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성은 타협하지 않는 취향이다
누구에게나 질리지 않는 음식이 하나쯤 있다. 카레는 어릴 때나 지금이나 한결같이 좋아하는 메뉴다. 나이가 들면서 입맛은 변한다고 하지만 여전히 카레는 늘 맛있다. 급식을 먹던 시절이나 훈련소에서 먹었을 때나 카레는 맛있었다. 밥 위에 부어먹어도 돈가스에 찍어 먹어도 우동과 비벼 먹어도 다 잘 어울린다.
물론 카레도 호불호가 존재하는 음식이다. 매력적인 카레 특유의 향이 누군가에게는 싫어하는 이유가 되기도 한다. 음식을 먹을 때면 종종 생각한다. 좋아하는 사람들이 꼽는 장점이 싫어하는 이들에게는 가장 큰 단점이 될 수도 있다. 나는 입에도 대지 못하는 홍어회의 암모니아향을 친한 친구는 정말 좋아한다. 톡 쏘는 향과 자극적인 풍미가 홍어의 매력이라는 친구의 말을 나는 평생 이해하지 못할 것 같다.
카레도 누군가에게는 그런 음식이 아닐까? 식성은 타협하지 않는 취향이다. 사람들의 제안을 받아들이기도 하고 새로운 음식에 도전할 때도 있지만 기준은 변하지 않는다. 어릴 때는 편식으로 치부당하지만 성인이 되면 취향이라는 말로 포장할 수 있다. 나이가 들어도 맛에 관련해서 타협하는 경우가 별로 없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영화나 드라마 취향보다 식성에서 큰 차이가 존재한다는 것을 종종 실감한다. 배스킨라빈스에서 쿼터를 주문할 때 나는 옆사람에게 민트초코를 골라도 되는지 물어본다. 달고 상쾌한 맛이 누군가에게는 치약맛으로 느껴질 수 있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다. 싫어하는 이유나 좋아하는 이유를 물어볼 필요는 없다. 틀린 게 아니라 그냥 다른 거니까 넘어간다. 식성의 차이는 사람은 누구나 서로 다른 취향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 준다.
역지사지라는 말은 인간관계에서 자주 등장하지만 막상 적용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서로 다른 음식 취향은 의외로 빨리 납득할 수 있다. 샌드위치 모서리를 잘라내고 먹는 사람, 민트초코와 데자와를 즐기는 사람, 쌀국수에 고수를 산처럼 올려먹는 사람까지. 우리는 전부 다른 입맛을 가지고 산다. 완전히 이해할 수는 없지만 결국 납득하고 넘어간다. 입맛은 끝까지 서로 인정은 못해도 결국 존중하는 쪽으로 결말이 나온다.
카레를 싫어하는 사람에게 카레의 특별한 풍미와 매력을 설명한다고 생각이 달라질까? 식성은 설득되지 않고 취향은 강제할 수 없다. 내가 좋아하면 그냥 나만 좋아하는 걸로 만족하자. 좋아하는 이유보다 싫어하는 이유는 더 구체적이고 확실하다. 그러므로 취향존중은 상대를 향한 배려임과 동시에 원만한 대인관계를 유지하는 지혜다.
오늘은 아침 일찍 산책을 다녀오면서 사온 치아바타와 카레를 함께 먹었다. 아는 맛이고 흔한 조합이지만 웃음이 나올 만큼 행복하고 즐거운 한 끼였다. 내가 행복하면 된다. 입맛은 우열과 수준이 없다. 오로지 즐거움만 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