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째 장마가 찾아왔다. 비는 밤부터 쉬지 않고 내리는 중이다. 여름장마는 길고 짧아지기를 반복하다 이제 전기후기로 나뉜 것 같다. 폭염 끝에 만난 태풍이 지나고 가을이 올 줄 알았지만 가을장마가 시작됐다. 점점 계절감각이 사라지는 느낌이다. 유리창을 때리는 굵은 빗방울의 파열음이 집안을 가득 채운다. 그 소리가 꼭 풍랑이 몰고 온 파도소리처럼 들렸다. 잿빛으로 물든 바다가 토해내는 파도를 상상했다. 하얀 갈기를 달고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난폭한 말의 이미지가 떠올랐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파도를 보면서 흰 말이 끄는 포세이돈의 전차를 만들어냈다. 동화나 설화 속에는 기상현상과 관련된 이야기들이 많다. 악천후 속에서 날이 개길 기다리면서 이야기를 만든 것은 아닐까? 글을 쓰면서 생각과 감정을 기록하다 보면 마음은 차분해진다. 허구의 이야기를 만드는 일도 그와 비슷하다. 창작은 걱정과 불안을 잊게 만드는 힘이 있다. 소설은 어려운 시대일수록 많이 팔리는 경향이 있다. 고난과 시련이 많은 시기일수록 사람들의 눈길을 끄는 영화나 드라마가 사랑받는다. 창작은 시련을 극복하고자 하는 인간의 본능인 것 같다.
창작은 그 자체로 성취감과 자신감을 가져다준다. 성공과 실패는 부수적인 것에 불과하다. 존재하지 않는 것을 만드는 행위가 본질이다. 완성도나 평가는 창작과 무관하다. 동기나 주제도 중요하지 않다. 거창한 주제의식이나 삶의 통찰 같은 건 양념에 지나지 않는다. 숨 쉬는 것처럼 쓰고 말하는 것처럼 담는다. 심장이 뛰고 피가 흐르는 생명활동에 이유가 없듯이 글쓰기도 마찬가지다. 일단 쓰기 시작하면 뭐라도 나온다. 쓰다 보면 뭐라도 된다. 매일 쓰는 흔한 일기가 모이면 인생이 된다. 삶의 대부분은 사소하고 소소한 것들로 구성되어 있다. 창작도 작은 것부터 시작하면 된다.
내리는 비를 보면서 이 글을 쓰고 있다. 비가 오지 않았다면 이 짧은 글은 세상 밖으로 나오지 못했을 것이다. 사소하고 단순한 동기가 창작으로 이어진다.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면서 내가 깨달은 것이 하나 있다면 아무것도 아닌 것은 없다는 사실이다. 특별한 것들이 위대한 결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특별함을 버리면 그때부터 정말 특별해진다. 나답게 솔직하게 쓸 수 있기 때문이다. 일상적으로 느끼는 감정과 생각이 모이면 글이 된다. 그거면 충분하다. 아무것도 아닌 것들을 단어와 문장으로 엮다 보면 글이 만들어진다. 애쓰지 않아도 된다. 거창할 필요는 없다. 빗소리를 들으면서 쓴 이 글처럼 편안하게 떠오르는 생각들을 적으면 된다. 말하듯이 쓰고 숨 쉬는 것처럼 표현하면 솔직한 글이 나온다. 글은 누구나 쓸 수 있다. 누가 써도 글은 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