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 온다

by 김태민

가을이 길가에 툭툭 떨어져 있다. 공원입구에 서있는 울창한 밤나무가 길 위에 가을을 몇 개 떨어뜨려놨다. 조심스럽게 손끝으로 작은 밤송이를 집었다. 반으로 갈라보지 않아도 알밤 몇 개가 들어있는지 어렴풋이 알 것 같았다. 공원을 가득 채운 매미들 울음소리는 아직 여름이 한참 남아있다고 말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천천히 물결처럼 밀려드는 가을의 그림자는 나무그늘 아래 조금씩 섞여 들고 있다. 맹렬한 기세로 우는 매미들은 밤이 되면 조용해진다. 노랫소리가 잦아든 늦은 밤 풀숲에서 귀뚜라미들이 존재감을 드러낸다. 달빛을 머금은 맑고 영롱한 소리가 공원 산책로를 또르르 굴러다닌다.


여전히 뜨거운 8월이지만 가을은 느긋한 걸음으로 다가온다. 재촉하거나 서두르지 않는다. 공원 산책로 위에 떨어진 작은 밤송이 몇 개는 작년 가을이 보낸 안부인사 같았다. 곧 다시 만나자는 반가운 목소리를 들은 것처럼 보고 있으면 웃음이 나왔다. 시간은 성실하게 흐른다. 게으름 피우지 않고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게 순간에서 영원으로 쉼 없이 흘러간다. 끝나지 않을 것 같은 폭염도 어느새 꼬리가 보이기 시작했다. 한여름의 새하얀 햇살은 저녁 무렵에는 노란빛을 띠고 세상을 물들인다. 시간이 흘러 밤의 그림자가 햇볕이 물들인 자리를 덮고 나면 열기는 천천히 사라진다.


더위를 피해 숨어있던 사람들은 밤이 되면 하나 둘 밖으로 나온다. 강아지와 함께 공원을 산책하고 느긋하게 벤치에 앉아 이야기를 나눈다. 잠 못 이루게 만드는 열대야는 누그러지고 끈적하게 들러붙는 습기도 줄어들었다. 불어오는 밤바람은 선선하고 산뜻하다. 비구름이 사라진 맑은 밤하늘 위로 소금처럼 하얀 별들이 붙어있다. 잔잔한 풀벌레소리를 듣고 있으면 마음이 편안해진다. 한낮의 열기에 지친 몸도 천천히 바람을 맞으며 걷다 보면 한결 가벼워진다.


편안한 저녁을 지나 차분한 밤이다. 간간히 부는 바람은 나무들이 달고 있는 푸른 잎사귀를 흔들다 사라진다. 가만히 눈을 감고 있으면 파도소리처럼 들린다. 한숨 깊이 자고 일어나 창문을 보면 유리는 여전히 까만색이다. 푸르스름한 빛으로 물드는 시간은 매일 조금씩 늦어지는 중이다. 매미소리가 몰고 오는 눈부신 아침햇살도 전보다 많이 누그러졌다. 여름이 지나가고 있다. 몇 주만 지나면 가을이 온다. 유난히 덥고 힘든 여름이라 가을이 더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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