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느리게 살기로 결심했다

아날로그적 인간이 느낀 요즘 세상

by 김태민

핸드폰을 바꿨다. 최신 폰으로 갈아탄 친구가 넘겨준 아이폰7을 받아 초기화를 하고 최적화된 세팅을 했다. 어플은 카카오톡과 카카오맵 그리고 브런치와 인스타그램 마지막으로 블로그 이걸로 끝. 이것도 좀 많다 싶은 생각이 든다.


유튜브는 작년에 지워버렸고 앱으로 쇼핑을 할 때는 잠시 깔아서 사용하고 곧바로 삭제해버린다. 이렇다 보니 내 핸드폰은 언제나 그야말로 심플 그 자체다. 바탕화면은 언제나 기본 화면이고 핸드폰은 케이스도 씌우지 않은 채 사용한다. 겉과 속 모두 심플하기 그지없다.

핸드폰 하나면 정말 많은 일을 할 수 있는 요즘. 다른 사람들의 눈에는 이런 내가 조금 이상하게 보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한 번도 불편함을 느낀 적이 없다. 불편함은 기존에 누리고 있던 편리함이 사라질 때 발생한다. 편리함을 접해본 적이 없으니 굳이 불편할 일도 없다고 하면 이해하기 쉬울까?


단순한 라이프스타일을 지향하는 내게 핸드폰은 사실 귀찮은 물건이다. 카톡의 메시지 알림을 화면으로 띄워 볼 수 있게 설정한 것도 최근의 일이다. 그전까지는 앱 아이콘 옆에 늘어나는 숫자로 ‘메시지가 왔구나.’ 하고 알아보는 게 전부였다. 물론 알림음은 언제나 무음이었다.

문명의 속도를 조금 느리게 받아들이고 싶다고 하면 이상하게 들릴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느리게 살고 싶다. 사실대로 말하면 나는 느리게 살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몇 년 전부터 그렇게 살고 있다. 80년대 끄트머리에 태어나 기술 문명의 눈부신 발전을 체감하며 살아왔다. 전화 기능밖에 없는 벽돌 만한 휴대폰이 스마트폰이 되는 변화를 체험한 세대로서 기술혁신이 주는 편리함이 얼마나 매력적인지 나 역시 잘 알고 있다.


하지만 그 편리함을 전부 다 받아들이고 싶지는 않다. 적당한 선에서 누리면서 기술의 혜택으로 충족시킬 수 없는 수고로움과 번거로움을 내 몫으로 남겨두고 싶다. 쉽게 말해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을 첨단기술에 내어주고 싶지 않다는 말이다. 내가 사진 어플을 쓰지 않는 것이 대표적인 예시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알고리즘과 인공지능 기술로 업그레이드된 핸드폰 카메라와 어플은 사진을 정말 멋지게 찍어준다. 색감과 심도 그리고 주변 상황에 맞게 자동으로 밝기를 조절해서 어떤 상황에서든 최고의 결과물의 만들어낸다. 하지만 나는 그런 연출된 사진에는 관심이 없다.


내가 원하는 사진은 내가 직접 찍은 사진이다. 번거롭고 손이 몇 번 더 가더라도 내 방식대로 찍은 사진이 좋다. 결과물의 완성도가 낮더라도 내가 직접 찍은 느낌이 있어야 한다. 결과의 만족보다 과정의 즐거움이 주는 기쁨이 더 크기 때문이다.

기술은 계속해서 꾸준히 혁신적인 성과를 내고 있다. 다양한 앱을 통해 얼마 전까지만 해도 시간과 품을 들여야 했던 일들을 이제는 손 안에서 터치 몇 번으로 끝낼 수 있다. 그러나 효율적인 일처리가 가능해지면서 늘어난 여유시간을 사람들은 유튜브와 넷플릭스에 쏟아붓고 있다.


농담이 아니다. 기술혁신은 사람들을 더 기술의존적인 존재로 만들어가고 있다. 첨단기술의 접근성과 편의성이 지속적으로 개선되면서 핸드폰 하나로 이제는 ‘생활‘이 가능해졌다. 업무를 처리하고 SNS로 사람들과 소통하고 의식주와 관련된 문제를 해결하고 VR과 AR로 가상체험도 할 수 있다.

이런 편리함은 한 번 맛보고 나면 절대로 이전의 삶으로 되돌아갈 수 없다. 혁신이 주는 편리함은 결국 의존을 부른다. 오늘 당장 핸드폰에 깔려있는 다양한 앱의 서비스들을 전부 이용할 수 없게 된다면 많은 사람들이 패닉 상태에 빠질 것이다. 이를 금단증세라고 불러도 어색함은 없을 것 같다.


사람들은 자신이 첨단기술을 선택적으로 받아들인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그 반대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미 기술에 대한 높은 의존성으로 인해 핸드폰 없이 살아가기 어려운 상태다. 멀리서 찾을 것도 없다. 출퇴근 시간 버스와 지하철의 풍경을 떠올려보자. 그리고 오늘 핸드폰을 사용한 시간을 계산해보자. PC카톡도 포함해서다.

느리게 살겠다는 내 다짐은 사실 고집에 가깝다. 가방에 책을 넣어 다니면서 꺼내 읽고, 예약은 꼭 전화로, 결제는 현금을 건네는 나는 정말 느린 인간이다. SNS나 메신저도 사실 덜 쓰고 싶지만 사회관계망에서 아예 벗어나 살 수는 없는 작가이기에 적당한 선에서 타협한 채 살고 있다.


변화가 빠른 기술에는 ‘틈’이 없다. 너무나 합리적이고 효율적이라 빈틈도 없고 내가 가진 것들로 취향껏 물들일 작은 틈새도 없다. 되려 추천 콘텐츠라는 기능으로 내가 품고 있는 틈을 파고 들어오려 한다. 느린 인간인 나는 여러모로 빈틈 투성이지만 온기 없는 기술에 내 빈틈을 보이고 싶지 않다. 내어주더라도 사람에게 내어줘야 할 공간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