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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태민 Sep 05. 2018

커피의 시대

음식은 시대와 문화를 반영하는 거울이다

 한국 사람들은 커피를 물처럼 즐겨 마신다. 이른 아침부터 늦은 밤까지 커피에 대한 국민들의 뜨거운 사랑은 식지 않는다. 원한다면 언제 어디서나 손쉽게 신선한 커피를 마실 수 있는 나라가 바로 대한민국이다. 커피의 주요 산지인 콜롬비아나 에티오피아보다 더 쉽고 빠르게 언제든지 원하는 커피를 손에 넣을 수 있는 곳이다. 어디를 가든 누구를 만나든 우리는 자연스럽게 커피를 마신다. 카페뿐만 아니라 패스트푸드점과 아이스크림 전문점 심지어는 치킨집에서도 커피를 주문할 수 있다. 시공간의 제약도 없다. 동네마다 몇 개씩 들어서 있는 프랜차이즈 카페는 대부분 아침부터 늦은 밤까지 영업을 하는 데다 24H 간판을 달고 있는 점포의 숫자도 이전보다 크게 늘어났다. 이제는 배달대행으로 커피도 배달이 된다. 물리적인 한계를 초월해버린 커피의 위상을 보면 커피가 ‘해가지지 않는 거대한 제국’을 한반도에 세웠다고 표현해도 부족함이 없을 것 같다.
  
 기호품의 일종이었던 커피는 이미 오래전에 한국인의 주식인 밥이 가지고 있던 자리를 빼앗았다. 건강을 위해 탄수화물을 줄이거나 다이어트를 목적으로 끼니를 걸러도 커피를 끊는 사람은 없다. 한국 사람들에게 있어서 커피는 선택이 아닌 필수다. 밥은 안 먹어도 커피는 마신다. 그런 점에서 우리 사회의 커피에 대한 절대적인 선호도는 이제 단순한 취향이 아니라 관습에 가까운 경향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2017년 한 취업포털에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70%에 가까운 직장인들이 매일 약 3잔의 커피를 마신다고 대답했다. 그리고 같은 시기 통계청이 발표한 한국 국민 1인당 하루 쌀 소비량은 약 한 공기 반으로 역대 최저치를 기록했다. 이쯤 되면 과장을 조금 보태서 커피를 한국인의 주식이라고 불러도 될 것 같다.
  
 글을 쓰면서 동네에 카페가 얼마나 있는지 검색해봤다. 반경 400미터 안에 약 40개의 카페가 영업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교회의 십자가보다 카페 간판을 더 쉽게 찾을 수 있는 시대를 살고 있다. 2017년 커피 업계의 통계에 따르면 서울의 커피전문점 수는 약 1만 8000개로 이는 서울시 전체의 편의점과 치킨집의 점포수를 합친 것보다도 10% 이상 많은 숫자다. 그리고 앞서 언급한 대로 편의점과 일부 치킨집에서도 커피를 마실 수 있다는 점을 근거로 확장해서 계산해본다면 수치는 적어도 두 배 이상 늘어날 것이다. 공급은 수요를 근거로 증가한다는 사실을 볼 때 한국 사람들의 커피에 대한 사랑은 애정을 넘어 성애라고 불러도 무방하다. 성애가 본질적인 본능을 의미하는 것처럼 커피에 대한 사람들의 절대적인 지지는 거의 본능에 가까울 정도로 뜨겁다.
  
 먹는 음식은 사람의 라이프스타일을 대변한다. 그중에서도 사람들이 가장 자주 먹는 음식인 주식은 개인과 집단의 사회적인 특성을 고스란히 반영한다. 식사는 인간 생활의 근본인 의식주의 한 축을 담당하므로 ‘무엇을 어떻게 먹고 마시는 가’는 단순한 취향을 넘어 문화적인 정체성을 품고 있는 것이다. 좋든 싫든 커피를 마셔야 할 일도 많고 마셔야만 하는 상황도 많은 것이 커피가 우리 시대의 주식이 된 본질적인 이유다. 속도를 중시하는 한국 사회와 커피는 최고의 궁합을 자랑했다. 잠을 줄이고 졸음을 쫓아가며 일하고 공부하는 수많은 이들을 위해 커피가 존재한다. 우리 사회의 동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오겠지만 국민 개개인의 삶을 지탱하는 생활의 원동력은 커피로부터 나온다고 불러도 상관없을 것이다. 커피는 쉴 새 없이 돌아가는 한국 사회를 대변하는 음식임과 동시에 바쁜 현대인의 삶을 표현하는 자화상이다.
  
 카페인의 각성효과가 졸음을 방지하고 집중력을 향상해주는 것과 더불어 많은 커피에 첨가된 강렬한 단맛은 스트레스를 즉각적으로 달래준다. 크림과 시럽이 잔뜩 들어간 커피는 그래서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사회인들을 위한 일종의 구호품이다. 밥보다 비싼 커피를 먹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한 끼의 식사로는 피곤함과 스트레스를 효과적으로 달랠 수 없다. 필요는 언제나 환경에 의해 발생한다. 시간에 쫓기고 업무에 시달리는 피곤한 한국인들에게 당분과 카페인을 효과적으로 수혈해주는 커피는 필수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똑같은 카페인 음료라도 녹차와 홍차는 커피에 비하면 그 입지가 너무나 초라하다. 똑같은 차를 팔아도 카페와 찻집은 단어가 품고 있는 온도가 다르다. 한국인들은 차를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커피를 사랑한다. 아니, 커피만을 사랑한다. 커피가 지니고 있는 카페인과 당분의 마법 같은 시너지를 대체할 음료가 없기 때문이다.
  
 커피 역시 차의 한 종류일 뿐이지만 커피와 나머지 차의 위상은 하늘과 땅 차이다. 엄밀히 말해서 커피를 제외한 차는 어디까지나 기호품일 뿐이지 필수품은 아니다. 오로지 커피만이 필수품으로 대우받는다. 회사나 관공서 그리고 학교와 예비군 훈련장에 이르기까지 어디에서나 달달한 믹스커피 한 잔을 쉽게 마실 수 있다. 물론 쌓여있는 믹스커피 옆에는 늘 현미녹차나 건강차의 티백이 몇 개쯤 놓여있지만 손을 대는 사람은 거의 없다. 커피를 제외한 다른 차는 어디까지나 구색 맞추는 용도일 뿐.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것은 오로지 커피다. 가정과 직장 그리고 산업 현장에 이르기까지 커피는 언제나 사람들 곁을 지키고 있다.
  
 ‘술 한 잔 마시자’, ‘밥 한 끼 하자’는 말보다 ‘커피 한 잔 하자’는 말을 더 많이 듣고 사는 요즘. 한 잔의 커피는 일과 삶을 연결하고 사람과 사람을 잇는 한국의 문화가 되었다. 한국의 커피 문화는 분명 속도와 성과를 중시하는 사회적인 분위기를 타고 발전했지만 앞으로 새롭게 변화할지도 모르겠다. 여전히 달고 부드러운 커피를 선호하는 경향이 크지만 커피 본연의 시고 쓴 맛을 찾는 수요가 해마다 크게 늘고 있기 때문이다. 시대에 따라 선호하는 맛도 변화한다. 은은한 쓴맛의 아메리카노와 콜드 브루가 주류를 이루는 시대는 분명 이전과는 많이 다른 모습이 될 것 같다. 물론 아직까지는 산업 성장기 믹스커피를 마시며 밤낮으로 일하던 세대의 자녀들이 성인이 되어 프랜차이즈 커피를 마시면서 저녁이 없는 삶을 살고 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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