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로 위의 갈림길

by 김태민

새벽부터 비가 내렸다. 짧은 산책을 마치고 돌아가는 길 한산한 도로 위에 이상한 물체들이 놓여있었다. 그 순간 사고가 발생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파손된 차량의 파편들이 여기저기 널려있었다. 급격한 커브로 휘어진 스키드마크는 사고 당시의 긴박함을 생생하게 드러냈다. 떨어져 나온 범퍼 일부와 잘게 부서진 헤드라이트 조각이 참혹한 당시의 상황을 말해주는 것 같았다. 사고지점에 이른 차들은 속도를 줄이며 조심스럽게 옆으로 비켜 지나갔다. 언뜻 봐도 운전자의 생사를 장담하기 어려운 광경이었다. 매일 지나는 도로가 누군가에게는 생과 사의 기로나 마찬가지인 것이다.


눈앞에서 대형세단에 치여서 꼬마 아이가 날아가는 것을 본 적 있다. 2m 도 채 되지 않은 거리였고 차에 치인 남자아이는 튕겨져 나가서 몇 바퀴를 굴렀다. 다행히 아이는 무사했지만 그 충격적인 장면은 쉽게 머릿속에서 사라지지 않았다. 도로 위에서 삶과 죽음은 교차한다. 위험이 어떤 방식으로 언제 찾아올지 전혀 알 수 없다. 친하게 지냈던 사진작가 친구는 인도를 덮친 차량에 치여 심한 골절 피해를 입었다. 영업일을 하는 동창은 난폭운전을 하던 차량이 트럭과 부딪혀 종잇장처럼 찢어지는 것을 목격했다. 위험은 생각보다 가까이에 있다. 백미러에 비친 사물은 조심할 수 있지만 위험은 좀 다른 차원인 것 같다.


한 때 밤마다 도로 위에서 차들이 급정거하는 긴박한 마찰음을 자주 들었다. 사거리부터 시민대로와 명학대교로 이어지는 길은 교통사고가 빈번한 곳이었다. 운전자나 보행자가 사망하는 큰 사고가 발생한 적도 있었다. 그래서 밤만 되면 사거리 주변으로 레커차량들이 나타났다. 먹이를 노리는 독수리처럼 가만히 밤의 도로를 지켜보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동네에 큰 경찰서가 생기고 단속이 강화되면서 비명처럼 들렸던 급정거소리는 차츰 사라졌다. 도로 주변을 배회하던 레커도 도로 위에 놓여있던 하얀 국화도 모두 흔적을 감췄다. 그러나 새벽 공기를 가르는 날카로운 파열음은 기억 속에 남아있다. 소리의 근원지에서 사람들은 삶과 죽음 둘 중 어느 길로 핸들을 틀었을까?


병원이 출생과 사망이 교차하는 곳이라면 도로는 삶과 죽음이 엇갈리는 갈림길이다. 사고가 자주 발생했던 도로를 가만히 바라본다. 빗물이 쉼 없이 사고의 흔적을 씻어내고 있다. 곧 바쁜 하루를 시작하는 사람들이 탄 차들로 도로는 뒤덮일 것이다. 목적지를 향해 달렸던 누군가는 결국 도착하지 못하고 더 먼 곳으로 떠났다. 길 위에서 평범한 일상을 향해 나간 사람도 있지만 빠져나올 수 없는 길로 들어선 사람도 있다. 매일 지나다니는 길의 익숙한 모습은 누군가에게는 인생의 마지막 풍경이었을 것이다. 손끝에 닿은 빗방울이 유난히 차갑게 느껴졌다. 익숙한 아침이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시작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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