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일찍 친한 지인이 사진과 함께 메시지를 보냈다. 키우는 고양이가 가구를 긁어버렸다는 내용이었다. 혼내는 와중에 찍은 사진 속 작고 귀여운 고양이는 천진난만한 표정이었다. 고개를 갸웃하는 모습에 지인은 그냥 웃어버렸다고 한다. 고양이는 늘 이런 식이다. 갖은 행패를 부려도 결국 사람은 납득하게 된다. 탁자의 물건을 툭 쳐서 떨어뜨리고 원목 가구를 발톱으로 긁어버리고 벽지를 엉망으로 만들어도 괜찮다. 집사는 늘 그 상황을 받아들이게 된다. 귀엽고 예쁘니까. 고양이의 문제행동을 이해하려고 할 필요는 없다. 고양이는 이해하려고 하면 복잡해진다. 그냥 받아들이는 편이 낫다.
야생성이 강하게 남아있는 동물이 인간과 생활공간을 공유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기적이다. 영역동물인 고양이가 큰 말썽을 부리지 않는 것만으로도 대단한 일이다. 고양이 입장에서는 자신의 영역에 들어와 있는 인간을 내치지 않고 있는 것이다. 공존의 방식이 다소 제멋대로지만 고양이에게는 최선이다. 집안 살림을 좀 망가뜨려도 이해해 주자. 집이라는 개념이 없는 동물들에게 물건은 본래 아무 의미 없는 것이다. 개나 고양이가 가구를 엉망으로 만들고 나서 짓는 표정은 그래서 천진난만하다. 인간의 기준으로 생각하면 피곤해진다.
애초에 말 잘 듣는 동물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동물을 길들이는 이유는 인간의 편의성 때문이다. 반려동물들은 자연이 아니라 인간의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서 노력한다. 본성을 억누르고 사는 그들에게 사람 살기 편하게 말까지 잘 들으라고 하는 건 욕심이 아닐까? 한 번씩 사고를 치더라도 가능하면 눈감아주자. 사람들 역시 반려동물들이 싫어하는 행동을 적지 않게 할 테니 넘어가자. 동물과 함께 살다 보면 처음에는 이해하려고 기를 쓰지만 시간이 지나면 받아들이게 된다. 그러다 보면 하나씩 양보하게 된다. 서로의 차이점을 인지하면 내어줄 것은 내주자는 마음이 생긴다.
좋아하는 지정석이 생기면 비켜준다. 애착을 보이는 양말은 건네준다. 자꾸만 책상에 올라가서 물건을 떨어뜨리면 책상을 비운다. 양보하면 서로 편해진다. 반려동물과 함께 지내면서 사람은 성장한다. 같은 언어를 사용하지 않아도 관심 있게 지켜보면서 반응을 살피게 된다.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을 구별하게 되면서 행동을 신경 쓰게 된다. 말하지 않아도 표현하지 않아도 배려하는 습관이 생긴다. 아는 것이 하나 둘 늘어나다 보면 결국에는 편해진다. 억지로 애쓰거나 일부러 티 내지 않아도 되는 편안함을 공유하게 된다. 발톱자국을 내더라도 얼굴을 보면 금세 마음이 풀려버리는 것은 그런 이유 때문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