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 가는 곳마다 오래된 동네라 지금까지 재개발을 여러 번 목격했다. 20년 넘게 살고 있는 우리 동네 역시 개발의 바람을 피할 수는 없었다. 도로 하나를 사이에 두고 매일 보던 산동네는 며칠 전 완전히 사라졌다. 산마루 아래 상록마을이 있던 자리는 대규모 아파트 단지가 들어설 예정이다. 사람들이 이주를 시작했던 작년 여름이 생각난다. 자주 가던 음식점들은 몇 주 간격으로 하나씩 문을 닫았다. 입구에 영업종료일을 적어놓은 집도 있었고 고마웠다는 내용의 편지를 손으로 써서 붙여 놓은 가게도 있었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동네 점집들의 영업장이전을 알리는 안내문이었다.
노랑 바탕의 광고지 하단에는 연분홍빛의 연꽃그림이 들어가 있었다. 그 위로 동그란 이마의 스님과 기다란 수염을 기른 장군이 그려져 있었다. 탱화풍의 그림은 꽤 화려했지만 큼지막한 전화번호가 시선을 빼앗아버렸다. 오래된 동네는 하나같이 점집이나 신당이 많은 편이다. 특히 동네에 산이라도 있으면 주변으로 깃발을 내건 당집이 삼삼오오 모여든다. 산길을 끼고 있는 언덕 위에 자리 잡은 냉천마을과 상록마을은 그래서 무속인들이 많았다. 그러나 길흉을 점치고 미래를 보는 신령님도 재개발 앞에서는 속수무책이다. 물론 재개발로 큰 이익을 봤다면 신령님의 큰 그림이었다고 해도 할 말은 없다.
아파트가 들어서면 당집은 모두 사라진다. 이사 간 주소를 보니 오래된 동네가 있는 곳이었다. 아파트는 신령님도 장군님도 이기는 천하무적인지도 모르겠다. 재개발 앞에 장사 없는 것을 보면 역시 이승에서는 산사람이 이긴다. 불당과 신당 그리고 점집은 상록마을에서 모두 사라졌다. 번듯한 신축아파트에 사당을 차리면 효험이 반감되는 걸까? 아니면 영혼들이 좋아하는 동네는 낡은 곳일까? 문득 궁금해진다. 아니면 원활한 영업을 위해서 이전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신축아파트 단지의 상가에 감성적인 간판을 달고 있는 점집은 뭔가 기가 약해 보이는 느낌이다. 후미진 골목 끝 낡은 대문을 열면 보이는 오래된 툇마루와 깃발. 시각적인 이미지가 주는 강렬함을 위해서라도 역시 동네가 중요하다. 마케팅은 원래 내외부의 인테리어가 반이다.
이미지메이킹을 위해서는 역시 위치선점이 중요할 것이다. 점집이 많은 동네는 노후화된 곳이므로 몇 년 후에 재개발될 가능성이 높다. 낡은 동네라도 신당이 별로 없다면 소용없는 것 같다. 초등학생 시절 살았던 대농단지는 내가 살던 모습 그대로 남아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동네는 흔한 불당 하나 없었다. 내가 모르는 나름의 법칙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어디나 업계의 룰이 있는 법이니까. 언덕배기에 깃발을 내놓고 있던 점집들은 신령님을 데리고 상록마을을 떠났다. 혼령도 이사 가는 날은 손을 피해서 갈까?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