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태민 Jul 06. 2023

방과 후 학교에 남아

 80년대 생은 교육의 변화를 체감하면서 자란 세대였다. 입학할 때는 국민학교였지만 3학년이 되면서 초등학교라는 새로운 명칭이 생겼다. 그리고 방과 후활동이라는 프로그램이 등장했다. 학교에서 운영하는 다양한 교육강좌를 학생들에게 저렴한 비용으로 제공한 것이다. IMF로 가정형편은 빠듯했지만 자식교육에 미래를 거는 한국 부모들의 정성과 열정은 대단했다. 비싼 학원에 보낼 여유가 없었던 부모들에게 방과 후 수업은 매력적인 선택지였다. 사교육이라고는 학습지 하나가 전부였던 내게 엄마는 방과 후 활동을 권했다.


 내가 들었던 수업은 기초영어반이었다. 한 학기 동안 매주 두 번 오후 4시부터 5시까지 한 시간씩 수업을 들었다. 수강생은 나를 포함해서 4명이었다. 선생님은 30대 초반의 남자였다. 얼굴이 희고 마른 체형이라 셔츠를 입으면 움직일 때마다 옷이 펄럭거렸다. 선생님은 우리에게 영어이름을 하나씩 추천했다. 내 영어이름은 저스틴이었다. 네 명의 아이들은 그럭저럭 수업을 잘 따라갔다. 선생님은 친절한 편이었다. 아이들에게 배움의 즐거움을 전달해주고 싶은 열정도 있었다. 5학년 남자 둘에 4학년 여자 둘이라 우리는 딱히 친하게 지내지는 않았다. 1살 차이가 꽤 멀게 느껴지던 시절이었다. 수업을 듣는 날은 늘 학교에 남았다. 나는 도서관에서 시간을 보냈다. 나중에는 거의 매일 학교에 남아서 책을 읽었다.


 방과 후의 학교는 정말 조용했다. 창밖으로 보이는 운동장에는 아이들이 공을 차면서 놀고 있었다.  위에 걸려있는 하늘은 언제나 시원한 파란색이었다. 책을 읽다  번씩  하늘을 보면서 눈을 쉬게 했다. 오후가 되면 커튼 사이로 스며든 햇살이 따뜻한 노란빛을 만들어냈다. 수업이 끝난 늦은 오후의 학교는 정적이 감싸고 있는 커다란 미로 같았다. 혼자 복도를 걸을 때면 발걸음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 창틀에서 떨어져 나온 그림자는   신발장 위에 그물 같은 사선을 만들었다. 돌아다니다 보면 교실에 남아있는 아이들을 볼 수 있었다. 갈 곳 없는 아이들은 학교에 남았다. 종종 집보다 학교가 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도서관에서  읽는 것을 좋아했다.  시절의 내게 편안했던 유일한 공간이 도서관이라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어린 나이였지만 여러모로 불안하다고 느꼈던 시기였다. 가족도 친구도 선생님도  멀리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책을 읽는 동안에는 걱정이나 불안이 나를 괴롭히지 않았던  같다. 성냥팔이 소녀가 꺼져가는 불길 속에서 연신 성냥을 피웠던 것처럼 나는 도서관에서 책을 읽으면서 견뎠다. 학교에 남아있었던 아이들은 각자의 사정을 품고 있었을 것이다. 말이 없다고 고민이 없는 것도 아니고 괜찮아 보인다고 진짜 괜찮은 것도 아니었다.  시절 학교에 남겨진 아이들은 혼자서 견디는 연습을 했던  같다. 그때나 지금이나 혼자 시간을 보내는 아이들의 상황은 대부분 비슷하지 않을까.

이전 19화 스물네 명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