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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태민 Feb 22. 2017

꽃에 담은 마음

마음과 마음을 꽃으로 잇는다.

 느린 걸음으로 봄이 오고 있는 모양이다. 차가운 바람이 잠시 멎은 오후의 햇살을 받으며 천천히 집으로 가는 길.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걷다 정류장 근처의 꽃가게에 들러 예쁜 안개꽃을 샀다. 엄마가 좋아하는 안개꽃. 꽃만 보면 소녀처럼 좋아하는 엄마의 모습이 떠올라 나는 큰 맘먹고 평소보다 훨씬 풍성한 꽃다발을 샀다. 불쑥 내민 꽃을 본 엄마는 비싼걸 뭐 하러 사 오냐는 잔소리를 늘어놓았지만 꽃다발을 받아 든 입가에는 잔잔한 미소가 걸려있었다. 꽃은 마음을 담은 선물이다. 모든 선물에는 주는 사람의 마음이 담겨있지만 꽃은 그 어떤 선물보다도 확실하게 마음을 표현해준다. 세련된 포장지를 뜯어내거나 축하 메시지의 내용을 확인하지 않아도 꽃을 받으면 주는 사람의 따스한 진심을 느낄 수 있다.
  
 예쁜 꽃송이들이 각자 다른 빛깔을 뽐내며 다소곳이 모여 있는 모습만 봐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행복감을 느낀다. 꽃이 예뻐서 그리고 그런 예쁜 꽃을 건네주는 마음이 예뻐서 받는 사람은 두 번 행복해진다. 집에 돌아와 꽃병에 꽂아 놓은 꽃을 볼 때마다 꽃을 준 사람의 모습이 떠오른다. 얼굴을 마주한 채 말을 걸지 않아도 꽃병에 가지런히 꽂힌 꽃송이가 나를 대신해서 소중한 마음을 전해준다. 성별을 떠나서 누구에게나 똑같다. 한 송이든 한 다발이든 선물 받은 꽃은 마음에 봄을 불러온다. 꽃은 시들어도 전해받은 마음은 시들지 않는다. 오래도록 남아 예쁜 추억이 된다.
  
 내 추억 속에 남아있는 첫 번째 꽃 선물은 엄마가 준 꽃다발이었다. 초등학교를 졸업하던 날 직장에 하루 휴가를 내고 달려와 웃으며 전해준 꽃다발. 투명한 비닐 안쪽으로 펠트가 둘러져있던 소박한 꽃다발. 어린 시절의 나는 꽃을 좋아하지 않았지만 그 날 엄마가 내 가슴에 안겨준 꽃송이들은 정말 예쁘고 고왔다. 늦은 밤까지 일하며 가족을 책임지는 고단한 생활 가운데서도 내게 꽃을 안겨준 엄마. 성인이 되어 반나절 동안 고생해서 번 돈과 꽃다발의 값이 비슷했다는 걸 알았을 때 나는 비로소 꽃다발 속에 담겨있던 엄마의 진심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럼에도 나는 엄마에게 꽃을 선물하지는 못했다. 말로 다 할 수 없는 사랑과 헌신에 대한 고마움을 표현하는 게 쑥스러웠기 때문이다. 결국 내가 태어나 처음 선물한 꽃의 주인공은 엄마가 아닌 처음 사귄 여자 친구였다. 이래서 아들자식은 키워봐야 소용이 없다는 말이 있는지도 모르겠다.
  
 가끔씩 꽃을 사 올 때마다 엄마는 뭣 하러 비싼 걸 사 오냐고 나에게 핀잔을 준다. 그리고는 깨끗한 물을 넣은 병을 가져와 예쁘게 꽃을 꽂아둔다. 가장 잘 보이는 곳에 두고는 집안을 오며 가며 꽃이 예쁘다는 말을 입버릇처럼 내게 던진다. 다음부터는 사 오지 말라는 엄마의 잔소리에도 나는 종종 엄마를 위해 꽃을 사 올 생각이다. 엄마가 내게 준 꽃다발이 내게 아름다운 추억이 되었듯이 내가 건네준 꽃이 엄마의 삶에 작은 기쁨이 되기를 바란다. 여전히 나는 다소 무뚝뚝하고 퉁명스러운 못난 아들이지만 내가 전하고 싶은 많은 말들을 하얀 안개꽃들이 대신해주고 있다고 믿는다.
  
 예쁜 꽃을 보면 소중한 사람의 얼굴이 떠오른다. 그 꽃을 받고 기뻐할 행복한 웃음이 그려진다. 많은 말 대신 한 송이 혹은 한 다발의 꽃으로 전할 수 있는 마음을 알아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정말 큰 행복이다. 그리고 마음을 담아 꽃을 건네줄 수 있는 일 또한 큰 행복이다. 꽃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행복을 잇는 선물이다. 고운 추억이 되는 기쁨을 품은 아름다운 선물이다. 앞으로의 내 삶에 그런 선물을 주고 싶은 사람이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 변하지 않는 고마움과 진심을 담아 언제든지 불쑥 선물하는 기쁨을 더 많이 누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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