는 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