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상에는 빗물을 받을 목적으로 커다란 고무대야를 놔뒀다. 어른들이 다라이라는 친숙한 발음으로 부르는 물건이다. 밤새 내린 호우 덕분에 물이 가득 찼다. 대야에 있는 물을 물조리개에 옮겨 담으려고 가까이 다가갔다. 그러자 잔잔한 수면 아래 꿈틀거리는 움직임이 보였다. 자세히 보니 까만 콩알 같은 벌레가 잔뜩 모여있었다. 모기 유충인 장구벌레였다. 바가지를 물속으로 집어넣었다. 손목의 스냅을 이용해서 대야 바깥으로 물을 퍼냈다. 옥상 바닥에 커다란 지도를 펼친 것처럼 까만 흔적이 남았다. 여러 마리의 장구벌레가 몸을 접었다 펴면서 기괴하게 몸부림치는 모습이 보였다.
단 번에 일망타진하고 싶었지만 몇 마리를 놓쳐버렸다. 대야 표면의 물결이 잔잔해지기를 기다렸다. 장구벌레는 호흡을 하려면 수면 가까이 올라올 수밖에 없다. 놓친 녀석들이 올라오면 하나씩 바가지로 퍼내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예상은 적중했다. 한 마리씩 사정거리 안에 들어올 때마다 바가지로 표면의 물을 덜어냈다. 장구벌레들은 하나 둘 옥상 바닥으로 떨어졌다. 몇 분간 반복하고 나자 대야 속은 깨끗해졌다. 8월의 땡볕 아래 장구벌레들은 발버둥 치다 곧 숨이 끊어질 것이다. 화단을 가꾸는 일은 생명존중과는 거리가 멀다. 식물의 생육과 성장을 방해하는 다른 생명을 죽일 수밖에 없다. 장구벌레를 다 죽이고 나서 화분에 들러붙은 잡초를 죄다 뽑아버렸다.
장구벌레가 많아지면 물이 더러워진다. 탈피하고 남은 잔해가 부유물이 된다. 가능하면 깨끗한 물을 물을 주기 위해서 장구벌레를 전부 다 제거해 버렸다. 옥상의 화단을 유지하려면 살육전을 벌여야만 한다. 진딧물제거제를 뿌리고 화분 옆에 뿌리내린 잡초도 주기적으로 뽑아서 버린다. 거미줄에 뒤덮이지 않도록 거미도 보일 때마다 잡는다. 크든 작든 살생은 하지 않는 편이 좋지만 다른 방법이 없다. 싱그러운 빛깔로 칙칙한 옥상을 환하게 만들어주는 화단은 소박한 행복을 느끼게 해 준다. 작은 행복을 유지하기 위해 작은 생명을 없앤다. 인간은 참 잔인한 존재다. 바닥에 널브러진 잡초 한 무더기와 몸을 웅크리고 죽어있는 장구벌레가 시야에 들어왔다.
명분이 있으면 크든 작든 살육은 정당화된다. 죄책감은 잠깐이다. 화단의 아름다움을 지키기 위해 벌레들을 죽이듯이 정치적인 목적 때문에 인간은 전쟁을 벌인다. 구조적으로는 별 차이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죽은 벌레나 사람의 시체나 모두 흙으로 돌아간다. 봄 한철 예쁜 꽃을 보기 위해 화단을 가꾼다. 나머지 계절동안 잡초와 벌레를 무수히 죽이면서 옥상의 정원은 평화를 유지한다. 한 송이 꽃의 무게와 사라진 생명의 무게는 같지 않을 것이다. 올봄의 군자란은 유례없이 선명한 꽃을 피웠다. 옥상에 올라갈 때마다 꽃을 보며 즐거워했다. 내 손으로 죽인 많은 벌레와 잡초를 떠올린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죄책감은 아름다움 앞에서 늘 증발한다.