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은 시간을 먹고 자란다

by 김태민

글은 시간을 먹고 자란다. 분량에 상관없이 길든 짧든 한 편의 글을 완성하려면 시간이 필요하다. 머릿속에 저장되어 있는 생각과 감정을 글로 다듬는데 품이 많이 들어간다. 오래된 기억을 주제로 삼기도 하고 잊고 지냈던 감정을 뒤늦게 해석해서 글로 엮을 때도 있다. 글을 쓰는 데 걸리는 시간보다 글이 나오기까지 걸리는 시간이 훨씬 더 길다. 감정이 알맞게 숙성되고 생각이 제대로 익는 과정은 글쓰기의 바탕이 된다. 그래서 글을 짓는 일은 기다림이다. 느긋하게 적당한 때를 기다린다. 숙성의 시간은 결과에 도달하기 위한 필수과정이다. 생략하거나 지나칠 수 없다.


시간은 스승이다. 몰랐던 것을 가르쳐주고 과거의 잘못은 반성하게 만든다. 이 과정 속에서 날 선 것들은 누그러지고 거친 부분은 부드러워진다. 글로 쓰기 적합한 상태가 되면 단어와 문장을 그릇 삼아 마음을 담는다. 그렇게 한 편씩 글을 완성한다. 글은 사람이 쓰지만 깊이를 완성하는 것은 시간이다. 세월이 사람을 빚는다. 애쓸 필요도 없고 기를 쓰고 고군분투할 이유도 없다. 자연스럽게 시간이 흐르다 보면 알맞은 때가 찾아온다. 글쓰기를 통해 내가 익힌 것은 기다리는 마음가짐이다. 기다림은 인내심과 참을성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적당한 때를 받아들이고 이해하는 여유에 가깝다.


인위적으로 글을 쓸 수도 있다. 수학공식처럼 구성과 유형을 분류해서 조립하듯이 찍어낼 수도 있다. 사람들이 흥미를 갖는 관심사와 유행하는 소재를 넣기만 하면 눈길을 끌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속에 깊이는 없다. 근본적으로 글쓰기는 고백이다. 내 생각과 감정을 스스로에게 전달하는 고백이다. 진솔함이 깊이를 더하고 진실된 마음이 글의 생명력을 불어넣는다. 잘 쓴 글이나 못쓴 글은 없지만 진짜와 가짜는 존재한다. 숙성의 시간을 거치면서 적당한 때를 만난 것들만 진짜 글이 된다. 어디에 내놔도 누가 읽어도 진짜는 부끄럽지 않다. 그거면 된다. 진솔한 생각과 감정이 들어가 있다면 글은 제대로 완성된 것이다.


좋은 글이 아니라 솔직한 글을 쓰기 위해 노력한다. 멋진 글 대신 마음을 담은 글을 짓기 위해 여러 번 생각한다. 글쓰기는 나를 기록하고 동시에 완성하는 작업이다. 느긋하게 하나씩 답을 찾아가다 보면 평행선으로 달리던 과거와 현재의 접점을 발견한다. 이 과정에서 마음은 안정을 찾는다. 더하기가 아니라 덜어내는데 중점을 두고 싶다. 복잡한 생각과 어지러운 감정이 아직 많이 남아있다. 숨 쉬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글을 쓰려면 앞으로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할 것 같다. 기다리는 시간 동안 지나온 삶을 차근차근 글로 정리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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